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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덱시 Oct 21. 2020

8. 비포앤애프터(부엌과 드레스룸)





|부엌|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서면 바로 부엌이 있었다. 현관에 서서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면 바로 싱크대가 보이는 게 신경 쓰였다. 게다가, 외식을 하는 일보다 집에서 밥 해 먹는 일이 잦은 나와 연이에게는 비좁게 느껴지는 부엌이었다. 싱크볼만은 쓸데없이 컸지만 둘이 나란히 서서 요리를 하기에 조리대 면적이 터무니없이 작았다. 절대 두 사람이 같이 요리를 할 수 없는 구조였다. 가구가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언뜻 보면 꽤 넓어 보였지만 냉장고, 식탁 등 부엌에 필수적인 가전과 가구가 들어찬다면 분명 빽빽해질 것 같았다.



  그런 이유로 냉장고는 부엌 바로 옆 작은 베란다에 위치시키기로 했다. 베란다 면적이 넓지 않았지만 거기에 맞추어 아담한 사이즈의 냉장고를 사면 그만이었다. 식탁은 부엌이 아니라 거실 공간에 두고, 그 자리에는 커다란 아일랜드를 주문 제작해서 놓기로 했다. 이 아일랜드는 우리가 이 집에 사는 내내 싱크대의 좁은 조리 공간을 대신하여 든든하고 널찍한 조리대 역할을 해 주었다. 온갖 식재료와 조리도구들을 아이랜드 위에 늘어놓고 둘이 같이 요리를 해도 공간이 부족할 일이 없어서, 우리는 두고두고 가장 잘한 일 중 하나로 아일랜드 제작을 꼽는다. 원목 재질에 맞춤 제작이어서 우리집 가구 중 최고로 값비싸지만 비싼 만큼 견고하고 제 몫을 톡톡히 해내는 녀석이다.





BEFORE


AFTER





  부엌은 욕실과 마찬가지로 대대적으로 리모델링한 공간 중 하나다. 빛이 바래서 누레진 타일은 물론이고, 싱크대 상하부장도 전부 바꾸었지만 그대로 둔 게 딱 하나 있다. 그건 바로 바닥. 부엌 쪽의 원목 마루는 우리가 이 집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였기 때문에 반드시 사수해야 했다. 여기를 제외한 모든 방들에는 장판이 깔려 있었는데, 둘 중 하나만 할 것이지 왜 이렇게 바닥 재질을 다르게 해 두었는지는 도무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집 전체가 원목 마루로 되어 있었다면 더 좋았을 테지만 이제 와서 30년 전에 지어진 집의 마루와 똑같은 마루를 찾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에, 부엌 쪽은 그대로 두고 방들에는 타일을 깔았다.





*이번 편은 비포앤애프터 사진 위주의 글이라 자세한 설명은 생략했습니다.
 부엌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지난 글을 참고해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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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이런 부엌이 내 거라니 내 인생도 꽤 괜찮은 것 같아​






|드레스룸|



  다른 방들도 그랬듯이 이 방도 마찬가지로 리모델링 단계에서는 그리 손을 많이 대지 않았다. 역시나 비용이 가장 많이 드는 샤시는 그대로 두었으며, 바꾼 것은 고작 이 세 가지다. 1. 장판을 타일로 2. 십자가 형광등을 이케아 조명으로 3. 천장 몰딩은 페인트칠. 도배도 잘 되어있어서 굳이 건드리지 않았다.



  무언가를 했다고 하기에도 뭐한 이 방은 워낙 좁았기 때문에 의식주 중 ‘의’와 관련된 것들만 두는 방으로 쓰기로 했다.





BEFORE

아래 사진에서 미닫이문 건너편으로 보이는 방이 드레스룸이다.


AFTER

옷들이 빼곡히 걸려있고 전신거울이 있어서 때때로 운동을 하는 방



  거실 창문에 설치한 화이트 알루미늄 블라인드를 여기에도 똑같이 설치했다. 방 양쪽으로는 이케아에서 구매한 시스템 행거와 스테인리스 선반을 각각 두었다. 시스템 행거의 아래에는 3단 서랍을, 위에는 패브릭 수납함을 두어 철 지난 옷들과 이불을 정리했다. 반대쪽 스테인리스 선반은 모자와 가방, 신발 상자 등 액세서리류를 두는 곳이고, 그 옆에는 크지 않은 벽 행거를 달아 자주 입는 옷들을 걸어두기도 한다. 내가 결혼 전 혼자 살 때부터 오랫동안 써 오던 전신 거울은 벽에 기대어 두고 옷매무새를 점검할 수 있도록 했다.



  




|그 밖의 공간들|



왼.현관 신발장 위.            우.욕실 앞 수납공간.





 

#. 현관

  부엌 비포 사진에서 볼 수 있는 압도적인 크기의 신발장은 철거해 버렸다. 전 집주인이 신발장만 새 것으로 바꾸어 쓴 듯했는데, 신축 오피스텔에나 있을 법한 하이그로시 신발장이 우리집에 어울리지 않아서 낮은 신발장으로 바꾸었다. 부엌 상하부장과 재질도 같고(MDF), 컬러도 부엌 상하부장과 같은 톤의 페인트로 맞추어 칠해 주었다. 우리 부부는 신발이 꽤나 많아 여기에 절대 다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계절이 바뀜에 따라 신지 않게 되는 신발들은 상자에 넣어 드레스룸에 있는 선반에 차곡차곡 쌓아두는 쪽을 택했다. 신발장 위쪽의 지저분한 두꺼비집은 조카가 그려준 그림을 걸어 가려주었다.



