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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꺼운타인 Sep 25. 2022

라면 먹고 갈래?

인생라면

라면은 상황의 맛이다. 맛있는 상황이 없다면 라면은 그저 끼니나 때우는 인스턴트에 불과하다. 모름지기 영혼부터 당기는 라면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그럴싸한 상황이 있어야 한다. 그 상황은 지옥의 숙취를 겪을 때도 좋겠고, 라면값 백배에 달하는 랍스타가 목욕재계를 하고 기다릴 때도 좋겠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하는 연인의 라면만큼 불타는 상황이 있겠는가. 단언컨대 ‘라면 먹고 갈래’라는 말보다 사랑의 심장을 들끓게 하는 말이 없다. 라면은 입술이 퉁퉁 불도록 키스를 하고, 긴 긴 밤을 보내고, 마침내 사랑에 이르게 하는 힘. 그 힘으로 라면은 가장 드라마틱한 로맨스를 만들기도 한다.


나 역시 라면 한 봉지로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 적이 있었다. 세상은 내게 돈과 명예를 주지 않았지만, 라면을 기가 막히게 끓이는 능력을 주었다. 사랑에 이르게 하는 힘을 가졌으니, 못해 볼 사랑이란 게 없었다. 그러나 사랑을 나눌 방 한 칸 없이 라면 한 봉지만 있는 상황은 사랑은커녕 모진 자신만을 확인하는 일이었다. 뜨밤을 보내고 싶어도 선배 집에 겨우 얹혀사는 처지였고, 알바만이 라면 한 봉지를 지키는 일이었다. 내 능력을 알아본 이들은 애인의 집에서 라면을 먹으면 되지 않냐고? 묻는다. 감성적으로 대답하자면 사랑은 주는 쪽보다 받는 쪽이 이유가 많은 법이다. 지금의 사랑(아내)이 집을 사 오고, 라면을 먹자고 한다면 내 기꺼이 이 한 몸 바쳐 사랑의 경지를 이루겠으나, 그때는 능력 없이 자존심만 센 비운의 주인공이었다. 참으로 어리석게 사랑보다 사랑의 이유에 복무했다.


그러나 그 비운의 주인공한테도 일평생 그리워할 라면 한 그릇은 있다. 광양시 다압면 매실마을에서 알바를 할 때였다. 나의 일은 눈이 어두운 어르신들을 대신해 전국 각지로 나갈 매실 택배에 주소를 적는 일이었다. 말이 송장만 적는 일이지, 매일같이 나오는 매실을 11톤 트럭에 가득 실어야 하는 중노동에 가까운 일이었다. 일은 힘들었지만, 커피숍이나 편의점에서 받을 수 없는 시급이어서 기꺼운 마음으로 해냈다. 마음이 몸을 함부로 누리던 계절이었고, 계절이 몸을 함부로 누려도 마음은 모르던 계절이었다. 말이 너무 감성적인 것 같다, 그냥 배만 안 고프면 일했다는 말이 옳겠다. 새삼 일기장에 적었던 글귀가 떠오른다. ‘시가 예술로 가는 길이 아니라, 알바가 예술로 가는 길이다.’ 예술이 청춘의 장르라면 내 예술의 팔 할은 알바였다.


일평생 그리워할 라면 한 그릇을 만난 날은 장대비가 쏟아지는 날이었다. 빗소리같은 허기가 딱 오기 좋은 날씨였으나, 일이 늦게 끝나는 바람에 간단한 요기조차 못한 상황이었다. 마을에서 유일하게 있는 구멍가게도 숟가락 자물쇠를 걸었다. 허기를 달랠 유일한 방법은 아무 집이나 문을 두드려 밥을 얻어먹는 일. 왕왕 아무 집이나 문을 두드려 밥을 얻어먹었으므로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다만, 그날은 밥 잘 주던 집들이 일찍 저녁을 먹고 잠들어 있었다. 나는 장대비를 뚫듯이 새로운 집을 찾아야만 했다. 그리고 내 어릴 적 살았던 할머니집과 닮은 대문을 보자, 어떤 망설임도 없이 우산처럼 들어가고 있었다. 저녁 묵게 들어오니라, 마치 돌아가신 할머니의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았다.


비에 젖은 생쥐꼴로 두드린 집에는 신비롭게도 내 할머니가 같은 분이 계셨다. 매실 택배 청년이란 걸 알아보면서도, 뭔가 불편해 보였다. 내가 밥 한 끼 달라는 말도 하지 않았는데, 어두운 얼굴로 밥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늦은 저녁 괜히 할머니를 불편하게 하는 것 같아, 그냥 나오려고 하는데 주름진 입술이 달싹거렸다. 라면 먹고 갈래? 딱 한 봉지밖에 없어서...김태리와 한지민이, 김연아와 이가은이 라면 먹자는 말보다 달달하게 다가왔다. 가장 드라마틱한 로맨스를 느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나는 염치 있는 놈처럼 라면만 주시면 제가 끓이겠다고 말했으나, 할머니는 한사코 자신이 끓이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할머니가 끊인 라면을 영접하자, 나는 비운의 주인공에서 이 세상 모든 라면의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라면이 딱 한 봉지였기 때문에 할머니 얼굴이 어두웠던 거였다. 한사코 홀로 끓인 라면에는 국수와 김치, 계란이 무려 세 알이나 들어 있었다. 어떻게든 배부르게 하고 싶은데, 라면 한 봉지로는 택도 없어 보이는 손자뻘을 보고 고민했던 것이었다. 김치 국수 라면을 끓여 놓고, 김치 반 포기를 내놓는 그 마음에서 나는 라면보다 김치보다 눈시울이 더 빨개졌을 것이다. 흰 그릇에 고춧가루 하나 없도록 먹었을 것이다. 마침내 할머니 주머니에 꼬깃꼬깃한 배춧잎 두 어장을 주고 내내 배불렀을 것이다. 라면을 끓일 때마다 이성이나 꼬시는 마음이 아니라, 어떻게든 배부르게 하고 싶은 그 마음을 배우게 했을 것이다.


라면 먹고 갈래? 내 청춘의 뜨밤은 김태리와 한지민, 김연아와 이가은이 아니라 광양시 다압면 할머니이다. 하여, 어여쁜 여인이 라면 먹자는 말만 해도 배가 불렀던 시절이 온다. 연애가 아니라 사랑이 온다. 세상의 모든 할머니가 애인이 되고, 스승이 된다. 라면 먹자는 말, 다시 살자는 말로 들린다. 절망의 생존법이자, 지혜의 언어로 들린다. 혹시 그대여, 국물도 없는 인생인 줄 알았는가? 걱정마시라 인생은 뜻밖에 김치부터 국수, 계란 세 알까지 있는 인생일지 모른다. 내내 배부르게 하는 힘일지 모른다. 장대비가 내리는 세상이라도 라면 한 그릇은 큰 지붕이 되어준다. 자, 이제 끓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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