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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간을 채운 공감 Dec 11. 2018

잃어버린 날개를 찾아서

미국에서 글 쓰는 이방인



내가 사는 동네에는 새가 많다. 검은 새인 까마귀와 독수리가 우리 집 뜰에 앉아 먹잇감을 찾아 서성이는 모습을 종종 보곤 한다. 나는 대부분 동물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매서운 부리를 가진 시꺼먼 까마귀와 독수리에게는 큰 관심이 없었다. 그렇게 무심한 시선으로 새떼를 보았던 나는 세 달 전쯤, 한쪽 날개를 다쳐 날지 못하는 독수리 한 마리가 엉거주춤한 걸음으로 우리 동네를 서성이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평소 새에 관심이 없던 나는 다친 독수리를 보면서도 동정심보다는 낯선 마음에 단지 신기하게 지켜보기만 했던 거 같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아픈 독수리에게 먹이를 주자는 제안을 했다. 그 후 남편은 두 세 차례 집 뒤뜰에 독수리 먹이를 놓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아픈 독수리는 자신을 위해 먹이를 놓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틈만 나면 우리 집 뒤뜰에 찾아와서 남편이 놓은 먹이를 조용히 먹고 사라지는 것이었다.


독수리가 우리 집 뒤뜰을 방문하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남편과 나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의 등장을 반가워했다. 집안일을 하다가도, 남편이 “왔어!”라는 말 한마디에 나는 창문으로 달려가, 먹이를 찾아온 독수리를  구경하곤 했다. 내가 놓은 먹이를 오물오물 물고 있는 독수리를 보면, 어느 순간 내 입가에는 뿌듯한 엄마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우리가 먹이를 뒤뜰에 놓았을 때, 독수리가 바로 나타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한 참 시간이 지나, 잊을 만할 때 즘 나타나 조용히 먹이를 먹고 사라지는 독수리... 그런 독수리의 모습을 창문 너머로 지켜볼 때마다 알게 된 것은, 독수리가 먹이를 먹으면서도 끊임없이 주변을 둘러보며 경계심을 놓지 못하는 불안한 모습이었다.


가끔 다른 독수리들이 하늘을 날다가, 우리가 놓은 먹이를 발견하고는 생존을 위해 매서운 부리와 거침없는 날개 짓으로 서로 싸우는 모습을 종종 볼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여지없이 다친 독수리는 힘없이 먹이를 빼앗기고는 다른 독수리들이 자신의 먹이를 낚아 채 가는 모습을 멀찍이 서서 지켜보기만 한다.


나는 그 모습이 안타까워 도와주려고 밖으로 뛰어 나가면, 눈치 빠른 독수리들은 재빠르게 날아 도망간다. 아픈 독수리도 나를 보고 도망가는데, 날지 못하기 때문에 온 힘을 다해 다친 날개를 퍼덕거리며 두 다리로 도망간다. 내가 의도적으로 쫓으려 했던 독수리들 뿐만 아니라, 아픈 독수리까지 쫓아 버리게 된 상황 속에서, 모두가 도망가고 나 홀로 뒤뜰에 머쓱히 서 있을 때, “이게 아니었는데…”라는 생각에 괜한 후회가 몰려온다.

사람만 나타나면 소스라치게 놀라서, 다친 날개를 퍼덕거리며 엉거주춤한 걸음으로 달려 도망가는 독수리의 모습이 꼭 “닭” 같아서, 남편과 나는 그의 이름을 “Chicken Vulture”라고 지어 부른다. 짧게 부르면 “치벌”이다.


어느 날은, 먹이를 놓기도 전에 아침 일찍 ‘치벌’이 우리 집 뒤뜰에서 혼자 놀고 있는 모습을 발견한 적이 있었다. 나는 서둘러 먹이를 들고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예상했던 대로 여지없이 치벌은 나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 도망가려 했다.


