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의 일기
8살 아이와 39세 아빠의 독서 토론 ...... ?
로미오 아버지는 왜 줄리엣 아버지를 미워했을까
최초의 '변이' 로미오와 '변이' 줄리엣
로미오와 줄리엣은 비극일까
아이가 2016년 4월에 태어났으니 예전 한국 나이로 8세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마 말과 글에 익숙한 집안 내력에 편승해서인지 아이 역시 책 읽기를 무척 좋아하는 편이다. 책을 읽고, 집에서 혼자 읽은 내용을 갖고 이야기를 되풀이하거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거나 말 놀이를 즐긴다. 서사의 위기 속에서 아직까지 아이는 서사 속에서 살아간다.
오늘부터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아주 느슨하게 아이와 함께 둘이 독서 토론을 해보자고 했다. 독서 토론이라는 말은 사실 과하게 표현된 것이고 잠들기 전에 10분 정도 한 권의 책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눠보자는 거다. 마침 아이가 삼성출판사에서 펴낸 어린이용 <로미오와 줄리엣>을 읽고 있길래 그 책으로 하자고 했다. 아이는 몬태큐, 캐퓰렛, 벤볼리오, 티볼트, 머큐소, 이런 이름을 잘도 읽으면서 실감나게 대사를 혼자서 주고 받는다. 영주의 대사를 읽어야 할 때는 근엄한 목소리를 낸다. 줄리엣의 대사에서는 소녀가 등장한다.
저녁 9시 30분. 침대에 같이 누웠다. 아이가 대략 줄거리를 이야기 하고 나면 그냥 내 머리 속에 떠오르는 몇 가지 질문을 아이에게 던져본다. 내가 이 이야기 속 등장인물 중 OOOO 이었다면 나는 소설 속 OOOO과는 다르게 이렇게 행동을 했을 것이다, 나는 이런 부분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어쩌고 저쩌고 ...... 그러면 아이는 1분 정도 제법 그럴싸한 이야기를 하다가 이내 장난이 섞인 엉뚱한 이야기로 빠진다. 자신이 신부님이었다면, 사실 자신은 로미오와 줄리엣을 도와주는 마법사이기 때문에 마법의 물약을 새로 만들어 줄리엣에게 줄 것이라고, 그래서 줄리엣을 더 미녀로 만들어주겠다고 한다. 나는 아이의 엉뚱한 이야기를 막지 않는다. 상상력을 키워주자는 의도는 없다. 그냥 아무 이야기나 하자는 것이다. 어차피 문학이라는 것이 현실과 허구의 교집합 아니던가.
아이의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몬태규 가문과 캐퓰렛 가문은 서로 그렇게 적대하게 되었을까? 예전에 <로미오와 줄리엣> 정본 번역본을 찾아 읽었던 기억을 더듬어 보니, 사실 셰익스피어가 딱히 그 부분에 대해 구체적인 근거를 암시한 점은 없어 보였다. 아이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보았다.
로미오가 줄리엣을 좋아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그랬다면, 로미오도 벤볼리오나 머큐쇼 처럼 평생 캐퓰렛 가문을 미워하며 살았을 것이고 줄리엣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만나 자녀를 낳아 캐퓰렛 가문을 적대하고 저주했을 거야. 왜냐하면 그게 로미오가 배운 세계관의 전부이니까. 캐퓰렛은 로미오의 세계관에서는 존재해선 안되는 거니까, 그리고 로미오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로미오의 아버지의 아버지가 그러했던 것처럼 로미오도 그러해야 하니까. 로미오의 자녀들은 과연 다를까? 로미오의 아들과 딸 역시 평생 캐퓰렛 가문을 미워했을 것이고 줄리엣이 낳은 자녀를 평생 저주하며 살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로미오의 아버지는 결국 또 다른 로미오인 것이고, 로미오의 할아버지 역시 또 다른 로미오일 것이고......
