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으로 MBA하다 (16)
인문학으로 MBA하다 (16)
Behavioral Economics and Decision Making. 무의식의 보편성
2024 Fall - Mod 1
#행동경제학, #예술, #생각에관한생각, #샤갈, #원형회귀
2024년 8월 말, 긴 여름방학을 끝내고 새 학기가 시작되어 McColl 경영관 2050 강의실로 향하던 길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15분 정도 걸은 뒤 경영관 건물에 도착해 긴 복도를 따라 강의실로 걸어가는데 복도 옆 강의실이 이미 수업을 받고 있는 학생으로 가득 차 있다. 이건 분명 이상한 일이다. MBA 수업은 80분 동안 진행되는데 1교시가 오전 8시, 2교시가 오전 9시 30분, 3교시가 11시에 시작한다. 몇 달 전 Module까지만 해도 대다수의 학생들은 9시 30분부터 시작하는 2교시를 가장 첫 수업으로 들었기 때문에 내가 학교에 도착한 아침 9시 무렵이면 아직 학생들은 거의 없고 학교는 고요하기만 했다. 그런데 오늘은 한창 수업이 이루어지는 열기로 학교가 이미 뜨거워져 있던 것이다.
아하, 생각해보니 교실에서 수업을 듣는 이들은 지난 8월에 새로 입학한 Class of 2026 1학년 MBA 학생들이었다. 1학년의 첫 MBA 과정은 모든 수업이 오전 8시 1교시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1년 전의 내가 그러했듯이 이들은 Financial Tools, Financial Accounting과 같은 기초 전공 필수 과목을 한 강의실에 60명씩 모여 함께 듣고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1학년과 2학년의 가장 큰 차이는 오전 8시 수업을 듣는지 아닌지다. 나는 1년이 지나 MBA 과정의 반환점을 돌았고 어느덧 관록과 여유를 가진 2학년이 된것이다!
2학년 MBA 과정의 첫 수업은 <Behavioral Economics and Decision Making> 이었다. 위스콘신 출신에 밝은 성격이었던 잉그리드 코크 교수가 가르치는 이 수업은 고전 경제학과 심리학의 결합인 행동경제학에 대해 다룬다. 전통적인 MBA 수업과는 달리 비교적 현실에 보다 가까운 응용 학문을 배울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인지 주위를 둘러보니 첫 수업이지만 학생들의 참여도가 대단했다. 또 경제학의 한 분야를 마케팅 교수가 가르친다는 이색적인 조합도 이 수업을 매력적으로 만드는데 한 몫했다. 행동 경제학은 “인간은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존재이며 인간은 언제나 합리적인 선택을 추구한다.”는 기존의 주류경제학에 반기를 드는 학문이다. 행동 경제학은 무의식을 다루는 심리학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때문에 인간은 경제적인 행동을 할 때 자기도 모르게 직관적이고 무의식적으로 판단을 하는 경향이 있고 그 결과 언제나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것도 아니고 때로는 말도 안되는 선택을 할 때도 있다고 본다.
행동 경제학이 언급하는 인간의 무의식적인 비합리성의 대표적인 사례는 불확실성을 대하는 인간의 이중적인 태도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불확실성을 대단히 싫어하는데 자신이 이득을 볼 것 같은 상황과 손해를 볼 것 같은 상황에서 이 양태는 다르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50%의 확률로 1,000원을 받고 50%의 확률로 아무것도 받을 수 없는 동전 던지기 게임이 있고, 혹은 이 게임을 하지 않고 그냥 500원을 받을 수도 있다고 한다면, 이 두 선택지의 기댓값은 500원으로 동일하다. 두 번째를 선택할 경우 100%의 확률로 500원을 받는 셈이고, 첫 번째 동전 던지기 게임을 하면 1,000원 x 50% + 0원 x 50% = 500원이므로 두 선택의 기댓값은 같은 것이다. 내가 이득을 보는 이런 상황에서 대부분의 사람은 동전 던지기 게임을 선택한다. 어차피 결과값이 같지만 혹시 누가 아는가? 50%의 확률로 나는 1,000원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에 내가 이득을 볼 때는 불확실성을 그리 나쁘게 보지 않는다. 오히려 이때의 불확실성은 좀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희망으로 바뀌어 인식된다. 우리가 로또를 매 주 사는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다.
