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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지우개 Oct 11. 2022

새의 선물이 준 쉬운 냉소

딸의 첫 연애 즈음하여

신호대기 중 남녀가 걷는 장면을 보다가 놀라서 눈이 튀어나올 뻔했다. 그 여학생이 내 딸이었기에 나는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정도로 놀랐다. 순간 심장이 두근거리며 내가 어찌해야 할 바를 알지 못했다. 경적을 울려야 하나? 아이를 불러야 하나? 사진을 아니, 동영상을 찍어야 하나? 생각이 급하게 휘몰아치는 순간 신호가 바뀌어 버렸고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출발했다.     


내 딸이 남자를 보며 그리 수줍게 웃을지 몰랐다. 누군가의 귀여운 아들임이 분명한 그 녀석도 내 딸을 보는 눈이 너무나도 환했다. 다행스럽게?! 둘이 손은 잡고 있지 않았지만 모르는 사람이 저 장면을 봤다면 둘이 손을 잡고 사랑의 언어를 속삭여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분위기였다. 저렇게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사랑의 언어를 속삭이기까지 얼마나 오랫동안 고민하고 망설이고 떨리고 용기 내었을지 상상해보면 저 장면은 꽤 아름답다 느꼈을 것이다.     


사실 확인이 필요했기에 주차하자마자 톡을 보냈다. 남친이냐? 언제부터냐? 학교는 어디고 몇 학년이냐? 어떻게 만났냐? 계속되는 질문으로 내 손가락의 속도는 어느 때보다 빨라졌다. 엄마에게 데이트 장면을 들켰다는 사실에 처음엔 놀랐지만, 딸은 생각보다 순순히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 남학생이 자기를 좋아한다고 친구를 통해 몇 번이나 고백해 와서 자기도 궁금증이 생겼다고. 친구를 통해 그 남학생에 대해 알아보니 원래는 노는 무리에 속해 있었으나 중3이 되어 정신 차리고 공부에 매진해 성적이 급상승했고 그 점이 마음에 들어 만나보고 싶었다고. 오늘이 진짜 첫 데이트라고.     


요즘 청소년들의 이성 교제는 성인의 이성 교제와 다르지 않고, 내가 상상하는 연애의 모든 진도를 너무 쉽게 뺀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기 때문에 그 둘의 풋풋함은 온데간데없고 나에게는 온갖 걱정만 남았다. 어느새 나는 걱정을 가장한 협박 톡을 보내고 있었다. ‘순간의 잘못된 욕망이 인생을 망칠 수 있다’부터 ‘너 스스로 인생을 버리면 엄마도 너를 도와줄 수 없다’를 거쳐 ‘네가 잘못되면 아빠 엄마 이혼할지도 모른다’에 결국 이르렀다. 딸은 알았으니 제발 그만하라며 대화는 끝나버렸다.     


자식을 믿어주는 일은 자식을 위한 일이 아니라 부모를 위한 일이다. 자식을 믿어야 부모가 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식을 믿는 행위는 어쩌면 이기적이라 할 수 있다. 자식을 걱정하는 의심과 협박은 부모 마음은 지옥일지언정 사고 예방에 효과가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나 그랬듯 이기적인 쪽을 택했다. 딸의 연애에 대해 적극적 지지까지는 아니더라도 순한 눈으로 바라보기로 했다. 그러자 내 딸이 아닌 좋아하는 여자애 앞에 선 수줍은 남학생이 보였다.     



1994년 우리 집 대문 앞에 쇼핑백이 놓여 있었다. 쇼핑백 안에는 은희경의 ‘새의 선물’이라는 소설책이 들어있었다. 나는 책을 들고 겉표지를 열었다. 파스텔 핑크 톤의 간지에 조심스레 꾹꾹 눌러쓴 어설픈 궁서체가 보였다.      


