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에도 혁명이 필요하다." 21.2세기 요리사 <프롤로그>
최근 유투브와 쿡방의 성행으로 젊은이들에게 인기 있는 직업 중 하나는 요리사(셰프)이다. 은퇴 후, 노후 대비를 위해 가장 많이 시작하는 사업은 외식업이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관심을 갖는, 진입 문턱이 낮은, 누구나 시작할 수 있는 분야가 바로 요리이다. 하지만 음식 자영업을 시작한 식당의 10곳 중 7-8곳은 1년 안에 망하고, 부푼 꿈을 가지고 요리를 시작한 학생과 청년들은 2-3년 안에 요리를 그만둔다. 심지어 조리학과를 전공한 학생들도 7~80%는 더 이상 요리를 하지 않는다. 지난 10년간 내가 요리를 공부하며 직접 목격해온 현실이다.
도대체 그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한국조리과학고등학교와 우송대학교 외식조리학과를 졸업(예정)했고, 6개의 조리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으며, 군대 3성 사령관 조리병을 역임했다. 약 10년간 나름 정석의 코스(엘리트코스)로 요리를 배워왔다. 하지만 나는 요리를 그렇게 잘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 또한 요리를 계속해야 할지 불안하기만 하다.
‘요리’, 남들 쉴 때 못 쉬고 주 6일을 일 하는데 페이는 박봉이다. 육체적으로는 물론, 군대 같은 위계질서 주방문화에 정신까지 피폐 해진다. 나는 요리를 계속해야 할까?
“요리사가 되려면 대학에 가야 할까요? 국내에 조리 관련 고등학교들이 얼마나 있나요? 또래들에 비해 요리도 못하고 몸과 정신이 힘든데 요리를 계속해야 할까요? 레스토랑이나 호텔 아니면 취업할 곳이 있을까요? 힘들긴 한데 평생 요리만 해서 그만둘 순 없고 어떻게 할까요? 제발 도와주세요.”
벼랑 끝에서 새내기 요리사들은 선배들에게 조언을 구하지만, 선배(꼰대) 요리사들은 말한다.
“넌 애초부터 정신력부터 글러 먹었다고, 그 정신이면 빨리 요리 그만두라고! 늦지 않았어 아예 시작을 하지 마!”
요즘 30만 팔로워를 이끄는 페이스북 요리 커뮤니티 ‘조리백과’에 새내기 요리사들의 질문이 빗발치고 있다. 하지만 비관적으로만 대답해주는 선배 요리사들이 많다. 그래서 최근에 이와 같은 질문에 현실적이면서도 자세한 답변(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해준 요리사의 영상이 인기를 얻고 있다. 예를 들어 ‘승우아빠’라는 유투브 요리 채널이 그렇다.
*40만 요리 유투버 ‘승우아빠’ 영상 예시
https://www.youtube.com/watch?v=J08K5e73F2k
요리를 하는 사람들은 등 한쪽이 무척 가렵다. 일부 꼰대들처럼 일단 버텨라, 무조건 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어느 정도의 해결책, 아니 방향 만이라도 제시해주길 바란다.
오래 요리를 공부했다는 이유로, 정신력 부족한 사람으로 낙인 시키기 싫어서, 누구나 겪는 일이라고 합리화하며 죽은 듯 생활을 지속한다. 그게 아니라면 그 현실을 견뎌내지 못하고 요리를 그만둔다. 방법은 알려주지 않고 그냥 버텨보라고만 한다. 버티지 못하면 요리사의 자격은 없는 거라고 한다.
세대는 변했다. 20년을 한 주방에서 죽은 듯 열심히 일 하면 결국 ‘주방장’을 다는 시대는 지났다.
사실 모든 직업이 그렇다. 평생직장은 없다. 선배 요리사의 말이 결코 틀리다고 할 수만은 없지만, 구세대의 말만 따를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는 수용하되 지금의 세대에 맞는 새로운 방법과 방향이 필요하다.
사이다 같은 글과 영상들이 최근 인기를 얻는 것으로 보아, 아직 현대 요리의 이면을 제대로 꼬집어주고 공감해주는 사람(매체나 책)이 거의 없다는 얘기이다. 내가 요리를 공부한 지난 10년도 그러했다. 제대로 된 요리 교육이 시작된 지 50년도 채 안된 우리나라이기에 이제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하나의 정리된 글(매체)’가 필요하다. 이미 잘된 사람들이 정해놓은 일방적인 정석(엘리트) 코스는 더 이상 무의미하다. 그나마 괜찮다는 요리 책들은 대부분 원서이고 제대로 번역된 책들은 대부분 레시피나 자서전 관련 책뿐이기 때문이다.
유명 셰프들이 요리의 현실을 꼬집어주는 책을 몇 권 펼치긴 했지만, 주방장이라는 한정된 분야에서다. 모든 사람이 레스토랑이나 호텔의 주방장이 되길 원하는 것은 아니고, 모든 사람이 해당 분야에만 재능을 갖춘 것이 아니다. 결국 자신에게 맞는 요리 방향을 찾아야 한다. 단 방향적 교육이 아닌 21.2세기에 맞는 교육이 필요하다.