그런데 동전 던지기 게임에서 50%의 확률로 받을 수 있는 돈이 1,000원이 아니라 1,000억원이 된다면? 혹은 돈을 받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우리가 벌금을 내는 Loss game으로 바뀌게 된다면? 조건이 달라질 때 선택의 양상은 다르게 나타난다. 판돈을 키워보자. 동전 던지기 게임에서 50%의 확률로 받는 돈이 1,000억원이 되고, 혹은 두 번째 선택지에서 내가 100%의 확률로 500억원을 받을 수 있는 것으로 게임머니가 바뀌었다고 해보자. 이 경우 동전 던지기 게임이나 그렇지 않은 경우나 나는 500억원을 받을 것으로 기대되는데 이 경우 사람들은 대부분 두 번째 선택, 즉 100%의 확률로 500억원을 받는 경우를 선택한다. 판돈이 500원에서 500억원으로 커졌기 때문에, 사람들은 500억원도 충분히 많은 돈이라고 생각하고 안전하게 500억원을 확실히 받는 편을 선호하게 된다. 앞서 내가 이득을 볼 때 낙관적으로 불확실성을 선호했던 경향은, 판돈이 커졌을 때 확실한 500억원을 선택하는 경향으로 바뀐다. 판돈이 올라갈수록 우리가 체감하는 효용은 점차 감소하기 때문에 우리는 굳이 불확실성에 베팅하지 않고 확실한 게임머니를 챙기려고 한다. 확실성이 불확실성을 이긴다.
인간은 언제나 확률통계적으로 기대값을 계산해서 합리적인 선택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신념, 가치관, 환경 등에 따라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을 추구한다. 바로 이렇게 인간의 무의식적인 선택 경향에 대해 탐구하는 것이 행동경제학인데, 행동경제학은 1990년대 이후 경제학의 중요 하위 학문으로 인정받게 된다. 이어 행동경제학은 경영학과 접목되어 어떻게 하면 기업이 사람들의 비합리적 선택 경향을 잘 읽어서 매출을 올리고, 고객에게 어떤 상품을 어떤 가격으로 제공할 것인지를 결정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UNC 뿐만 아니라 Chicago Booth나 Columbia Business School 등 다른 MBA 프로그램에서도 행동경제학을 연구하는 Behavioral Science를 세부 심화 전공 과정으로 개설해서 학생들의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학교마다 행동경제학을 탐구하는 포인트는 조금씩 달라서 어떤 학교는 Finance 교수가, 어떤 학교는 Strategy 교수가, 또 어떤 학교는 Marketing 교수가 이 수업을 담당하지만 목표는 모두 비슷하다. 인간의 비합리적인 생각과 행동의 원인을 이해하고 이를 비즈니스 세계에 적용시키는 것이다.
내가 행동경제학을 처음 접한 것은 이 분야의 세계적인 거장인 다니엘 카네만 교수 (1934-2024)의 책 <생각에 관한 생각(Thinking, Fast and Slow)>를 읽었던 10년 전이었다. 2012년부터 나는 <1년에 책 100권 읽기>라는 개인적인 목표를 세워서 열심히 책을 읽었는데 몇 년 책을 읽은 뒤 돌아보니 내가 읽었던 책의 거의 대부분이 철학, 역사, 종교, 예술과 같은 인문학 책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경향은 이 글을 쓰는 2025년까지 변하지 않았는데, 2012년부터 2025년까지 읽은 약 1,000권의 책 중 인문학으로 분류되는 책이 480권, 문학이 320권이었다.)