여덟 살 아이를 고려해서 내가 가진 생각을 저것보다는 훨씬 쉽게 설명해주었는데, 아빠가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인지 이해가 되냐고 묻자 그렇다고는 한다. 눈은 이미 반쯤 감겨있다. 아이를 재우고 1층으로 내려와 좀 더 생각을 이어가 보았다. 로미오는 셰익스피어의 소설의 한 장면을 이끌어가는 단 한 명의 '고유명사'가 아니라는 생각. 어쩌면 각자의 세계관에 맞게 빈틈없이 살아가며 그 세계관이 전부인 것으로 믿는 수 많은 군상들을 대표하는 '일반명사'라는 생각. 로미오는, 자신과는 아주 살짝 다르지만 DNA가 99.9999% 일치하는 또 다른 로미오를 낳고 그 로미오는 자신의 분신인 또다른 로미오를 낳고, 그렇게 대를 이어 수 없이 많은 로미오가 생명의 계통을 이루며 끊임없이 전달되고 이어진다면 이건 로미오의 끝없는 서사에 가깝다. 시간의 선 위에서 끝없이 줄을 서 있는 로미오들.
그런 쉼 없는 반복 속에 드디어 로미오 답지 않은 로미오가 등장한다. 변이(Variation)다. 부모의 형질을 이어받아 탄생하였고 그 형질을 후대에 또 전달하는 생명의 경이로움 속에 부모의 DNA를 배신한 변이가 갑자기 솟구쳐 오른다. 그는 로미오이되 이전의 로미오와 같지 않았고, 자신과 같이 "자신이되 자신이 아닌" 다른 변이를 찾았다. 그게 줄리엣이었다. 줄리엣도 캐퓰렛 가문의 수 십 년, 수 백 년 동안 반복된 몇 백 명의 줄리엣의 DNA를 배신한 바로 그 줄리엣이었다. 변이는 변이를 알아보았고 그래서 로미오는 로잘린이 아닌 줄리엣과 결합한다. 그러나 부풀어 오르던 변이는 끝내 독립하지 못하고 사그라든다. 그들은 새로운 종을 창조하려고 했으나 그 힘은 약했고 결국 독약을 마신채 소멸된다. 뜻을 이루지 못했다......
사실 단순한 궁금증에서 시작된 질문이었다. 아이가 읽은 삼성출판사 책에서는, 로미오의 아버지는 왜 줄리엣의 아버지를 그토록 미워했는지 그 이유가 적혀 있었던지? 아이는 그런 내용은 없었다고 했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셰익스피어 4대 비극에도, 5대 희극에도 속하지 않는 묘한 작품이다. 수 천 명의 로미오와 수 천 명의 줄리엣 중에 단 한 쌍의 변이가 새로운 종을 창조하여, 다윈이 말한 "변이를 수반한 유전"에 성공할 수 있었을텐데 그 직전에 시계가 멈추었다. 이 멈춤은 과연 비극일까 희극일까, 잘 모르겠다. 다만, 생명은 보존과 변이 속에서 끊임없이 나아갈 것이고, 이번에는 그 변이의 임계점을 넘지 못한 것 뿐이다. 변이가 보존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 그 지점에선 비극도 희극도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 믿는 것, 뜻하는 것. 그런 것들은 나 자신의 뜻일까, 혹은 그 질서가 당연한 세계관에서만 통용되는 것이었을까. 나는 둘 중 어느 것에 속해있는지 스스로를 정의할 수 있을까? 내가 어느 세계관에 종속된 존재인지 답하지 못하는 것 ...... 그것이야말로 비극에 가까웠다. 나는 줄리엣을 알아본 그 로미오인지 또는 로미오의 아버지인 저 로미오였는지, 당신은 로미오를 알아본 그 줄리엣인지 또는 줄리엣의 어머니인 저 줄리엣이었는지. 둘 다 각자의 존재로 가능한 로미오와 줄리엣이었다. 그러니까,
"당신은 어느 진영입니까?" 이 질문 보다는 "당신은 스스로가 어느 진영인지 알고 있었습니까?" 이 질문에 답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로미오는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었던 존재였다. 생각해보면 셰익스피어는 이 점에 대해 깊게 탐구했던 것 같다. 내가 누구인지 나는 과연 알고 있냐고. <햄릿>에서, <맥베스>에서, <리어 왕>에서, 그리고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23.12.14.
추신. 기록을 살펴보니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마지막으로 읽은 것이 2021년이었다. 대부분 <열린책들>에서 펴낸 번역본으로 읽었는데, 내년에는 <을유문화사> 번역본으로도 다시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