#. 욕실앞

  욕실 내부에 별다른 수납장을 두지 않은 대신, 바로 앞에 수납공간을 마련하여 수건, 두루마리 휴지와 청소도구 등을 수납했다. 이 수납함(이케아, 스텔) 역시 아주 잘 샀다고 생각하는 가구 중 하나이다. 욕실 문은 아무래도 물이 많이 닿다 보니 빨리 망가져 버렸는지 이 집의 다른 문들과 전혀 다른 요즘 스타일의 문으로 교체되어 있었다. 그렇다 보니 욕실 문만 너무 이질적이고 동떨어져 보여서 페인트칠을 해주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욕실 앞에 새롭게 만들어 세운 가벽이다. 위 사진을 보면 가벽 앞으로 아일랜드 식탁이 빼꼼 보이는데, 가벽이 아니었다면 부엌을 훨씬 좁게 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가벽을 세운 덕분에 부엌 공간의 분리가 가능했고, 아일랜드를 붙여서 놓을 수 있는 벽이 생겨 부엌을 더 넓게 사용할 수 있었다.







왼. 싱크대 맞은편 공간.             우. 부엌 베란다 보일러실 앞.






#. 싱크대 맞은편

  싱크대의 맞은편이자 부엌 베란다 문 앞 구석에는 선반을 2단으로 달고 철제 전자레인지 다이를 두었다. 각종 식자재들로 가득 차서 보기만 해도 배불러지는 번듯한 팬트리를 가지는 게 내 꿈이라 아쉬운 대로 이곳을 탄생시켰다. 결국 내가 상상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되었지만 이 앞에 설 때마다 나는 즐거운 기분이 되된다.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해서 그런 것 같다.


  선반 위에는 종종 커피를 내려 마시는 연이를 위해 커피 내리는 도구와 각종 커피빈을 바구니에 담아 올려두었다. 그 외에도 날씨가 쌀쌀해지면 어김없이 찾게 되는 여러 종류의 찻잎들과 와인잔 같은 것들이 올라가 있다. ‘다이’라고 지칭하는 것 외에는 뭐라고 불러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는 그것 위에는, 없어서는 절대 안 될 전기밥솥을 놓고 패브릭으로 덮어 두었다. 그 옆의 유리병에는 시리얼과 파스타, 매일 아침저녁으로 챙겨주는 마농이 사료가 담겨 있다.

 


#. 부엌 베란다

  우리집의 보일러실은 부엌에 딸린 작은 베란다에 있다. 그다지 크지 않은 사이즈의 냉장고는 보일러실 맞은편에 딱 맞게 들어가 있다. 냉장고를 두었더니 정확히 냉장고 문이 열릴 만큼의 공간밖에 남지 않아서 베란다는 그 길로 냉장고방(?)이 되었다. 유일하게 추가로 놓은 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철로 만들어진 3단 그물망이다. 여기에 양파도 보관하고, 감자도 보관하고, 겨울이 되면 귤도 보관한다.








왼. 뒷베란다에 둔 세탁기.            우.빨래를 널기도, 화분에 물을 주기도 하는 뒷베란다.                          






#. 뒷베란다

  침실과 이어지는 뒷베란다는 폭이 좁고 길었다. 요즘 집들과는 다르게 방으로 들어가려면 계단을 한 칸 올라가는 것처럼 한 걸음 딛고 올라서야 했고, 타일도 시골 할머니 집 화장실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촌스러운 타일이었다. 그렇지만 우리 눈에는 그런 것들이 또 그런대로 좋아 보여서 그대로 두었다. 그곳의 한쪽 끝에는 세탁기를 두고 생활한다. 빨래가 다 되었음을 알리는 소리가 나면 다 된 빨래들을 바구니에 옮겨 반대쪽에 있는 빨래 건조대로 향하는 게 우리집의 빨래 루틴이다. 베란다 폭이 좁아 건조대 안쪽까지 손이 미치지 않기 때문에 한 사람이 꼭 거실 쪽 창문틀에 걸터앉아서 빨래 널기를 도와줘야 한다.


  뒷베란다는 연이가 일주일 내지 이주일에 한 번씩 집에 있는 모든 화분들을 모아 물을 주는 곳이기도 하다. 단 한 번이라도 내가 물을 주고 나면 식물들이 왜인지 스멀스멀 앓다가 죽어버리는 일이 반복되기 때문에 식물에 물 주기는 백 퍼센트 연이 담당이다. 나는 연이가 주말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며 식물들에게 물 주는 모습을 바라보는 걸 좋아한다. 그가 식물 하나하나와 눈을 마주치는 것 같기 때문이다. 눈을 마주치고 ‘너네 목 얼마나 말라?’ 물어보는 사람 같다. 나는 식물들에게 그렇게까지 다정하게 말을 걸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그 모습을 바라보는 일을 즐기는 것 같다. 내가 절대 해낼 수 없는 일이라서.











  둘이서 창조해 낸 구석구석을 배경 삼아 별 것 아닌 수많은 일들이 매일 혹은 일주일 간격으로 쳇바퀴처럼 되풀이되었다. 옷 입고 벗기, 커피 내리기, 파스타 해 먹기 , 강아지 밥 주기, 빨래 하기, 식물 물 주기 같은 일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사실은 별 것인 일들이었다. 나와 연이를 지탱해 주는 건 다름 아닌 그런 사소한 일들이라, 그 일들은 별 것이 되었다. 우리가 손수 공들여 고친 집에서 그 일들이 벌어지고 반복된다는 사실이 가끔은 황홀했다.








인스타그램 @dexy.k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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