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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삼각자 Apr 23. 2024

입원 1주일째

짧게 끝날지도 모르는 암투병 관찰기

4. 23.(화)

첫 번째 항암을 위해 2박3일 일정으로 시작한 아버지의 입원이 오늘로 1주일이 되었다.

오늘 아침엔 휠체어를 타고 방사선종양학과 교수 면담을 위해 내려가셨다.

airvo가 없이도 이동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산소포화도가 회복된 것 만해도 많이 편해지셨을 것이다.


먼저 받았던 방사선 치료는 효과가 있었는지 허리와 골반의 통증이 없다 하셔서 3회 정도가 남았지만 여기서 종료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이로서 항암, 방사선 치료 등 암치료는 더 이상 하지 않는 것으로 정리됐다.

이 치료가 끝나지 않으면 호스피스로는 갈 수가 없기도 하고, 아버지와 어머니도 더 이상의 치료는 의미 없다는 생각을 진작부터 하고 계셨던 터라 금방 동의가 됐다.


오후에는 콧줄도 빼셨다. 산소포화도는 92에서 95 사이에서 유지되고 있다.

양쪽에 달린 배액관과 귀에 연결된 전극 하나만 남았다.

며칠 전 지친 모습으로 침대에 누워 계시던 것보다는 훨씬 좋은 모습이다.


주치의의 말기암 소견이 담긴 의뢰서가 작성되었고, 진료협력센터에서 직접 관련 자료 전송이 가능한 병원을 시작으로 진료예약을 하기 시작한다.

집과 그리 멀지 않아 어머니가 어렵지 않게 가실 수 있는 병원 위주로 해보니 서울에 있는 입원형 호스피스의 절반정도가 가능한 것 같다.

대기가 많다고 하던데 어떻게 될지...


입원 1주일 만에 큰 저항 없이 마지막을 준비하는 절차에 들어가다니.

순해빠진 사람들인 건지, 아니면 몇 날 후 현실을 부정하는 울부짖음이 터져 나올지 알 수 없지만 불과 한 달 전까지 그렇게 건강했던 분과 곧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이 점점 현실로 다가온다.


아버지는 입원 후 처음으로 침대에서 내려와 휠체어를 타고 창밖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엄마랑 두 아들 행복하게 잘 살아.”라는 말씀을 하셨다.

순간 가슴이 철렁했지만 곧 저 모습이 포기는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알 수 없는 그런 자신의 생애에 대한 깨달음 같은 것을 가지고 계셨구나.

아프고 힘들고 정신을 차리기 힘든 때가 종종 있지만 그 상황에서 자신의 삶을 정리하려는 생각을 놓지 않고 계신 아버지에게서 당신의 젊었던 시절을, 그렇게 크게 보였던 모습을 다시 본다.


비외른 보리처럼 흰 유니폼을 입고 나무 라켓을 들고 테니스를 치던 그 모습.

오랫동안 내 기억에서 잊혀 있던 아버지의 젊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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