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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간을 채운 공감 May 09. 2020

40주 마라톤 완주

10개월 입덧 여정기


  한국을 향하는 비행기를 타기 전 남편과의 마지막 포옹은, 엄마가 되기 위해 홀로 덤덤히 발을 내디뎌야 하는 시작을 위한 이별이었다.  

  음식 앞에서 욱! 욱! 우엑~ 헛구역질을 하며, 임신한 녀자 임을 티 낼 틈도 없이 ‘엄마’라는 이름표를 달기도 전에 하늘이 노래지는 고통이 찾아왔다. 내 몸이 뭔가 잘 못되고 있다는 오해와 착각과 혼란 속에 있던 나에게 헛웃음이 지어질 만큼 달갑지 않은 손님들이 예고 없이 내 몸을 방문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모래시계를 뒤집어엎어 놓은 것처럼, 나를 거꾸로 매달아 놓고 위 장에 있는 음식물들을 탈탈 털어 내가 방금 전 뭘 먹었는지 실시간 확인하기 일수였다. 그들은 늘 나의 목구멍 앞에서 보초를 서며, 토해 나오는 음식물들을 재확인하는 역할을 하였다. 그렇게 속절없이 위 장이 탈탈 털리고 나면 속 쓰림과 트림은 후식처럼 따라 나와 나를 더욱 고단하게 하였다. 때로는 나의 머릿속에 들어와 나의 뇌를 쉬지 않고 팽이 질과 망치 질을 하여 격렬한 어지러움과 깨져나갈 거 같은 두통을 일으켰다. 임신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입덧 신고식을 호되게 치러야지만 아기를 만날 수 있다는 수순을 받아들이기에는 나의 몸은 오작동이 일어난 거처럼 심히 삐그덕 거렸고, 정신을 조여놨던 나사들은 하나둘씩 풀려 나가기 시작했다.

  미국 버지니아 조용한 시골에서 남편과 소소한 일상을 즐기며 살고 있던 나에게 아기가 생겼다. 임신 확인과 함께 극심한 입덧이 시작되었고, 의료시스템이 미약한 미국에서 의료혜택을 받지 못해 힘겨워하는 나는 남편과 상의하여 한국 행 비행기 표를 끊었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산부인과 병동을 전전하며 매일 아등바등 턱걸이하듯 힘겨운 시간들을 보냈다. 남들보다 유난히 극심했던 입덧 증상으로 항상 나의 두 팔에는 나와 아기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수액 바늘이 꽂혀있었고, 매일 시계와 달력을 보며, 이 고통이 지나가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토록 원했던 생명이었는데, 생명을 얻고 나서 찾아온 시련은 몸이 조여 가고 말라가는 고통 속에서 감사를 하나둘씩 잃어가고 있었다.  

16-20주 사이에 입덧이 많이 사라진다 던 풍문은, 40주의 긴 마라톤을 완주할 때까지 그 날을 기대했던 나에게는 침묵으로 대응할 뿐이었다. 생명보다 죽음을 묵상할 만큼 목적지가 보여도 길을 잃은 것처럼 버텨내야 했던 10개월이란... 고요한 바닷속에서 홀로 외로이 외치는 먹먹한 소리로 자리 잡는 시간들이었다. 브런치와 유튜브 등 많은 검색 정도 망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보며, 기댈 자리를 찾곤 했다. 나보다 힘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스스로 위안받았고, 나보다 나은 사람들의 삶을 보며 소소한 희망을 품었다.

  10개월 동안 ‘수액으로 큰 아기’라는 웃픈 이야기를 들을 만큼 병원을 전전하며 남편 없이 임신기간을 보내면서 나는 고통 앞에서 침묵하는 시간을 경험했다. 단지 엄마가 되기 위한 시작과 과정일 뿐이었는데, 삶과 죽음의 심오한 주제들을 오가며 고통을 마주할 때마다 “인생은 참 고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출구 없는 미로 속에 갇혀, 누군가 허공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로만 더듬더듬 길을 찾아야 하는 답답함과 막막함은 나를 지쳐 주저앉게 만들기 일수였다. 태어날 아기에게 좋은 인생을 선사하기에 앞서, 먼저 고통을 곱씹어야 했던 난 아기를 고된 세상으로 초대하는 거 같은 미안함에 괜스레 눈물이 흘러나왔다.

  소화 안 되는 이 퍽퍽한 고통을 입안에 구겨 넣어야 하는 힘겨운 과정을 거치며, 나는 ‘엄마’라는 이름으로 생명을 품기 시작했고,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던 10개월의 입덧 고통을 곱씹으며 다른 이들보다 조금 더 인내했던 시간들을 통해, 생명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엄마가 되었다.

  ‘거저 얻는 것이 없다.’라는 말처럼, 생명을 얻기 위해 호된 대가를 치른 나는 어여쁜 아기를 처음 품에 안는 순간 ‘이 생명을 위한 긴 여정이었구나...’라는 벅찬 감격에 온 마음으로 그 순간을 담아냈다.

  앞으로 나는 엄마로서 아기에게 선사해줄 인생을 어떤 이야기로 풀어 줄 수 있을까. 결과를 모르는 제비를 눈을 가리고 뽑듯, 인생은 예상치 못한 일들로 흘러가지만 단 한 가지 우리 모두가 확신 있는 것은, “때가 되면 좋은 날이 올 것이다.”라는 희망이다.


  ‘100일의 기적’이 없으면 ‘100일의 기절’이 온다던 신생아 육아가 그렇게 시작되었고, 우렁찬 아기 울음소리와 함께 거침없이 굴러갈 나의 인생은 매일매일 ‘좋은 날’을 그려볼 수 있는 소소한 일상으로 돌아왔다. 젖 냄새, 똥 냄새, 땀 냄새 범벅으로 아기와 내가 하나 되어 사는 요즘, 서로 숨 쉬는 거 말고는 삶의 패턴의 교집합은 없지만, 그래도 마음으로 웃을 수 있는 것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라는 이유이다.

  나를 더 지혜롭고 용기 있는 엄마로 인생의 노고를 뛰어넘어 무엇이든 도전할 수 있는 가장 알짜배기 자양분을 아기는 나에게 먼저 선사해 주었다. 육아를 인터넷으로 배우고 있는 어설픈 초보 엄마이지만, 세상 가장 따뜻한 품이 되기 위해 오늘도 나는 열정 있게 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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