인문학 책을 많이 읽는 건 좋기도 했고 또 불안하기도 했다. 인문학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책을 읽으며 개인적인 지적 호기심을 채우는 것은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나름대로 직장인인데 점점 비즈니스와 거리가 멀어지는 몽상가가 되는 기분도 들었던 것이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어느 해에는 경영학 책이나 경제학 책으로만 100권을 읽어보자는 결심을 했다. 그렇게 호기롭게 ‘경제학 초보라면 읽어야 할 필독서’, ‘경영학 천재가 되고 싶다면 읽어야 할 필독서’들을 찾아서 읽어나가기 시작했는데 개인적으로 고백하자면 무척 숨막히는 순간이 많았다. 몇 백 년에 걸친 경제학 이론, 위대한 기업들의 경영 혁신 사례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하면 확실히 세상을 이해할 수 있고, 확실히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단언하였다.
물론 자신의 이론에 대해 그 정도의 자기 확실성이 없다면 곤란하겠지만, 이 경제학자의 말에 따르면 세상은 이렇게 구성되어 있고 때문에 이렇게 이해해야 하며, 반대로 저 경제학자의 말에 따르면 세상은 저렇게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앞서의 경제학자와는 다른 방식으로 세상이 움직이는 구조를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성공적인 경영 혁신 사례를 소개하는 책도 마찬가지였다. 성공적인 경영혁신에는 통찰력, 인사이트, 예지력, 뼈를 깎는 고통을 견디는 초월적인 인내력, 중성자탄처럼 직원을 해고시킬 수 있는 결단력이 요구되었다. 성공한 경영인들은 경영의 덕목을 처음부터 몸 안에 갖고 있던 것처럼 주저없이 그런 경영 무기들을 사용하는 것 같았다.
경제학과 경영학을 다루는 책들을 수 십 권 읽으며 나는 “아 이렇게 하면 세상을 이해하고 변화시킬 수 있겠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지 않고 오히려 “꼭 이 방법 밖에 없나?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은 너무나 다양할텐데 오히려 확실한 것보다는 내가 모르는 것, 불확실한 것이 더 많지 않은가?” 라고 물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주류에서 벗어난 이질적인 경제학 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는데 그때 <생각에 관한 생각>을 읽고 감탄한 기억이 난다.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된 행동경제학은 인문학 책을 좋아하던 내게는 몹시 흥미로운 주제였다. 다니엘 카네만 교수는 인간은 늘 심사숙고해서 합리적인 선택만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자신의 내재적인 본능, 무의식, 경험에 기초해서 매우 빠르게 직관적인 선택을 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본능, 무의식, 경험, 직관 이런 단어들은 확실성보다는 불확실성에 기반했고, 나는 ‘그래,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것이 훨씬 더 많은 법이야. 가수 조성모가 2000년에 리메이크해서 부른 <가시나무> 노래 가사처럼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으니 우리는 확실성보다는 불확실성을 더 많이 안고 살아가는 존재 아닐까…’ 라며 주류 경제학보다는 행동 경제학을 더 재미있게 느꼈다. 수학 문제를 푸는 건 좋아했지만 숫자로 세상을 이해하는 것을 별로 선호하지 않았던 개인적인 성향도 행동 경제학을 매력적으로 느끼게 만든 이유 중 하나였다.
잉그리드 코크 교수와 함께 두 달 동안 우리는 행동 경제학의 이론과 적용 방안을 차근차근 배웠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수업은 영수증 팁에 담긴 행동 경제학 이론을 배우고 학생들과 토론을 했던 시간이었다.
미국에서 가끔 가족과 외식을 할 때마다 도대체 이 식당에 내가 팁을 얼마나 줄 것인지에 대해서 고민을 하게 된다. 식사를 마치고 기다리고 있으면 서버가 와서 계산서를 주는데 식사가격에 팁을 얼마를 줄 것인지를 적는 빈칸이 있다. 빈칸 밑에는 손님들이 계산하기 쉽도록 식사가격의 몇 퍼센트가 얼마의 팁인지 친절하게 계산이 되어 있다. 예를 들어 식사 가격이 $72.2이라면 이에 대한 15% 팁은 $10.8, 18% 팁은 $12.3, 20% 팁은 $14.4 이라는 점이 계산서 말미에 함께 적혀있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손님들은 정확한 가격을 계산하기 귀찮기 때문에 보통 제시된 15%, 18%, 20% 팁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되는데, 이것은 행동 경제학 이론 중 디폴트 효과에 해당한다. 몇 개의 선택지가 주어지면 이외의 선택지를 쉽게 떠올리지 못하는 것이다.
