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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덱시 Jun 09. 2020

엄마 사랑해요 고마웠어요

외할머니의 슬픈 선택





  외할머니는 초록이 짙어지고 공기가 마침내 후덥지근해지던 6월의 초입에 돌아가셨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시는 선택을 하셨다고 했다.. 주변에서는 모두 할머니의 장수를 점쳤다. 단감 농사, 벼농사, 고구마 농사, 콩 농사... 온갖 작물을 키워내느라 평생을 논밭에서 살다시피 하신 우리 외할머니는, 몸집은 자그마했지만 누구보다 단단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다시는 보지 못할, 내가 기억하는 할머니의 피부는 짙은 갈색이었다. 논과 밭과 들로 부서져 내리는 햇살을 당신 평생에 걸쳐 온몸으로 받아내신 듯한 피부.


  아아.. 사계절 내내 햇볕을 고스란히 담아 갈색 빛을 띠고 반들반들 윤기가 도는 피부는 내가 기억하던 그대로였다. 금방이라도 일어나 앉아 깊고 강단 있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며 건녕이 왔냐며 인사를 건네실 것 같았다. 하지만 수의에 둘러싸여 마치 인형처럼 보이던 할머니는 숨을 쉬고 있지 않았다. 첫째, 둘째, 셋째 외삼촌과 막내딸 우리 어머니는 아마도 차갑게 식었을 할머니의 짧은 머리카락과 얼굴과 몸을 쓰다듬고 어루만지고 주물렀다. 누군가는 오열했고, 누군가는 조용히 슬퍼했다.

  둘째 외삼촌은 할머니의 얼굴을 두 손으로 꼭 감싸고 흐느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 엄마, 사랑해요. 고마웠어요..






  돌아가시던 날 콩국수가 드시고 싶었다고 한다. 여느 때처럼 함께 사시는 큰외삼촌, 큰외숙모와 함께 점심으로 드시고 싶다던 콩국수를 맛있게 드시기까지 했다. 다리가 아파 거동이 조금 불편하신 외삼촌께서 시내에 외출하려고 하시기에 할머니가 몇 가지 당부를 하시는데 평소와는 느낌이 조금 달랐다고 한다.

  - 차 조심하고, 남에게 폐 끼치지 말고, 항상 올곧고 바르게 살아라

  외삼촌은 할머니가 허리 때문에 평소보다 몸이 좀 성치 않아서 그러신가 보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외출을 하셨다. 약을 먹고 쓰러져 계신 할머니를 발견한 건 서너 시간 후에 집에 돌아오신 외숙모였다.






  평생을 쭈그리고 앉아 호미질을 하고 새참을 머리 위에 인 채 논을 오가느라 마음 편히 허리를 펴 본 적이 없는 분이셨다. 그 때문인지 허리가 아파 큰 수술을 두 번이나 하시긴 했지만 그것 말고는 치매 기운도 없이 정정하셨다. 쉬는 법을 몰라 아흔이 가까운 연세에도 꼭 밭에 나가 무슨 일이든 하셨는데, 그래서 그런지 수술한 허리는 제대로 낫지 않았다. 다음 주에 서울 큰 병원으로 올라가 보자 하던 참이었다는데 이렇게 갑작스럽게 우리를 떠나게 되실지 누가 알았을까.


  빚지길 무엇보다 싫어하고 자존심도 세서, 무언가 해 달라는 부탁은 물론 남에게 조금이라도 폐 끼치는걸 지독히도 꺼리던 분이었다. 자식, 손녀들이 어디 좋은 곳 한 번 모시고 가려고 하면 당신이 그들에게 짐이 된다고 생각하셨는지 역성을 내서라도 집에 홀로 남아계셨다. 오죽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결정을 하셨을까. 시간이 갈수록 자식들의 도움이 필요한 몸 상태가 되어가시면서 당신의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게 견딜 수 없이 싫으셨나 보다. 할머니의 성정이라면 그런 상태를 스스로 용납하기 힘들었을 거라고 감히 추측해 볼 뿐이다.


  이틀 전만 해도 콩국수를 먹고 큰아들에게 차 조심하라고 잔소리를 하던 한 사람이 스러져 한 줌의 재로 남았는데, 세상은 그런 것 따위 안중에도 없다는 듯 잘만 돌아간다. 나는 또 내 삶을 살러 제주로 돌아간다. 산 사람은 배가 고파 메밀국수를 먹고 유튜브를 보며 웃고 유기견 입양에 대해 의견을 나눈다. 그러다가 문득문득 할머니 모습이 떠올라 내가 어떻게 통제할 수 없는 슬픔이 시도 때도 없이 차오른다.


  결혼식도 올리지 않은 채 앞으로 같이 살 남자라며 인사를 드리러 시골을 찾았던 작년 겨울이 내가 할머니를 본 마지막이었다. 성한 손가락 마디 하나 없는 쪼그라든 손으로 내 어깨를 쓸어내리며 예쁘다 예쁘다.. 중얼거리던 게 마지막이다. 할머니도 예쁘던 소녀 시절이 있었을 텐데. 논밭에 나가는 일 말고 다른 꿈도 있었겠지. 시골에서 농사일만 하고 싶지는 않았을 거야. 본 적도 없는 할머니의 스무 살 모습이 머릿속에 자꾸 제멋대로 그려져 마음이 많이 서글펐던 날로 기억한다.


  제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고작 몇 줄을 써내려 가는데도 할머니 생각에 쉴 새 없이 눈물이 흐른다. 옆자리에 앉은 연이가 볼세라 창밖을 보는 척 고개를 돌려 검은색 옷자락으로 몰래 눈물을 닦길 몇 번. 비행기 밖 아득한 바다 위로 한치잡이 배들이 반짝이는 별처럼 하나 둘 바다에 떠오르기 시작하면 비로소 제주다. 내가 사는 곳. 살아있으므로 열심히 살아가야 하는 나의 섬. 남은 사람들은 죽은 사람을 뒤로한 채 어떻게든 삶을 이어 나가겠지. 하지만 사람의 죽음은 그의 온기를, 희생을, 정성을, 감촉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결코 한 줌의 재가 아님을 이제는 안다. 할머니, 하늘에선 부디 고생스러운 농사일 전부 잊으시고 말간 얼굴로 애처럼 투정도 부리고 주변에 많이 기대기도 하면서 편히 쉬세요..


  할머니와 조금이라도 가깝게 맞닿아 있는 하늘 위 비행기에서 이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제주 앞바다 위로 한치잡이 별들이 더 많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덧. 지난 6월 6일, 외할머니께서 향년 87세의 연세로 돌아가셨습니다. 워낙 건강하시던 분이라 많이 갑작스러웠어요. 할머니에 대한 기억과 지금의 감정을 그대로 남겨두고 싶어 화장터로 향하면서, 유골함을 묻으러 가면서, 제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틈틈이 기록했습니다.







인스타그램 @dexy.k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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