‘너의 열다섯 번째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지훈이가’     


책은 제법 두꺼워서 내가 과연 읽을 수 있는 책이 맞나 싶었다. 아무리 봐도 내가 읽을 책은 아니다 생각했고 이 책을 준 남학생도 이 책을 읽지 않았을 것이라 확신했다. 자기도 읽지 못하는 책을 나에게 주는 이유는 수준 높아 보이기 위해서? 금방 들통날 것이 뻔한데 책 한 권으로 똑똑해 보일 수 있다고 믿었단 말이야? 제1회 문학동네 소설 상 수상작이라는 표지 문구가 보였다. 그 당시는 서점에 가야만 책을 살 수 있었다. 매대 가득 얹힌 베스트셀러 말고는 책을 고르는 안목이 없었을 때인데 상 받은 책이니 분명 좋은 책이라고 믿고 고른 것일까? 차라리 길게 편지를 썼으면 나를 좋아하는 마음이 분명히 전달되었을 터. 그랬다면 나는 예스 아니면 노를 확실하게 대답할 수 있을 텐데. 이렇게 알쏭달쏭 두루뭉술, 한 줄만 남기고 두꺼운 숙제만 안겨준 남학생이 좋게 보일 리 없었다. 나는 내 딸처럼 따뜻한 눈길은커녕 그 아이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읽으면 읽을수록 재밌는 소설이었다. 삶이 시작부터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는 문장과 자기 자신을 ‘보여지는 나’와 ‘바라보는 나’로 분리하는 주인공의 태도는 어느새 내 뇌리에 박혀버렸다. 나는 사람을 대하는 기본값이 냉소다. 친절할 때도 있으나 그것은 냉소가 불편한 상황일 때다. 나는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 특히 냉소적이다. 따뜻한 표정이지만 실은 상대나 문제를 업신여기며 비웃어 버린다. 그것이 망각과 자기 보호에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집착 없이 살아오긴 했지만, 사실은 집착으로써 얻지 못할 것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짐짓 한 걸음 비껴서 걸어온 것인지도 모른다. 고통받지 않으려고 주변적인 고통을 견뎌왔으며 사랑하지 않으려고 내게 오는 사랑을 사소한 것으로 만드는 데에 정열을 다 바쳤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

-상처를 덮어가는 일로 삶이 이어진다 <새의 선물> 중에서-


안 그래도 사랑 표현에 서툰 나에게 지훈이는 어쩌자고 사랑할 필요조차 없다고 단언한 소설을 준 것인지. 이렇게 내 인생을 지배하는 책이 될 줄 알았다면 그 책을 선물해줘서 정말 고맙다는 말은 해야 했는데.     



“엄마, 나 친구랑 영화 보러 가요.”

“남친이랑?”

“아니, 친구랑”

“엄마 몰래 데이트할 필요 없는데. 엄마는 너의 미모를 알아본 뉘 집 귀한 아들이 고맙다.”

“그런 거 아니라고. 이상한 소리 좀 그만해.”

“그럼 데이트는 언제 해?”

“안 그래도 만나자고 그러는데 이젠 만나기 싫어.”

“왜?”

“나랑 수준이 좀 안 맞는 거 같아.”

“무슨 뜻이야?”

“나는 그 아이가 최상위권인지 알았는데 그건 아니더라고. 그리고 중2 때 노는 무리랑 어울렸던 남자랑 내가 같이 놀 수준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딸의 연애를 응원하지는 않는다고 말했건만 저만 높이고 상대를 깔아뭉개버리는 딸을 보니 나는 마음 한편으로 그 남학생을 응원하고 있었다. 열다섯 살의 나와 한치도 다르지 않은 딸에게 나는 어떤 조언도 할 자격이 없지만 그래도 나처럼 미안함만을 남기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말랑말랑하고 풋풋한 만남은 미안함과 아쉬움과 부끄러움으로 박제되어 시간이 지나도 꽤 오랫동안, 네 머릿속에 남을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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