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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믿음 Mar 25. 2020

왜 하필 요리였을까?

누구나 한 번쯤은 해봐야 할 인생 복기

조금이라도 빨리 복기가 필요해!


바둑에서 복기(復碁)란 방금 둔 바둑을 다시 두면서 어느 수가 좋았고, 어느 수가 나빴는지에 대해 분석해보는 것이다. 이미 해당 게임은 끝이 났지만 승부를 넘어서 더 완벽한 다음을 기약하기 위해 복기가 필요하다. 모든 교육에서 오답노트와 복습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내 인생을 건 '요리' 더 늦기 전에 복기해보자..!"

요리를 하기로 마음먹은 지 정확히 12년이 지난 지금, 다시금 생각해본다. 많고 많은 직업들 중에 왜 하필 요리였을까? 이런 의구심이 생기는 이유는 내 현주소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지금의 삶을 연명해야 할 명목을 만들고 싶을 가능성이 크다. 물론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더 나은 내일을 위한 복기일 수도 있지만.. 에이 그러면 조금 재수 없다. 대부분은 잘 둔 수보다 마음에 들지 않는 수에 비중을 두기 마련이다. 


"나의 지난 12년은 만족스럽지 않았던 것일까?"

아직 성공과 실패를 거론하기에 너무 이르다고 할 수 있지만, 인생은 바둑과 달리 번복되지 않는 단판이다. 그때그때 복기하며 바로 잡아야 한다. 이미 둬버린 악(惡)수들은 되돌릴 수 없지만, 우리에게는 분명 알파고도 뒤집을 신의 한 수가 있다. 어려운 과정이겠지만 충분히 가능하다. 게다가 인생이라는 판은 혼자 두지 않아도 된다. 훈수가 가능하다. 

 

승리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복기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시간이 지나면 그 당시 내 상태나 상황을 잊어버려 정확한 진단이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판단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혼자보다는 함께 하는 것이 좋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몸치였다. 글씨는 악필, 미술은 유치원생 수준, 피아노를 쳐도 양손을 따로 움직이지 못했고 유연성은 마이너스에 달리기를 하면 뒤에서 2~3등 하기 일수였다. 손이나 몸으로 하는 건 잘하는 게 없었다. 그런 여건에 사교성까지 부족한 극내성적인 아이라 그나마 잘하는 건 앉아서 혼자 할 수 있는 공부였다. 


나는 장남이었고 그나마 공부를 잘했으니 특목고에 진학하고 좋은 대학에 가서 안정적인 직장에 취업을 하는 게 내 인생에 최선이라 생각했다. 재능이란 눈곱만큼도 없는 그저 지극히 평범하게 살아야 할 피조물이었다.



왜 요리였는지에 대한 이유를 정량화할 수 없지만, 굵직한 세 가지의 이유를 복기해보았다. 


1. 내성적인 성격과 결핍의 충족


사교성이 없고 극내성적이었던 어린 시절, 나는 주로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집에서 끼니를 해결하다 보니 자연스레 요리와 친해졌고 요리가 내 유일한 취미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누군가에게 요리를 대접할 기회가 생겼고 그 요리로 인해 생전 들어보지 못한 칭찬을 받기 시작했다. 칭찬을 받을수록 자신감이 생겼고 사람에 대한 마음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요리는 내 성격적 결핍을 채워줬고 나를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 줬다.


2. 생활 속 밀접한 경험과 낮은 진입장벽


직업으로 삼지 않더라도 누구나 요리를 경험하게 된다. 살기 위해 필수 불가결한 의식주 중에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 보면 전공자가 아닌데도 전공자보다 훨씬 뛰어난 요리 실력을 가진 사람도 있다. 아르바이트로만으로도 충분히 전공자처럼 경험할 수 있고, 돈만 있다면 별 다른 자격 요건 없이 누구나 음식점 창업이 가능하다. 요리는 다른 분야에 비해 익숙하고 진입장벽이 낮아 누구나 시작하기 쉬운 분야이다. 나 또한 자연스러운 경험을 거쳐 별다른 부담과 큰 어려움 없이 그냥 좋아서 시작하게 됐다.


3. 요리에 대한 인식 개선 및 스타 셰프의 출현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남자가 요리를 한다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많았다. 요리라는 것은 가사이자 여성에게 편중된 일이라는 인식 때문이었다. 하지만 요리가 다양한 디지털 매체에 노출되며 요리사에 대한 직업 인식이 개선되었고, 에드워드 권을 시작으로 스타 셰프가 대거 출현하며 요리의 붐을 일으켰다. 이러한 사회적 반향에 힘 입어 요리를 배울 수 있는 전문학교와 학원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때마침 내 눈 앞에 요리의 장이 만들어진 것이다.



12년 전 친누나를 통해 '한국조리과학고등학교'의 입시 공고를 우연히 보게 됐고, 위의 세 가지 이유에 힘 입어 나는 요리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내게는 아껴뒀던 강수(재능)나 판을 뒤집을 거국적 계획 따위는 없었다. 이기고자 꺼낸 수라기보다는 지략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수였다. 다만 나는 몸치이게에 이것이 되려 악(惡)수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다.


하지만 조리고등학교에 진학하면 분명 달라질 거고 졸업 후에는 월등한 실력자가 될 거라 믿었다. 내가 진학하는 곳은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조리 고등학교니까. 이건 분명 잠재적 강수일 것이다.


이제부터의 이야기는 나의 지난 12년 요리인생의 복기가 될 것이다. '신의 한 수'를 찾아내기 위해 악(惡)수는 과감히 철회할 것이고 최대한 많은 훈수를 찾아볼 것이다. 


내 인생의 단판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인생을 복기해보신 적이 있나요?

복기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그리고 혼자보다는 함께가 좋습니다.  


저의 말이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서로 느꼈던 감정을 가감 없이 나누고 더 나은 요리 인프라를 만들어 나아가는 것이 우리 젊은 요리사들이 해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써 내려갈 이야기도 기대해주세요. 함께 만들어 나가요.


인스타 @belichef

유투브 @믿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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