이어 우리는 15%, 18%, 20% 팁 중에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를 고민하게 되는데 왠지 15% 팁은 적은 것 같고 그렇다고 20% 팁을 내기엔 팁을 많이 주는 것 같다며 보통 가운데 18% 팁을 주면서 나름대로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고 자부한다. 양 극단에 위치한 선택지를 제외하고 가운데 선택지로 향하는 것을 행동 경제학에서는 극단 회피 효과라고 부른다. 물가가 비싼 지역에 가면 기본으로 주어지는 팁은 15%, 18%, 20%가 아니라 20%, 22%, 25%로 껑충 뛴다! 그때도 우리는 투덜대면서 아마 가운데 22% 팁을 선택할 것이다. 우리는 이리저리 머리를 굴린다고 했지만 사실은 무의식적이고 직관적인 선택을 했을 뿐이고 행동 경제학은 이렇게 합리성 뒤에 자리잡은 인간의 비합리성을 꿰뚫는다. 잉그리드 코크 교수와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팁 문화에 대해 꽤 오래 토론을 나눴는데, 팁 문화에 익숙한 미국 학생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컸던 모양이다. 하긴 주문도, 음식 서빙도, 치우는 것도 손님이 직접 해야하는 식당에서조차 “팁을 얼마 주시겠어요?” 라고 물어보는 단말기 화면을 보면 화가 나는 건 미국인들도 마찬가지였나보다.
행동 경제학의 매력은 인간의 합리성과 비합리성을 모두 인정하면서 경제적 주체로서의 인간을 입체적으로 조망한다는 데 있다. 합리성과 비합리성은 여러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다. 순간적이고 직관적으로 비합리적인 선택을 한 뒤 이를 합리적으로 곱씹으며 이전의 선택을 수정하거나 합리화하기도 하며, 혹은 합리적으로 선택했다고 자부하지만 내 선택의 이면에 무의식적인 직관과 생각이 누적되어 있기도 한다. 행동 경제학은 인간을 합리적인 주체로 간주하는 주류 경제학과는 확실히 다르지만, 그렇다고 인간의 무의식과 즉각적인 직관에만 기대지도 않는다. 이는 개인의 고유한 경험과 사유체계를 인정하는 심리학과 달리, 인간 무의식의 보편적인 구조를 연구하는 정신분석학에 더 가깝다. 분명 각 개인의 심연에는 개인만의 경험과 환경이 누적된 무의식이 깃들어있고 때문에 무의식 세계 속에서 개인은 일반화되지 못한 개인으로 존재한다. 그렇지만 인간의 개별적인 무의식도 큰 범주에서 보면 보편적인 구조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에, 개인의 무의식은 집단 전체의 무의식으로 환원된다. 무의식이라는 것도 결국에는 보편성을 갖는 법이다.
행동 경제학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무의식적인 선택에서 출발하되 이러한 비합리적인 행동과 생각을 어느 정도 일반적인 틀로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어떤 이들은 행동 경제학에서 다루는 여러 이론을 보며, “나는 저런 상황에서 저렇게 행동하지 않는데?” 라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동 경제학은 경제적 주체로서의 개별적인 무의식을 표면 위로 꺼내 올려 다수에게 적용할 수 있는 일반론으로 추상화한다.
개인의 개별적인 무의식에서 출발해서 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지점까지 추상화하는 것이라면 아무래도 마르크 샤갈을 떠올릴 수 밖에 없다.
