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워바디> 리뷰 / Our Body, 2018
*서울독립영화제에서 관람하고 쓴 리뷰입니다. 영화 줄거리에 대한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행정고시를 준비하느라 8년의 세월을 보낸 31살의 자영은 의욕이 없다. 그저 하루하루 살아내는 것처럼 보인다. 이제 더 이상 책 속의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고, 남자친구와의 관계도 감흥이 없다. 몸은 무겁기만 하고 체력은 예전 같지 않다. 남자친구는 일방적으로 이별을 고했고 이제 시험 따위는 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던 자영의 앞에 현주가 나타난다.
계단 몇 칸에 숨이 찬 자영의 손에서 맥주 캔이 굴러떨어지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달리기를 하던 여자는 계단을 가뿐히 올라 캔을 주워 건넨다. 이마에 맺힌 땀방울, 오르내리는 가슴팍, 머리부터 발끝까지 '살아있음'의 기운이 폴폴 나는 여자, 현주였다. 자영은 현주의 생명력에 두근거림을 느낀다.
시험을 보지 않았다는 말에 엄마는 그럼 취업 준비를 해야 하지 않겠냐고 핀잔을 주고, 자영은 "엄마, 나 31살이야, 내 나이에 취업 못해"라고 씁쓸하게 대답한다. 8년을 공부해도 성취는 없고, 나이를 이유로 문전박대 당하고야 마는 현 시대 청춘들의 모습이다.
자영은 달리기로 한다. 몰래 현주의 뒤를 쫓아 달리다가 가슴 뿌듯한 성취감을 느끼고 만 것이다. 숨이 턱 끝까지 차서 더 이상 못하겠다고 생각하는데도 버티고 나면 어느샌가 그 한계를 넘어선다. 자영의 몸은 이제 생명력이 가득했다.
영화는 '여성의 몸'에 대한 많은 편견을 깨부순다. 내 몸을 건강하게 갈고닦는 게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도 무언가 이뤄낼 수 있다는 목표임을 보여주고, 잠자리가 수단인 것이 아니라는 것도 보여준다. 내 몸의 주인은 나다. 몸은 그냥 몸이다. 섹시하기 위해서, 혹은 섹스를 위해서 있는 것도 아닌, 나의 생명력을 담은 나의 몸인 것이다.
엄마는 자영에게 이렇게 말한다. "안타까워 그러지, 조금만 더 했으면 날개 달아 훨훨 날아갈 수 있었을 텐데..." 이처럼 누군가는 자영을 안타깝게, 혹은 이상하게 바라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무슨 상관인가? 세상이 써놓은 정답대로 살라는 법은 없다. 현주는 달리기를 멈추지만 자영은 계속해서 달린다. 이제 자영은 온전히 내 몸을 내 몸답게 사용할 줄 알고, 생명력으로 넘친다. 나는 마지막 자영의 모습에서 날개를 봤다.
살아내는 삶이 아닌 살아가는 삶
<아워바디>는 '몸(Body)'을 소재로 노골적으로 여성을 전시하지 않고도 풍부하게 이야기를 풀어내고, '달리기'를 통해 '살아내는' 삶이 아니라 스스로 '살아가는' 삶에 대한 은유를 전한다. 정식 개봉하게 되면 꼭 한 번 더 보고 싶은 작품이다. 특히 현주의 이야기는 많은 부분이 생략되어 있어 보고 나면 또 여러 가지 생각이 들 것 같다. (스포일러 왕창 담은) 감상과 해석들은 개봉 후로 미루어둔다.
영화 상영 후에 있었던 GV에서 최희서 배우는 관객들에게 답을 주는 영화가 아닌 좋은 질문을 남기는 영화를 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 나도 끊임없이 곱씹게 하는 영화를 좋아하기에 <아워바디>가 계속 맴돌았고, 최희서 배우의 다음 작품도 꼭 봐야겠다고 마음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