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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래 May 14. 2021

나는 조심하고 싶지 않아

목적 없는 호의에 덜컥 겁내지 않고 싶다

 대학생이 되고 첫 수업을 들으러 가던 등굣길이었다. 처음엔 내 발이 기형인가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던 3cm 힐도 몇 번 신고 다녔다고 좀 익숙해질 무렵이었다. 3월 초, 꽃샘추위도 아직 샘 낼 꽃이 없을 만큼 매서운 추위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느 새내기처럼 분홍색 트렌치코트 차림이었다. 발 뒤꿈치에 붙인 밴드가 쓸리지 않도록 뒤뚱거리며 지하철 역 계단을 올라가려는데 긴 생머리에 하이힐을 신은 예쁜 언니가 내게 말을 걸었다.      


“어머 새내기예요? 저는 피아노과 3학년 강ㅇㅇ에요! 오늘 첫 등교인가 봐요 너무 설레겠다!”     


 와, 이게 대학생활이구나!! 외국 하이틴 드라마에서 봤던 것처럼 지나가는 모두에게 웃으며 인사하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시작하는 거구나! 와 진짜 멋있어! 짱이야! 역시 대학생은 달라!     


와, 이게 대학생활이야! 정말 최고야!


 여기서 어색하면 왠지 촌스러운 것 같아 나는 한쪽에만 끼고 있던 이어폰을 거의 집어던지다시피 빼며 웃음으로 화답했다. 지하철역 출구와 학교의 중앙광장이 연결되어 있었기에 나는 한참이나 강선배와 발을 나란히 맞추며 대화를 이어갔다. 강선배는 연신 귀엽다는 듯이 나를 쳐다봐주었고, 이것저것을 물어봐주었다. 고등학교는 어디서 다녔는지, 전공은 왜 지원했는지, 집은 어딘지 등등. 이미 ‘이것이 대학생활이다’라는 모드에 취해 흥분한 나는 거의 나의 19년 인생 브리핑을 해드렸다.      


 한참을 걷다 강선배는 조만간 밥을 사주겠다며 번호를 교환하자고 했다. 나는 너무너무 좋다며 번호를 불러주려는데, 갑자기 강선배가 내 말을 가로막더니 말했다.


“혹시, 교회 다녀요?”

살짝 멈칫한 내게 그는 말을 이어갔다.


 “사실 저는 CCC라는 기독교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어요. 처음 보는 순간, 새래랑 같이 예수님 말씀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든 나는 지하철역을 가리키며 ‘생각해보니 강의실이 저 쪽인 것 같다’며 도망치듯 온 길을 되돌아갔다.     


 그 날 하굣길, 승강장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웬 할머니께서 지갑을 잃어버려 집에 갈 차비가 없다며 나에게 5000원만 달라고 하셨고, 나는 딱한 마음에 지갑에 있던 5000원을 드렸다. 그리고 잠시 후 할머니는 내 옆에 있던 다른 학생에게 나에게 했던 말과 똑같은 말을 하셨다. 할머니는 얼빠진 내 얼굴을 보며 ‘뭐 어쩌라고?’하는 표정을 지으시며, 유유히 승강장을 빠져나가셨다.      


어?



 어른의 세계에서 목적 없는 호의는 사실 거의 없다는 걸 그때 깨달았어야 했는데, 나는 그 후로도 많이 속아야 했다. 그 결과, 이제는 길거리에서 누가 3초 이상 쳐다만 봐도 시선을 피하며, 입사 후 한동안 선릉으로 출퇴근하다 보니 사이비 퇴치 레벨은 만렙이 되었다. 최근 몇 년 사이 급격히 늘어난 혐오범죄에 대한 공포까지 더해져 이제는 누군가 갑자기 건네는 호의는 덜컥 겁부터 난다.     


 며칠 전에는 친구가 데이트 어플로 사람을 만난 다기에, 꼭 사람 많은 밝은 데서 만나야 한다고 당부했다. 처음부터 너무 잘해주면 네가 아니라 너의 장기를 노리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만큼이나 많이 속고, 떼이고, 당한 세월을 겪은 친구는 알겠다고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우릴 쫄보라고 놀려도 어쩔 수 없다. 사람의 성향은 모든 경험의 총체로부터 만들어지는 거니까. (대부분의 한국 여자들은 첫 유럽여행에서 만난 친절한 파리지앵이 그저 아시안 피버 성향의 변태 아저씨였다는 걸 알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위험천만한 순간들이 많다. 새내기 때 만난 강선배의 전도나 할머니의 삥(?)은 정말 무해하기 짝이 없는 수준이다. 밤 10시만 되면 언제 들어오냐며 전화를 해대던 엄마의 마음을 왜 그땐 몰랐을까. 3cm 힐도 못 신던 그 시절의 순수를 잃어버렸다고 낙담하고만 있기엔 세상이 너무 험난하다는 사실에, 위협하는 사람이 아닌 위협당하는 사람이 더 조심해야 한다는 사실에, 나는 여전히 몹시 화가 난다.


나는 조금도 조심하고 싶지 않은데 말이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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