1887년 구 러시아 제국의 한 지방, 지금의 벨라루스에서 태어난 마르크 샤갈은 20세기 초 파리로 모여든 에꼴 드 빠리의 일원이다. 샤갈은 구 러시아 제국의 가난한 유태인 집안에서 태어나 고향을 등지고 프랑스 파리에 정착했는데 그의 그림에는 잊혀진 것들에 대한 향수, 꿈, 사랑, 유년시절의 기억, 유대 가족의 전통이 어우러지며 나른하면서도 신화적이고 몽롱하면서도 애수에 찬 독특한 분위기가 깃들어있다. 꿈, 기억, 환상 이런 것들은 인간의 무의식과 관련한 핵심 개념들인데, 그래서인지 샤갈의 그림을 보면 인간의 뇌 속, 꿈 속에서 펼쳐지는 무의식을 자유롭게 탐색하는 기분이 든다. 그런데 이런 무의식으로의 여행이 크게 괴이하다거나 그로테스크하지 않다. 오히려 샤갈 자신의 무의식을 가장 서정적인 (동시에 애잔한) 색채로 그려냈기 때문에 보편성을 갖고 독자들에게 다가간다. 무의식이 보편성을 만날 때 강한 호기심이 피어난다. 신화적이고 환상적인 요소가 비현실적이긴 하지만, 단순히 ‘잘 모르겠다’며 단절되는 감정보다는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미국에서도 여러 미술관에 마르크 샤갈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지만, 같은 작품을 두 번 본 것은 필라델피아와 뉴욕에서였다. 미국에서 MBA를 하는 동안 필라델피아는 2024년 여름과 같은 해 겨울에 두 번 찾았고 뉴욕은 2024년 봄에 한 번 방문했는데, 여행하며 두 도시를 대표하는 Philadelphia Museum of Art(이하 필라델피아 미술관)와 The Museum of Modern Art(이하 뉴욕 모마)를 두 번씩 찾았다.
필라델피아 미술관은 영화 <록키>에서 아침 러닝을 하던 주인공 록키 발보아(실베스터 스탤론)가 미술관 계단을 뛰어올라 간 뒤 주먹을 불끈 쥐며 만세를 하던 곳으로 유명하다. 이곳에는 마르크 샤갈의 <The Poet>이 전시되어 있다. 이 작품은 세로 1.96미터 가로 1.45미터로 제법 큰 그림인데 미술 작품이 전시된 방과 방 사이 긴 복도에 전시되어 있어서 눈여겨보지 않으면 자칫 그림을 놓치기 쉽다. 샤갈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떠나 파리를 처음 방문했던 1911년에 이 그림을 그렸는데 시인이 리퀴르를 마시며 시를 쓰고 있다. 작품은 꽤 재미있다. 시인 얼굴은 초록색으로 180도 위아래가 돌아가있고 옷은 청색이며 테이블은 적색으로 되어 있는데 얼굴과 몸통, 테이블이 큐브 덩어리로 그려진 모습이 그 당시에 유행하던 큐비즘(입체파)과 포비즘(야수파)의 영향을 받았던 것 같다. 그림 속 배경이 몇 시인지, 어디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환상적인 시공간 속에서 술에 취한 시인은 얼굴이 거꾸로 될 정도로 고민하며 시 창작에 몰두하고 있다…
필라델피아 미술관에 전시된 다양한 그림 중에서도 나는 샤갈의 <The Poet>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염소, 당나귀, 서커스, 하늘을 나는 남녀와 같이 샤갈의 다른 작품에서 흔히 보이는 신화적인 요소는 많이 없지만 오히려 그 점이 이 작품을 적당히 현실적이면서도 또 적당히 비현실적인 면을 두루 볼 수 있어서 더 좋았다. 합리적인 존재로 살아가야만 하는 한 인간이 사실 자신에게 내재된 비합리적인 가치들- 과거, 꿈, 창작, 예술을 그리워하는 것 같았다. 비합리적인 것들을 그리워할 때 고개를 제대로 들 수가 없다. 그림 속 시인처럼 위와 아래를 반대로, 현실과 환상의 위치를 반대로 돌려야 한다.
뉴욕 모마에 전시된 샤갈의 작품은 역시 그가 파리로 건너온 직후인 1911년 그린 <나와 마을>이다.
