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일어나 짐을 꾸렸다. 노트북, 에어팟, 그리고 스마트폰을 챙겼다. 카페인이 절실히 필요했다. 그리고 향긋한 원두향도 함께면 더없이 좋겠지. 마감 작업은 게을렀던 나를 각성하게 만드니까. 문을 나서면서도 짐작은 했다. 또 커피 시켜놓고 노트북을 켜고 메일 확인을 하고 카톡 좀 보내다 멍 때리다 작업을 시작하겠지. 알고 있지만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나을 거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자주 가는 카페는 없다. 단골 카페도 없다. 카페 사장님과 안면을 트고 단골이 되면 오고 가는 말이 부담스러웠다. 그러다 자주 안 가다 방문하면 오랜만이라는 인사도 버거웠다. 그분은 그렇게 생각 안 하겠지만, 나는 자주 안 간 것에 조금의 눈치를 보니까. 그래서 항상 이곳저곳 카페를 옮겨 다니며 작업을 하곤 했다.
그날도 어김없이 나를 알지 못하는 카페로 향했다. 가던 길목에 폐지 줍는 어르신이 보였다. 수레에는 이미 폐지가 한가득 담겨 있었다. 새벽부터 일어나 부지런히 다니셨다는 증거겠지. 어르신도 당연히 마스크를 쓰고 계셨다. 그런데 그 하얀 마스크가 유독 두꺼워 보였다. 보풀이 일어나 마스크가 커 보였던 거다. 일회용 마스크를 버리지 않고, 빨아서 쓰셨던 걸까. 천원도 하지 않는 마스크마저 아끼고 싶으셨던 걸까. 오천 원짜리 커피 하나 마시러 나가는 내가 한없이 작아졌다. 죄지은 것도 없지만 죄인처럼 쪼그라들었다.
어르신에게 다가가 마스크를 건네주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건 내가 함부로 판단할 수 없는 것이니까. 열심히 사시는 누군가를 동정하고, 그분의 노동을 값어치 없게 여겨서는 안 되니까. 차마 다가가지 못한 채, 외면했다.
구부정한 체구로 수레를 끌고 차도를 위험하게 가로지르는 어르신을 볼 때도, 지하철 노약자 칸에서 멍하니 앉아 계시는 노인들을 마주할 때도, 패스트푸드점에서 스마트 기기를 사용 못해 쭈뼛거리는 그 모습을 볼 때도, 마음이 쓰렸다. 동정일 수도, 연민일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선뜻 다가가기를 망설였다.
누가 도와주겠지. 누가, 누군가가, 누구일까. 사회복지사 일까, 자원봉사자 일까, 패스트푸드점 직원 일까. 그 누구엔 나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 한 번쯤 먼저 "도와 드릴까요?" 말은 건넬 수 있지 않을까.
그 말이 별거 아닌데, 참 내뱉기도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