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안녕
오늘이 크리스마스이브였는지 SNS에 잔뜩 올라온 게시물들을 보고 알았다. 내겐 그저 정신없는 하루, 할머니를 보낸 하루였는데 크리스마스가 왔다.
화장을 하는 곳에는 생각보다 많은 죽음이 있었다. 화장을 진행하는 곳에 쉴 새 없이 고인들이 들어가고 그것을 지켜보는 유가족들도 계속 오고 갔다.
할머니의 화장이 진행되는 동안 새로 들어오는 유가족들이 슬퍼할 때 괜스레 나도 몇 번이나 울컥했다. 화면 속 문이 다시 열리고 '수골 대기'로 바뀔 때까지 대기실은 슬픔으로 가득했다.
인천 공항에서 대기하느라 입관을 못 본 나는 계속 사진 속의 할머니만 봤다. 사진 속의 할머니는 참 고왔다. 나중에 절에 모시러 가서 스님께서도 할머니가 참 고우시다고 했다.
1시간 40분쯤 시간이 흐르고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는 할머니를 유골함에 담고 진공처리를 한 유골함을 안고 다 함께 울었다.
우리 사촌들은 다 할머니의 큰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그래서 엄마나 이모만큼은 아니더라도 우리들 슬픔의 크기도 크다. 할머니를 보내면서 할머니가 해주시던 노란 호박전과 어릴 땐 맛없다고 안 먹던 추어탕이 생각났다.
혼자 계시던 할머니 집에 전화를 걸어 할머니하고 부르면 내 이름을 불러주시던 목소리와 끊기 전 매번 전화해줘서 고맙다고 말하시던 게 생각나서 슬펐다.
할머니가 요양원에 들어가신 후 할머니가 살던 집도 정리하면서 오래된 미싱도 정리했다고 한다. 아주아주 오래되고 척 봐도 골동품인 것 같은 미싱이었다. 할머니 유품으로 보관했으면 했는데, 부피가 커 버렸다고 한다. 사촌언니와 내가 그걸 왜 버렸냐며 한참을 엄마와 이모에게 잔소리를 했다.
한동안 할머니가 많이 생각나겠지. 엄마가 엄마를 보낸 슬픔을 위로하려고 왔는데 오히려 내가 울면 엄마가 더 슬퍼할까 봐 조금만 울어야겠다.
공교롭게도 서른한 개의 글을 쓰는 첫 글이 할머니 얘기했는데 너무 예상치 못한 때에 돌아가셔서 할머니를 보내는 글까지 쓰게 됐다. 21년 12월은 여러모로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