“염소와 남자의 눈동자는 희미하고 고르지 않은 흰선으로 연결되어 서로 얼굴을 맞대고 있다. 염소와 남자의 코, 볼, 턱의 윤각선들은 교차하며 대각선, 동심원, 색면과 자잘한 기하학적 형태를 이룬다. 염소와 남자 주변에는 꿈같이 공중에 떠 있는 인물들이 있고 포도나무 가지가 배열되어 있다. 그림 왼쪽에는 여자가 소젖을 짜고 있고 그 위 교회 입구에는 얼굴이 떠있으며, 나란히 그려진 집들 중 두 채는 거꾸로 그려져 있어 전체적으로 몽롱한 분위기의 구성을 보여준다.
<나와 마을>은 샤갈이 러시아에서 파리로 이주 후 1년 뒤에 그린 그림이다. 파리에서 그는 벌집(La Ruche)이라고 알려진 국제적인 예술가들의 활기찬 그 룹에 가입했다. 벌집이라는 이름으로 불린 이유는 그들이 몽빠르나스 주변에 가까이 살면서 생산적인 교류를 했기 때문이었다. 당시에 활발하던 큐비즘에 일부 영감을 받은 <나와 마을>은 고향 벨라루스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그렸다. 민속적인 이미지와 아름다운 색조들은 작가의 개성적이고 독특한 추상 언어를 보여 준다. 벨라루스는 비타브스크(Vitebsk) 교외에 있는 농촌 마을이다. 작품의 제목은 샤갈의 친구인 시인 블레이제 첸드라스(Blaise Cendrars)가 지어주었는 데 작가와 그의 고향과의 관계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염소와 남자가 서로 찌르는 듯이 응시하는 눈(I와 Eye)의 동음 다의어를 가지고 한 말장난이기도 하다.“
(뉴욕 모마 가이드라인 책자 중)
<나와 마을>은 샤갈 작품의 대표적인 오브젝트인 염소가 전면에 드러난 작품이기도 하고 또 그의 고향을 환기시키는 나즈막한 건물들이 등장하며 그의 고향인 벨라루스 농촌 마을을 연상시킨다. 또 뉴욕 모마에 전시되어 있기 때문에 많은 이들에게 잘 알려진 작품이다. 공식 가이드라인 설명처럼 이 작품은 민속적이면서도 서정적인 이미지가 인상적이고 또 이유없이 샤갈에게 정을 느끼게 만든다.
사실 샤갈의 <나와 마을>이 전시되어 있는 뉴욕 모마뿐만 아니라 필라델피아 미술관은 우리에게 유명한 온갖 근현대 회화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예술의 전당이다. 처음에는 아 저것이 고흐의 작품이야, 저기에는 고갱의 작품이 있군, 역시 르누아르의 뭉개지는 듯한 부드러운 화풍은 압권이야, 포비즘의 선구자답게 폴 세잔이 그린 인물은 원통형을 덧대어 붙인 것처럼 독창적이군,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은 역시 현실의 법칙을 초월하는군, 에곤 쉴레의 인물은 깨질듯 연약하면서도 날카롭기 그지없군… 이라며 감탄하지만 그러한 감탄이 누적되다 보면 감흥은 조금씩 사라지고 이 모든 대작을 두루 봐야한다는 일종의 의무감에 시달리게 된다.
그렇게 하루 종일 꽤 다양한 작품을 감상하고 난 뒤 숙소에 돌아오면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역시 샤갈의 그림이었다. (역설적으로 필라델피아 미술관과 뉴욕 모마에는 샤갈 그림이 한 점씩 전시되어 있어서 집중하게 된 결과이기도 하다.) 샤갈의 그림은 다른 작품들과는 조금 달랐다. 그림을 유심히 보고 있으면 작가가 집념하던 그것이 독자들에게도 전달되는 그림들이 있다. 거친 색채와 붓자국에서 뜨거운 정념이 느껴지는 고흐나, 반대로 절제된 인물의 자세와 표정을 통해 텅빈 감정을 전달하려던 데이비드 호크니가 그렇다. 샤갈도 자신의 기억, 꿈, 환상을 가감없이 드러낸다는 점에서 이들과 비슷했지만 신화적이고 무의식적인 요소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샤갈의 그림은 좀 더 독특했다.
