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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랑 Jul 20. 2023

고시생이던 시절

WHEN I WAS YOUNG,


대학교 고시반에 자리를 배정받고 짐을 풀던 날, 6년 동안 고시반에 있었다는 선배를 소개받았다. 그는 나와 동기들을 심드렁하게 쳐다보곤 “야, 다들 돈까스나 먹으러 가자”라고 말했다. 삼선 슬리퍼를 끌고 앞장서며 “너희 그거 아냐? 11시 30분은 돈까스가 딱 맛있는 시간대야 “라고 덧붙였다. 나는 어색하게 웃곤 그를 스쳐지나 내 자리로 돌아왔다. 가방 속 하얀 노트를 펼쳐 장엄하고 결연히 첫날의 다짐을 적었다.

‘2년 안에 쇼부! 아니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짐 뺀다!’


고시생의 주요 일과는 신문 보기, 드라마 보기, 영화 보기, 다큐멘터리 보기. 한량이 따로 없는 고시생이었다. 채용 공지가 뜨면 서류를 넣고 한 날 한 시에 나와 같은 수 천명이 한 고등학교에 모인다. 조선시대 과거시험 마냥 시제가 주어지고 백지 위에 논술, 작문으로 구분된 두 편의 글을 쓴다. 예를 들면, 논술은 '사회지도층에게 요구되는 도덕성은 어느 정도 수준이어야 하는지 논하시오', 작문은 '사과' 같은 소재였다.

그날 쓰인 수 천 개의 글 중 많으면 백여 편 정도만 통과된다. 글이 합격하면 본격적으로 면접과 합숙이 시작되고 그렇게 덧붙여 5-6차가량 시험을 더 치르면 궁극에 단 한 명, 많아도 세 명 정도가 최종 합격하곤 했다. 말 그대로 수 천대 ‘1’이었다.



간지럽지만 그 시절 나는, 내가 하는 일로 세상이 조금, 아주 조금이라도 더 좋아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직군을 선택하면 워크앤라이프 밸런스는 개나 줘야 하고, 쌍욕이 오가는 수직적인 조직문화를 마주해야 한다고 익히 들어왔다. 상관없었다. 월급은 얼마인지, 연봉인상률은 어떻게 되는지는 딱히 궁금한 적이 없었다. 당시 내 세상의 상식은 객관성, 정의, 세상, 사회, 옳고그름 따위였다.



무지렁이 시절을 지나자 내 글도 조금씩 선택받기 시작했다. 긴 터널을 걷고 걷다 빛을 만난 기분이었다. 그러나 찰나였다. 이어지는 합숙과 실기로 긴장감이 온 세포를 뚫고 나오는 듯했다. 한 차수, 한 차수 전형을 통과하고 최종 면접을 앞두었을 땐, 서류를 넣은 시점으로부터 대략 6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이렇게 한, 두 번 최종을 거치고 떨어지면, 한 해가 지나있었다.



떨어지고, 붙기를 반복했다. 전형이 끝나고 나면, ‘이 대답이 아닌 다른 말을 했다면’,  ‘그 표정 말고 좀 더 자신 있는 눈빛을 보였다면’처럼 다양한 가정을 덧붙이며 같은 장면을 수없이 복기했다. 떨어진 이유를 찾아 스스로에게 구멍을 내는 일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고, 베일 듯한 시간 위엔 군살이 생기지 않았다.



왜 이 꿈을 꾸게 되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너덜 해져 있을 때쯤, 교수님이 새 후배들을 데리고 고시반에 방문했다. 마침 나는 슬리퍼를 신고 돈까스를 먹으러 가던 길이었다. “교수님, 저희 돈까스 먹으러 가요! 지금 갓 튀겨내 맛있는 시간이에요!”라고 인사했다. 학교 계단을 내려가다 문득 걸음이 멈췄다. 11시 30분이었다. 첫 날 써내려 갔던 노트 위 결연한 다짐들이 내 뒤통수를 바라보고 있는 듯했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3년 반이 지나있었다.



아무도 없는 새벽 6시, 고시반 자리를 비웠다. 그리고 회사원이 되었다. 고시를 준비하던 기간보다 몇 배 더 오랜 시간 회사원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제 내 세상의 관심은 #KPI, #거래액, #고객수 따위로 채워져 있다. #정의, #객관성, #옳고그름 같은 단어는 내뱉어 본 적도, 생각해 본 적도 거의 없다. 오늘은 어제 같았고, 재작년은 작년 같기도 하다. 제 아무리 승진을 하고, 이직을 하고, 수상을 해도 시간의 양적인 경계도, 질적인 차이도 딱히 체감하지 못하는 듯하다.



그럼에도 옛날옛적 고시반에 있던 나의 그 시간들은, 지금 바로 어제일처럼 말할 수 있다. 고시반 내 자리 전등의 빛 농도, 고시생 필수템인 제트스트림 심 두께와 감촉, 글을 써 내려가던 종이 질감까지도 말이다. 또, 미니멀리즘을 지향하며 지난 시간의 물건들은 과감히 버리기를 주저하지 않고 오히려 즐기는 나임에도 불구하고, 여태껏 내 지난 글들은 휘갈긴 연습장 한 장도 버리지 않은 채 내 방 안 가장 깊은 곳에 보관하고 있다.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선명한 마음이다.






지금 듣는 음악 - no reply <내가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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