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뉴저지에 살고 있는 남편 친구 집을 방문했다. 그 집에는 13살 된 작고 검은 강아지 한 마리가 함께 살고 있었다. 강아지의 이름은 ‘대구’이다.
한국을 떠오르게 하는 정감 가는 이름, ‘대구’를 부를 때면, 내가 꼭 한국을 부르는 것 같은 기분에 괜스레 설레곤 했다.
한층 톤이 올라가 있는 반가운 목소리로 친숙한 그의 이름을 부르는 나와 달리,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는 대구는 그저 고개만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나는 대구의 관심을 끌기 위해 그의 얼굴 가까이 다가가 다시 한번 ‘대구야~! 대구!’ 이름을 불러보았다.
순간, 두려움 가득 찬 초점 없는 그의 눈빛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대구의 낯선 눈빛을 뚫어져라 보고 있는 내게 대구의 주인이 다가와 말했다.
“대구는 눈이 안보인지 4년 정도 됐어요..
눈이 안 보여서 그런지 다른 개들과 달리 짓지도 않아요.”
주인의 말을 듣고 나서야, 지금까지 한 자리에 멈춰 서서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주저하고 있는 그의 모습을 이해할 수 있었다.
대구를 주저하게 만들었던 나의 거침없는 첫인사는, 상황이 역전되어 나의 마음을 주저하게 만드는 시간으로 흘러갔다.
“이리 쿵, 저리 쿵...”
‘쿵쿵’ 소리가 들려 놀라 뒤를 돌아보면, 쉬지 않고 코를 ‘킁킁’ 거리며 눈 대신 냄새로 자신의 위치를 인식하며 집안을 더듬더듬 돌아다니는 대구가 있었다. 수시로 의자와 벽에 자신의 코를 박는 그의 모습을 보는데, 내 마음도 벽에 부딪히는 거 같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대구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는 내게 그의 주인이 말했다.
“대구는 산책을 좋아해요.”
그의 주인은 대구와 함께 산책을 나가려는 채비를 했다. 나도 자연스레 밖을 따라나섰다. 함께 밖을 나온 대구는 기운 찬 모습으로 온 힘을 다해, 세상을 냄새 맡는데 전념하기 시작했다.
흙을 밟고 시원한 바람을 쐬며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동안 대구의 모습은 꼭 앞이 보이는 강아지 마냥 자연스럽고 자신 있는 걸음으로 그 시간들을 누리고 있었다.
그런 그의 모습이 어찌나 기특하고 좋아 보이던지, 나는 “Good boy!!”라는 말을 반복해 외치며 그를 칭찬했다.
대구가 자신감 있는 걸음으로 한걸음 한걸음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그의 발에 힘을 실어주고 싶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세상이 자신을 끊임없이 부를 때마다, 두려움에 멈춰서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대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책을 하는 동안 나는 눈이 보이지 않아 마음으로 세상을 보고 있는 대구에게, 나도 눈이 아닌 마음으로 너를 보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었다.
마음으로 세상을 보고 있으면,
언젠가는 정말 봐야 할 것들이
우리 눈에 보여지겠지.
마음으로 세상을 보고 있으면,
넘어지고 부딪히는 통증 때문에
나를 잃어버리는 것 같아도,
언젠가는 진심을 외치고 있는
나 자신을 찾을 수 있겠지.
그렇게 마음으로 세상을 보고 있으면,
대구, ‘너’ 자신이 보이는 것처럼,
나도, ‘나’ 자신을 볼 수 있는 날이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