반면 샤갈은 환상적이고 무의식적인 표현으로 지나치게 나아가지 않았다는 점에서 초현실주의 그림과 결을 달리했다. 살바도르 달리, 앙드레 보르통, 르네 마그리트가 그린 그림은 흥미롭고 신비롭지만 그 이상 깊게 파고들어 작가가 생각하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그들이 표현한 초현실은 캔버스 위에 그려져 있을 뿐 초현실 이면에 작가가 집념했던 무엇을 연상하게 만들진 못했다. 적어도 내게 샤갈은 “이해 가능한, 이해하고 싶은 환상”이었다. 그가 그림을 그리며 떠올린 사랑, 기억, 꿈, 환상과 같은 무의식적인 요소들은 분명 샤갈이라는 화가를 지탱하는 그만의 개별적인 요소였지만, 동시에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그의 그림 위로 멈추게 하는 보편성을 갖고 있었다. 그는 지나치게 낯설지 않았고 또 지나치게 낯이 익지도 않았다. 그는 합리성과 비합리성, 현실과 신화, 현재와 과거, 사람과 동물, 세속과 예술 사이에 존재했고 이 모두를 우리로 하여금 경험하게 했다.
행동 경제학을 그림으로 옮길 수 있다면 나는 샤갈의 작품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간에게는 주류 고전 경제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비합리적인 행동이 존재하듯이, 샤갈의 그림은 엄격한 구도와 인물의 배치로 아름다움을 설명하던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의 그림과는 다르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무의식과 환상의 표현에만 몰두한 나머지 보편성을 얻지 못하는 현대 작품들과도 분명 다르다. (개인적으로 나는 현대 작품은 이전 시대의 보편적인 아름다움보다는, 작가와 감상자의 일대일 개별적인 교감에 있다고 믿는 편이다) 샤갈의 작품은 그의 무의식 속 기억에서 출발하여 서정적이고 애잔한 표현으로 많은 이들에게 보편적인 아름다움을 전달한다. 이것이 샤갈의 그림이 갖는 독특한 매력이다. 행동 경제학도 비슷한 태도로 경제적 존재의 선택을 연구한다. 사람들의 무의식적인 행동을 분석해서 최대한 보편적인 이론을 만들어서 비합리적인 존재로서의 인간이 “그래 이건 바로 내 이야기야” 라고 감응하도록 만든다, 그런 측면에서 행동 경제학과 샤갈의 예술은 닮아있다.
잉그리드 코크 교수는 행동 경제학 이론을 적용하여 사회적 기업이나 조직의 목표를 쉽게 달성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연구한 뒤 마지막 수업에서 이를 조 별로 발표하도록 했다. 내가 속한 팀은 미국 NASA를 선택했는데 NASA가 더 많은 우주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시민들의 자발적인 기부금을 늘리는 방안을 행동 경제학 관점에서 다각도로 고민했다. 과제를 준비하며 우리는 수업 시간에서 배운 행동 경제학의 다양한 이론을 다시 돌아봤는데, 여전히 인간은 주류 경제학이든 행동 경제학이든 경제학의 틀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업 시간에 배운 영수증 팁을 다시 떠올려보자.
나와 아내는 샤갈의 그림을 보러 필라델피아에 머물렀을 때 어떤 식당에서 불친절한 서버를 만난 적이 있다. 필라델피아라면 역시 필리치즈스테이크를 먹어야 하는데 맛있다고 소문난 식당을 수소문했고 여름이라 날씨가 좋아 야외에서 저녁을 먹게 되었다. 문제는, 유난히 우리 테이블을 맡은 서버가 불친절했다는 점이다. 다른 테이블에는 기본으로 제공되는 식전 빵을 갖다주지도 않고, 화장실이 어디냐고 물어보자 대답 대신 손가락으로 화장실을 가리키거나, 식사를 테이블에 소리나게 놓는 모습이 꽤 불친절했다. 서버가 불친절하자 맛있다고 소문 난 음식도 별로 맛이 없게 느껴졌다. 혹시 이게 인종 차별 아니냐고 단단히 화가 난 아내는 식사를 마치고 계산서가 나오자 팁을 적는 칸에 매우 크게 숫자 0을 쓰고 식당을 빠져나왔다. 팁을 한푼이라도 주기 아까울만큼 서비스에 만족하지 못했다는 의미였는데, 아내와 달리 간이 작은 나는 혹시라도 계산서를 보고 화가 난 서버가 쫓아올까봐 식당을 빠져나오는 길에 계속 주위를 두리번거려야했다.
