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삼각자 Apr 23. 2024

new phase

짧게 끝날지도 모르는 암투병 관찰기

4월 21일. (일)

교회 구역모임에서 아버지의 상황에 대해 공유했다.

너무 덤덤하게 말한 건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나 스스로가 객관화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들 함께 기도하겠노라고 위로의 말을 전해주었다.


집에 돌아와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고 청소와 빨래를 했다.

시간이 정지되어 있을 본가가 자꾸 생각나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녁에는 나와 동생 가족 모두 함께 아버지께 면회를 갔다.

아이들은 병상에 누워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에 놀랐겠지만 울거나 다가가지 않으려 하지는 않았다.

아버지는 최근 며칠사이 본 것 중에 가장 또렷하게 눈을 뜨고 웃음을 띤 표정으로 아이들을 대했다.

며느리들도 아버지에게 힘내시라며 쿨하게 토닥인다.


우리 네 식구.

아버지와 어머니. 나와 동생.

우리가 어렸을 때 아버지는 우리를 그렇게 불렀다.

많지는 않아도 가족이 늘어났지만 오늘 내 눈에는 우리 네 식구만 크게 보인다.

이 과정을 겪으며 누군가는 마음이 상할 것이고 이해를 바라는 기대가 이기적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4월 22일. (월)

주치의가 주말 동안 아버지의 상태가 호전되도록 해보자고 한 결과를 보게 되는 날이라 서둘러 병원엘 갔다.

월요일과 화요일은 오후 회진인걸 깜박했다.

아침에 지난 목요일 이후로 계속 달고 계셨던 airvo덕으로 산소포화도가 정상으로 유지되어 산소와 콧줄로 변경했다.

산소통을 달면 휠체어로 이동을 하실 수 있게 됐고, 주말까지는 낮에 많이 주무셔야 할 정도로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는데 아침에 침상에 앉아 계신 모습은

훨씬 좋아 보였다.

그렇게 오전을 비교적 좋게 출발했다.


오후 1시에서 2시 사이에 회진이 잡혀 있었는데 예정보다 주치의가 일찍 병동에 와서 아버지를 보고 나서 나를 따로 불렀다.

따로 부른다는 것은 좋은 얘기가 아니라는 것이지.

결국 항암치료는 포기하는 걸로 결론이 났다.

지금 모니터 상의 바이탈과 눈에 보이는 아버지의 상태는 호전된 걸로 보이지만 혈액 검사결과가 말해주는 환자의 속상태는 되돌아갈 수 없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얘기다.

이번 주까지는 병동에 계속 입원을 할 수 있도록 할 테니 호스피스 준비도 하시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래서 처음으로 대놓고 물어봤다.


“남은 시간이 얼마정도 될까요.”

“한 달에서 두 달 정도 일거 같습니다.”


나는 태세전환이 너무 빠른 것인지, 의사의 말을 너무 믿는 것인지. 아니면 포기가 너무 빠른 것인지 모르겠지만 바로 그다음 단계의 행동을 시작해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게 생겼다. 당연한 것이겠지만.


점심시간에 잠시 나갔다가 오후 진료가 시작될 때 진료협력실에 들렀다.

협력관계에 있는 요양병원과 호스피스 의료기관 리스트를 받고 간단히 설명을 들었다.

동생에게 전화로 내용을 공유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의 저녁을 챙기고 공부를 잠시 봐준 뒤 병원으로 다시 돌아와 퇴근을 하고 온 동생과 만났다.

동생도 나도 S, T인지라 반응이 비슷하다.

요양병원과 호스피스. 그리고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장례에 관해 간단한 이야기를 나누고 아버지에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인사를 드리고 또 하루의 밤을 병실에서

보내야 할 어머니를 남겨두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 본 하늘과 구름이 정말 예뻤다.

이 좋은 계절에 밖도 보이지 않는 병실에서 창을 등지고 문 밖 데이룸에 앉아있는 나를 바라보고 있던 아버지의 모습이 잊히지 않을 것 같다.

겉으로는 아닌 것 같아도 속으로는 펑펑 울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주말의 병동은 평온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