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에 대하여
태풍이 지나가고 갑작스레 찾아온 가을은, 딱 기분 좋을 정도로 쌀쌀해진 공기를 마스크 없는 맨 얼굴로 느끼고 싶다는 열망만 크게 만들었다. 마스크 없이 산책하고 싶어. 마스크 없이 운동하고 싶어. 마스크 없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싶어. 마스크 없이 여행 가고 싶어. 너무나 당연했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된 채로 2020년이 흐르는 중이다. 9월 4일 현재 지구에 사는 사람들 중에 코로나 백신의 개발을 간절히 염원하지 않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을까.
오늘 아침 7시쯤 연이가 출근하려고 나설 때 나도 마농이 똥산책을 시켜줄 겸 함께 밖으로 나갔다(우리집 강아지 마농이는 절대 실내에서 똥을 싸지 않아서 아침저녁으로 꼭 똥산책을 시켜 주어야 한다). 나와 연이 둘 다 잊지 않고 마스크를 한 채였다. 연이, 마농이, 나 이렇게 셋이서 지하철 역 방향으로 걷다가 출근하는 연이를 보내주어야 하는 갈림길에 다다랐다. 마스크를 내릴까 말까 조금 망설이다가 마스크를 쓴 채 뽀뽀를 했다. 뽀뽀를 해야 하는 타이밍이었는데 둘 다 마스크로 입술을 가리고 있었고, 뽀뽀를 하려고 마스크를 내리기에는 약간 번거롭기도 하고 그래서 마스크를 한 채로 입술이 있을 법한 위치를 대충 가늠해 맞부딪힌 것이다. 그러고 나서 지하철을 타러 바삐 걸어가는 연이의 뒷모습에다 대고 외쳤다.
이제 마스크 뽀뽀의 시대야!
두 사람 다 아주 당연하게 그 행위를 했다는 사실이 웃기기도 하고 멋쩍어져서 농담조로 신나게 소리를 질렀지만 그 말을 내뱉음과 동시에 나는 갑자기 슬퍼졌다. 마스크 뽀뽀의 시대라니. 바깥에서는 입술과 입술을 맞부딪히기도 어려운 시대. 그 말랑말랑하고 도타운 감촉을 느낄 수 없으니 얼마나 슬픈 일인가.
내가 우두커니 서서 이별 뽀뽀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에 대해 슬퍼하는 동안 마농이는 강아지답게 연이가 사라진 쪽만 오매불망 바라보고 있었다. 녀석이 붙박이처럼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는 바람에 우리의 아침 똥산책은 실패로 돌아갔다. 점심때 다시 데리고 나와 똥을 누여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우리집 강아지는 집에 데려다주고 나는 여전히 마스크를 낀 채로 운동을 하러 나왔다.
오늘은 기필코 왕복 5킬로미터 즈음되는 완벽한 운동 코스를 찾아내야지. 어제도 그제도 실패한 일이었다. 제주에서 서울 바로 옆 산본으로 이사를 온 지 딱 일주일째. 적당한 운동 코스를 찾으려고 지난 며칠간 집 주변 여기저기를 걸어보고 있었는데, 도시 한복판이라 그런지 내 마음에 쏙 드는 코스를 찾을 수가 없었다. 산본역 주변으로 아파트만 빽빽하게 들어차 있고 오로지 서울의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 같은 이곳에서 한강 공원이나 제주 해변가 같은 조건의 운동 코스를 기대한 내가 바보였던 것이다.
그러다가 오늘은 지도상으로 조금 멀어 보여 재껴두고 있었던 초막골생태공원이라는 곳까지 가 보기로 했다. 집에서 공원 입구까지는 약 2킬로미터 남짓. 가는 길은 4차선 도로를 끼고 있었지만 지나다니는 사람이 드물었고 큰 나무들이 멋진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다는 점이 꽤 마음에 들었다. 마침내 입구로 들어서서 주변을 둘러보며 공원 부지를 걷고 뛰는데 이보다 완벽할 수는 없겠다 싶었다. 공원 전체가 나지막한 산들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때마침 동쪽으로 가을해가 막 모습을 드러내며 눈을 부시게 했다. 집 근처에 이토록 시골스럽고 아름다운 공원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며 금요일 아침을 만끽했다. 집에서 여기까지 뛰어와 공원을 한 바퀴 돌고 다시 집으로 뛰어가면 딱이겠는걸.
동시에 어이없다고도 생각했다. 사는 데에 필요한 모든 게 다 갖추어진 도시의 편리함이 좋아서 도시로 온 사람이 그 속의 작은 자연을 발견하고 뛸 듯이 기뻐했다는 사실이. 더 웃긴 건 그 공원조차도 도시와 마찬가지로 자연을 최대한 가까이 두고 편리하게 드나들고자 했던 인간의 이기심에서 비롯된 산물이라는 것이었다. 자연의 생태를 무시한 인간의 이기심은 온갖 편리함과 조잡함으로 무장한 산본 중심가를 만들어 냈고 낯부끄럽게도 ‘생태’공원을 만들어 냈으며 마지막으로 코로나 바이러스를 탄생시켰다.
나는 인간이 만든 산본 중심가 바로 옆 아파트에 살면서 인간이 만든 코로나 바이러스를 피하려고 마스크를 끼고 인간이 만든 생태공원으로 운동을 하러 간다. 이보다 더 모순적일 수 있을까 싶다. 우리는 사는 동안 이 모순의 실타래를 풀어낼 수 있을까. 아니, 풀어내려는 노력이라도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분명 운동하러 나간 것뿐인데 집으로 돌아올 때는 지구와 인간의 관계에 대해 꽤나 깊은 고민에 빠져있었다. 그러면서 제주의 김영갑 갤러리에서 보았던 문구를 떠올렸다.
이야기하면 할수록 그 아름다움은 점점 작아진다.
이 문구는 제주의 한라산과 자연에 대한 것이었지만 지구의 자연으로 치환해서 생각을 해 보아도 전혀 무리가 없었다. 자연의 넘치는 생동감과 아름다움을 곁에 두고 싶다면, 어느덧 찾아온 가을을 마스크 없이 온몸으로 느끼고, 마스크 없이 사랑하는 사람의 볼에 내 볼을 부비고 싶다면, 지구와 자연을 더 이상 건드리지 않고 가만히 두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 같다. 그들에 대한 온갖 추악하고 더럽고 이기적인 이야기를 멈추고 그런 이야기들에서 비롯된 행동들을 그만두는 것. 그리하여 인간과 자연이 지구에서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 그게 바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살아나가야 하는 우리의 과제일 것이다.
인스타그램 @dexy.koh
* 제주에서 서울로 길고 긴 이사를 하는 통에 지난 주 연재 일정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하루이틀만에 살던 곳을 바다 건너로 바꾸고, 자동차와 모든 살림살이들을 옮기고, 반려견 마농이와 비행기를 타는 일은 생각보다 더 고된 일이더라고요. 일주일에 딱 한 번 글을 올리는 주제에 어쩌면 이것도 핑계겠지만 그래도 이유는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혹시나 기다린 분이 계실 수도 있으니까요. 아무도 기다리지 않으셨다면 이렇게 핑계를 대는 것도 웃기게 되니까 단 한 분이라도 계셨으면 좋겠다는 게 저의 마음입니다. 많이 부족한 제 글을 꾸준히 읽어주시는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