나중에 아내가 미국인 친구에게 물어보니, 정말 서비스가 형편없어서 이를 식당에 알리고 싶다면 팁을 1센트 적으면 된다고 했는데, 이는 너의 서비스를 화폐가치로 환산하면 고작 1센트에 불과하다는 의미라고 했다. 1센트나 혹은 우리가 적었던 숫자 0이나 돌이켜보면 행동 경제학의 틀을 깨는 행동인 셈이었다. 그때 분명히 계산서에도 식사 가격의 18%, 20%, 22%에 해당하는 팁 금액이 친절하게 계산되어 있었는데, 우리는 그들이 기대한 ‘디폴트 효과’에 휘둘리지 않고 틀을 깨는 선택을 했던 것이다.
이런 틀을 깨는 선택은 반대 상황에서도 존재한다. 나영석PD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채널십오야’에서 2024년 <이서진의 뉴욕뉴욕 시즌2>를 방영한 적이 있는데 여행 도중 이서진이 뉴욕 시내에 위치한 고급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사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레스토랑 분위기, 식사 퀄리티, 함께 곁들인 품질 좋은 와인까지 필라델피아에서 나와 아내가 경험한 것과 달리 이서진과 일행은 기분좋은 경험을 했고, 이서진은 거의 30%에 가까운 금액을 팁으로 지불했다. 식사 가격은 $1,101.82였는데 이서진은 팁을 적는 칸에 $300을 과감하게 적은 것이다. 일반적으로 15%, 만족스럽게 식사를 했다면 20%를 팁으로 지불하는 것이 일반적인 문화인 것을 떠올리면 이서진 역시 틀을 깨는 선택을 한 셈이다. 나와 아내가 지불한 $0, 그리고 이서진이 지불한 $300은 행동 경제학으로 어느 정도 설명이 가능할까? 사람은 극단의 불만족과 극단의 만족 앞에서는 주류 경제학이든 행동 경제학이든 경제적 존재로 설명되지 않는 행동을 여전히 한다.
샤갈의 그림을 좋아하는 나도 샤갈의 모든 작품을 이해하고 아름답다고 느낄 수는 없다. 왜 여기에 염소와 당나귀가 그려져있는지, 그것들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지, 왜 배경에는 묘지가 그려져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그림도 많다. 그러나 그 이해할 수 없는 성질이 섞여있다는 것이 샤갈을 계속 좋아하게 만든다. 결국에는 이해되지 않는 것의 의미를 알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인간의 이해되지 않는 모습을 최대한 이해하려는 것, 그렇게 해서 합리적으로 해석된 비합리성을 보며 보편적인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 그러나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틀에서 벗어나는 생각과 행동은 늘 존재한다는 것, 바로 그점 때문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인간의 이해되지 않는 모습을 최대한 이해하려는 것…
이 원형회귀는 행동 경제학에 대한 것이기도, 샤갈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인간은 <보편적인 노래>를 듣고 싶어하지만 동시에 모든게 너무나 이해 가능한, 선명한 합리성으로만 세상이 구성되어 있다면 가슴 설렐 일이 없지 않은가. 브로콜리너마저가 노래한 것처럼, 세상 만물이 보편적인 일들이 될수록 함께한 시간도 장소도 마음도 기억나지 않게 되지 않겠는가. 우리는 예측 가능성과 예측 불가능성, 현실과 환상, 무의식과 의식, 개별성과 보편성 사이에서 ‘계속 궁금해지는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되는 법이다.
다시 뉴욕에 가게 되면 샤갈의 그림으로 가득한 구겐하임 미술관에 꼭 들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