눈에 보이는 스펙과 경력이 결코 전부는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성인들은 학교와 학원을 병행하며 10년 이상 영어 교육을 받았다. 그래서 공인 어학 성적은 준수한 편이지만, 외국인 앞에서 입 뻥끗 못하는 사람이 많다. 결국 실전에 약하다는 것이다. 그동안 쏟은 정성과 시간이 빛을 잃는다. 허무하다.
토익 점수가 그렇듯 요리 자격증 및 학벌도 사실 실력의 지표를 나타내지 않는다. 집안이 좋거나 든든한 백이 밀어주어 국제대회 같은 실전을 경험하지 못하는 이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격증과 학벌만 갖춘 채 실전 요리는 그리 잘하지 못할 것이다. 냉정하게 바라보자면 조리학교에서도 요리 대회를 휩쓸고 학교를 홍보해줄 1%만 잘 키우면 그만이다. 나머지는 도태될 수밖에 없다. 그러한 특수한 환경을 갖추지 못한 예외의 경우라면,
오히려 일본 애니메이션을 덕질한 사람이 일본어를 잘하듯. 좋은 학교를 나오고 좋은 학원을 다닌 사람보다 어느 분야 하나에 미쳐 덕질하는 사람들이 요리를 훨씬 잘한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든 것을 막론하고 내가 생각하는 사람들이 요리를 포기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의 실력이 형편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10년이 지났는데도 제대로 된 요리 하나 못 만드는 자신이 부끄러워서이다. “잘하는 요리가 뭐야?”, “음... 파스타..?” * 사람들이 영어공부를 포기하는 이유와 비슷하다.
요리를 오래 배운 것은 오히려 큰 족쇄로 다가온다. 섣부른 도전과 성장을 방해한다. 아직도 영어로 입 뻥끗 못하는 영어 실력처럼 자신의 요리 실력에 기가 죽는다. 영어 회화도 유명한 교육보다는 각자만의 방식이 필요하듯 요리도 같다고 생각한다.
10년 동안 요리를 배우며 직접 눈으로 봐 왔던 현실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성공한 셰프로서가 아닌 이 책을 읽을 세대에 가장 가까운 경험자로서 말하고 싶다. 요리의 단면에만 치중하는 것이 아닌 그 이면과 미래를 제대로 이야기해보고 싶다. 그리고 조금 더 효율적으로 요리를 시작하는 법과 요리라는 기초를 통해 어떠한 직종으로 뿌리내릴 수 있는지에 대하여 나누고 싶다. * 성공적인 결과보다는 당면하는 그 과정을 나누고 싶다.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 두려워한다. 이미 기득권들이 해당 분야를 꽉 잡고 있고 허튼소리 잘못 놀렸다가는 비난당할까 봐..
하지만 혁명의 시대에 목소리를 내어줄 사람들이 꼭 필요하다.
사실 나도 평범한 요리를 하고 있지 않다. 세대가 빠르게 변하고 있는 만큼 필자 만의 요리 인생을 개척하고 있다. 304일간 요리하며 세계를 여행을 했으며, 강연을 하고, 다양한 요리 콘텐츠를 만들어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다. 새로운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언어로 소통하고 요리한다.
앞으로의 이야기는 내가 개척하고 있는 길과 더불어 그간 내가 느낀 요리의 혹독한 현실을 보여줄 예정이다. 그리고 그동안 쌓아온 요리 인맥을 통해 요리의 현주소를 수치화하여 분석하고 하나의 가이드라인을 만들고자 한다. 다양하게 퍼져 있는 요리 관련 직업군과 요리를 그만둔 사람들이 전혀 다른 분야로 간 직종에 대하여 인터뷰하여 일부 기록할 예정이다.
더 이상 사회가 정해주는 코스로만 가지 않았으면 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세대는 변하고 있고 한 직장에 평생 머물며 승진하는 시대는 지났다. 이미 자리 잡은 엘리트들이 자신들의 현 상황을 유지하기에 좋은 엘리트 코스를 주장한다. 하지만 엘리트 교육 말고 새로운 시대에 방향을 정하고 공부하고 자신의 꿈을 펼쳤으면 좋겠다.
그래서 필자도 새로운 길을 개척하며 도전하고 있다. 무조건 업장에서 버티는 것만이 정답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증명하기 위해서.
‘덕질’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해야 한다.
그게 꼭 주방이 아니어도 좋다. 이제는 21.2세기에 걸맞은 요리를 해야 한다. 요리에도 혁명이 필요하다.
저의 말이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서로 느꼈던 감정을 가감 없이 나누고 더 나은 요리 인프라를 만들어 나아가는 것이 우리 젊은 요리사들이 해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써 내려갈 이야기도 기대해주세요. 함께 만들어 나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