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슬픔이 침묵할 때

by 여니
슬픔이 침묵할 때

_ 이해인 시집 <작은 기쁨> 中.


슬픔을
잘 키워서
조용히 맛들이면
나도 조금은
거룩해 질까

큰 소리로
남에게 방해될까
두려워하며

오래 익힌
포도주빛 향기로
슬픔이 침묵할 때

나는
흰손으로
계단에 촛불을 켜리

눈물 가운데도
나를 일어서게 한
슬픔에게 인사하리



슬픔을 오래 들여다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외로움이 있다. 그것은 한밤중에 혼자 깨어 있을 때, 방 안의 공기가 조금 더 무겁게 가라앉는 순간에 찾아오는 조용한 방문자 같다. 문을 두드리지도 않고, 그렇다고 불쑥 들어오지도 않는다. 멀리서부터 천천히 스며들어, 결국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자리를 잡는 존재다.
어떤 외로움은 처음엔 너무 차갑고 거칠어서 손으로 만지기조차 어렵다. 하지만 그것을 피하지 않고 조심스레 쓰다듬다 보면, 마치 오래 숙성된 포도주처럼 서서히 온기를 띠기 시작한다. 그 온기는 기쁨의 온기와는 다르다. 누군가와 함께일 때의 따뜻함도 아니다. 그것은 슬픔을 통과한 사람만이 갖게 되는, 아주 고요하고 미세한 온기다. 세상에 큰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애쓰는 마음, 다른 이의 평온을 깨뜨리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더 깊은 곳으로 밀어 넣던 시간들 속에서 서서히 배어든 향기 같은 것이다.


외로움은 때로 우리를 앉히고, 때로 무릎 꿇게 만들며, 때로는 아무 말 없지만 분명히 무언가를 가르친다. 그것과 함께 지내다 보면, 낡은 계단을 하나씩 오르듯 마음의 층계가 생긴다. 언젠가 그 층계 위에서 작은 촛불 하나를 켜는 순간이 온다.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 그러나 내 마음은 그 빛을 정확히 기억하는 자리에서. 촛불은 크지 않지만 어둠을 미세하게 밀어내고, 자신에게 말한다. "그래도 나는 다시 일어설 것이야."라고.. 그렇게 우리는 슬픔을 키우면서, 실은 외로움을 길들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손끝으로 조심히 만지며, 그것이 흩어지지 않게, 또 폭발하지 않게, 묵묵히 함께 지내며. 슬픔이 침묵으로 익어가는 동안, 그 고요를 견뎌낸 내 안의 어떤 것들이 조금은 단단해지고, 조금은 투명해지고, 어쩌면 시인이 말한 ‘거룩함’에 가까운 결이 생긴다는 것을.


외로움은 우리를 비워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천천히 채워 넣는 일이다.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그래서 외로움 속에서 피어난 강인함은 외부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그 강인함은 언젠가 또 다른 어둠 속에서 나를 일으켜 세울, 가장 은밀한 빛이 되겠지.



* 사진_오늘 새벽이 유난히 어둡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낯설 만큼 근사하게... 그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