나는 경계심을 안겨주고 싶지 않아 처벌을 쳐다볼 틈도 없이 정신없이 뒤뜰에 먹이를 던져 놓고 다시 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 전과 다른 기분이 들어 나도 모르게 내 시선이 그가 있는 곳으로 향하는데, 멀리 도망간 줄 만 알았던 치벌이 성큼성큼 내가 놓은 먹이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순간 어찌나 반갑던지, 그 반갑고 떨리는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이쯤 지나면 치벌도 내 마음을 아는 것일까? 내가 치벌을 기다리는 마음처럼, 그도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서로를 향한 기다림. 그리고 만남. 예상하지 못한 것이 아닌 예상했던 일들 속에서, 가슴 깊은 곳에 숨길 수 없는 행복이 내 입가에 웃음으로 불쑥불쑥 튀어 올라왔다. 나는 항상 치벌을 볼 때마다 마음속으로 말한다.


“고맙다... 먹어줘서... 오늘도 살아줘서 고맙다... 조금만 더 버텨라...”


처벌을 향한 애정 어린 응원이 내 안에서 샘솟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엄마 미소로 항상 처벌을 지켜보며 그를 향했던 응원의 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나를 향한 소리로 되돌아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날개를 잃어버려, 낯선 땅의 세상에서 버둥거리며 살아가는 치벌의 모습이 꼭 어느 날 갑자기 미국에서 살고 있는 나의 모습처럼 보였다. 내 주변 사람들은 미국에 살면 그 전보다 더 멋있는 날개 짓을 하며 훨훨 더 멀리 날아가는 줄 알고 그렇게 나를 바라본다. 하지만 나는 아니다. 도리어 미국에 살면서 지난날 훨훨 날았던 내 두 날개가 꺾여버린 기분이다. 내가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치벌을 지켜봐서 인지, 그를 향한 애정이 남다른 거 같다.


치벌은 내가 준 먹이를 먹고 나면, 항상 하는 행동이 있다. 배가 불러 기분이 좋아졌는지, 다친 구부정한 날개를 활짝 펴고 파닥파닥 몇 번의 날갯짓을 해본다. 혹시라도 ‘날 수 있을까’라는 희망을 놓지 않는 미련 있는 모습이다. 몇 번의 날갯짓 끝에, 자신이 날 수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힘없이 두 날개를 자신의 등위에 올리고는 다시 엉거주춤한 걸음으로 걸어가는 치벌의 모습이 괜스레 안쓰럽고 짠하다.


창공을 가르는 자유를 잃어버리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주춤하고 있는 그의 모습이 꼭 내 모습 같았다.


낯선 땅의 세상이 두려워 잔뜩 겁에 질린 그의 얼굴이 꼭 내 얼굴 같았다.


두 다리로 엉거주춤 뛰어갈 때에도 끝까지 미련 있는 날갯짓을 놓지 못하는 그의 모습이, 과거를 놓지 못하고 그리워하는 내 모습같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서로 닮은 점이 많네. 그래서 나는 치벌을 응원하나 보다.


언제쯤 너는 이 낯선 땅의 냄새에 익숙해 질까. 언제쯤 나는 눈동자 색이 다른 이들을 보며 마음으로 웃을 수 있는 날이 올까.  


어느 날 갑자기 우리에게 찾아온 두렵고 낯선 이 세상 속에서, 언제쯤 우리의 이 미련 있는 날개 짓을 놓을 수 있을까.


다시 날개 짓을 하며 너와 내가 하늘 위에 있어야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다신 날 수 없는 하늘과 이 낯선 세상을 받아들여야 우리에게 행복이 찾아오는 것일까.


행복할 수 있다면... 예전처럼 다시 날지 못해도,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싶다.


오늘도 나는 치벌을 향해,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한다.

 

“고맙다... 오늘도 살아줘서 고맙다... 조금만 더 버티자... 힘을 내자...“


오늘도 난 자유롭고 여유로워 보이는, 때론 심심해 보이는 저 하늘을 그와 함께 나란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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