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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생 Mar 29. 2023

가끔 생각이 깊어질 때면

언제쯤 더 단단해질 수 있을까


한 달 전에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겠다는 글을 썼다. 지금은 뭘 하고 싶은지는 알겠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혹은 알면서 못하는 걸까. 


하고 싶은 것보다는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 베트남의 아파트 분양은, 분양 시 1차 계약금을 납부하고 그 후 총 7차례 중도금을 납입한다. 그 사이 기간이 4개월 정도 되고 매번 납부해야 하는 중도금은 2~3천만 원이었다. 4개월에 한 번씩 2천만 원을 마련하는 것은 맞벌이 기준으로 세운 계획이라, 내가 일을 쉬면서 그 계획에 차질이 생겼었다. 다행히 엄마의 도움으로 중간중간 찾아온 어려움들은 넘길 수 있었지만, 마음의 부담이 컸던 터라 얼마 전 퇴사한 그 회사를 다니는 동안 일은 힘들지언정 경제적 책임에 대한 부담은 내려둘 수 있었다. 


 어쨌든 그동안 우리는 매달 얼마씩을 모아 중도금을 내고, 또 모아서 중도금을 내고 했기에 한 번도 통장에 큰돈이 쌓여본 적이 없다. '큰돈'의 기준이 개개인마다 다르겠지만 천만 원 이상도 쌓일 틈 없이 빠져나가기 바빴으니 사실 천만 원만 넘게 통장에 있어도 크게 느껴질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이루고 싶은 금액은 대개 돈을 좀 모았다 싶으면 생각하는 금액인 1억이다. 통장에 1억 한번 찍어보고, 부모님이 빌려준 분양대금도 갚고 싶은데 그러기 위해서는 맞벌이가 빠른 수단이다. 


 지금 주어진 상황에서 하고 싶은 것과 이루고 싶은 것 사이의 괴리에서 마음이 혼란스럽고 가끔 내가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든다. 이루고 싶은 것에 집중하면 또 어딘가 나를 뽑아줄 회사를 찾아 끊임없이 이력서를 쓰고 면접을 보고, 기대했다가 실망하는 과정들이 반복돼야 한다. 하지만 어딘가 취업이 된 후에는 적당히 스스로에게 주는 당근, 채찍과 함께 월급의 일정금액을 차곡차곡 쌓으며 이루고 싶은 목표에 다가가는 성취감을 느낄 수 있겠지. 


 하고 싶은 것은 조금 더 전문성을 가지는 직업을 위한 공부나 기술습득 혹은 장난스레 말하던 카페창업꿈나무로써의 꿈인 좋아하는 것들을 담은 공간을 만드는 것, 어떤 것이든 무엇을 하든 누군가의 아내로서 얻는 경제적 이익이 아닌 내 손으로 얻는 무언가가 있으면 좋겠다. 


 남편이 일해서 얼마 벌어오라, 돈 아껴 써라, 이런 잔소리를 하는 사람은 아니다. 항상 내가 원하는 것, 지속할 수 있는 것을 하라고 응원해 준다. 그럴 때면 장난스레 나는 그냥 편하게 집에서 놀고먹고 싶은데?라고 말하기도 했고, 그 편함에 취해 살아본 적도 있건만 이상하게 요즘은 그런 삶이 아닌 부딪히고, 도전하고, 얻는 삶을 살고 싶다. 나 자신으로써 해내는 것을 하고 싶다. 


 늘 나는 내가 단단하고,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라 자기 합리화 혹은 객관화를 잘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은, 그러니까 분위기 좋았던 그 면접에 미끄러진 이후에는 어딘가 부족하고 모자란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미끄러진 이유야 뭐, 나보다 더 경력이 좋은 사람이 있었거나 더 적합한 사람이 있었겠지. 단지 그 회사와 나는 인연이 아니었을 뿐이다. 


 하지만 보통의 나라면 '나를 채용하지 않으면 회사 손해지 내 손해냐'하고 넘길 텐데,  요즘은 내가 기혼여성이라서? 나이가 어중간해서?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게 된다. (베트남에서는 여전히 기혼인 내게 자녀계획을 면접에서 꼭 묻는다. 특히 이번 면접에서는 한국이라면 절대 안 그러겠지만, 이라는 수식어를 구태여 붙이며 여러 번 물었다. 한국이고 베트남이고, 그게 실례인 것을 알면 '베트남이라서 묻는 거예요'라는 핑계를 대지 말길. 처음부터 나는 딩크를 추구하며 단호하게 자녀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사실 기혼이건 나이가 어중간하건 그냥 내가 경력이 어중간해서인 게 더 큰 이유일 것이다. 그건 아는데, 어중간한 경력을 어중간하지 않게 만들려면 어디서 경력을 쌓나요... 경력 무관이라면서요... 이렇게 되면 신세한탄이고 문제를 외부에서 찾는 거니까 그만하고, 아무튼 이런 이유든 저런 이유든 그냥 계속해서 이루고 싶은 것만 생각하며 도전하면 되는데 마음이 자꾸 물러지는 순간이 온다.


 내가 어느 부분에서 부족함을 갖고 있는 사람이란 걸 알고, 그 부족함을 채우려고 노력을 기울이고,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의 정신으로 될 때까지 취업시장에 뛰어들어도 아무도 안 뽑아주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 때, 마음이 물러진다. 괜스레 잘못 살아온 것 같고 내가 그동안 살아온 삶에 부족한 것들만 보인다. 


 이럴 때일수록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에 집중하고 마음을 단단하게 해주는 독서. 나를 풍요롭게 해주는 새로운 경험, 다른 시각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사람 만나기 등 '나'에게 집중해야 하는데 알면서도 게으름을 피우는 나는 나의 회복탄력성을 믿기 때문일까. 


 그래도 그동안 살아온 짬이 있다고 이렇게 마음이 약해질 때 어떻게 하면 다시 나아갈 수 있는지, 중심을 잡을 수 있는지 조금은 알게 돼서 다행이다. 계속해서 마음이 물러져 더 깊은 동굴이 생기기 전에 마음을 잘 도닥여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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