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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페이크레더 7부 팬츠 자락 아래로 스타킹을 타고 내려온 발끝을 바라봤다. 묵혀두었던 로퍼를 오랜만에 신어보니, 내 발이 마치 자기 존재감을 뽐내듯 당당해 보였다. 편하다 못해 건방져 보일 정도로, 낯설 만큼 근사하게. 아직도 놓지못한 나의 어리석을 만큼의 유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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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의 나는 그렇지 않다. 거의 매일, 쿠@에서 정말 저렴하게 주고 산 가벼운 운동화를 신는다. 처음엔 그 가벼움이 되려 투박하게 만 느껴져서 어색했다. 자꾸 보폭이 흐트러지는 것 같고, 발끝이 나를 배신하는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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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신기한 일이다. 몇 켤레 없는 그중에서도, 손은 늘 그 가벼운 운동화로 간다. 한 번 신고 두 번 신고, 어느새 아무 말 없이 내 일상을 데려다주는 익숙한 동반자가 돼 있었다. 발이 가볍고 시간까지 가벼워지는 기분이라 그 신발을 자꾸 찾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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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가난함에서 시작된 선택이었지만 다리엔 좋지 않겠지만 사람이 편한 것에 길들여져 가는 과정은 참 조용하다. 특별한 계기도, 기념비적인 순간도 없다. 그냥 어느 날, 자연스럽게, 아무 생각 없이 발이 익숙한 곳으로 기울어져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러다 문득, 이렇게 깔끔한 로퍼를 신고 서 있는 날이 찾아오면 깨닫는다. 내 삶은 늘 조금씩 기울어가고 있었다는 걸. 불편에서 편안으로, 무거움에서 가벼움으로, 어색함에서 익숙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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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변화는 소리 없이 찾아와, 결국 나를 또 다른 하루로 데려다 놓는다.
익숙함은 그렇게, 우리 삶에 스며든다. 조용히, 그리고 놀라울 만큼 은근하게.
* 내사진_ 좌: 오늘, 우: 긴 머리를 오랜만에 싹둑(15일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