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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신 Mar 20. 2024

내 인생의 열정들

내 인생의 열정들




 노년을 초라하지 않고 우아하게 보내는 비결은 열정이라고 한다. 열정! 열정이란 목적의식이 분명한 창조적인 에너지, 원하는 것을 당당하게 해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자 재능이다. 오랫동안 남들은 나를 ‘열정이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학부모로서 30여 년 동안 교육운동에 올인했기 때문이다. 교육운동의 주요 과제는 많았지만 그중 내게 특별하게 다가온 주제는  교육 불평등 해소, 무한 대입 경쟁 해소였다.  이러한 교육개혁 과제는 그 당시 초짜 학부모인 나의 당면한 과제이기도 했고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문제이기도 했다.  남들은 시민운동을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고 했지만 나는 이 과제를 개인적인 해결이 아닌 사회적인 해결, 법과 제도를 통해 이루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설걷이하다가 고무장갑 벗어던지고 시민운동에 용기를 갖고 뛰어들었고 오랫동안 모든 열정을 쏟아부었다. 어느덧 교육개혁은  내 인생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과제가 되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교육운동에 그렇게 오래 참여하게 될 줄은 나도 몰랐다. 교육개혁의 목표가 해결될 때까지  그 길을 멈출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인생을 살면서 헌신할 삶의 목적이나 대상을 발견한 것은 나로서는 행운인 셈이었다.



교육운동 참여 초기 20년 동안 교육민주화, 교육재정확보, 공교육강화라는 분명한  목표를 세우고 교육운동가로서 지치지 않고 창조적 에너지를 발산했기 때문에 그 사이 나의 별명은 "당당 명신"이 되어있었다. 특히 나는 운동가로서 뜨거운 감수성이 있어 "why not?"을 외치며 기자회견과 집회, 시위는 물론  단식투쟁도 마다하지 않았다. 늘 5분 대기조 상태로 긴장하고 늘 시간에 쫓기며 보도자료를 작성하고, 기자회견 준비하는 막일 삶이지만 무급 자원봉사 일이 힘들 줄 모르고 창조적으로 이어갔다. 세월이 흘러 한 단체의 간사에서 시작해 사무국장, 단체 대표가 되어도 일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니 지인들이 "김명신은  열정이 있는 사람"이라는 말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20년 교육운동의 열정은 우연한 기회에 정치권 영입으로 이어져 나는 서울시 비례대표 시의원(교육위원)이 되어 다시 한번 열정적으로 4년을 일했다.  


 그러나 나의  열정이 내 인생에 꼭 도움을 준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과도한 목표에의 집착으로 팀워크에 무리를 줘서 구성원 간의 관계를 해치고 그 피해가 나 자신에게 돌아온 적도 있다. 그때 상처받은 기억은 잊히지 않아 무리했던 자신을 용서하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남들이 나에게 열정적이라고 말하면 속으로 내가 열정이 있어서 즐거웠던 일, 열정이 있어서 상처받았던 일, 일에 대한 여전한 뜨거운 속내가 동시에 떠올라 계면쩍어하며 얼른 말꼬리를 돌리기도 했다.  



나는 최근 몇 년 동안  출구가 막힌 열정 앞에서 많이 외로워했다. 평생 목표인 교육운동을 멈춘 것은 아니지만 특히나 총선을 앞둔 요즘 같은 정치 계절에 동료들이 총선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면 내 마음이 너무 소란해진다. 내가 열정을 쏟을 주제를 찾아 올인했고 비록 인생의 정치권 도전은 ‘운명’ 혹은 부족한 헝그리 정신으로 인해 지리멸렬한 실패로 끝났지만 교육개혁을 미완으로 놔둔 아쉬움 때문이다. 턱없이 부족한 헝그리 정신 때문에 이어지는 나의 실패담들은 한 권 책으로 엮어도 될 정도이다.  열정은 있되 이 열정을 펴나가기 위한 수단과 방법이 부족했다고나 할까? 그렇다고 몸에 안 맞는 옷을 입고 언제까지나 외롭게 살아갈 수는 없지 않은가? 인생에서 부와 명예등 성취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사느냐도 중요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살 것인가?




 나는 지난해 봄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완주했다. 주변에서는 나의 산티아고 순례길 도전에 대해 격려와 우려를 보냈지만 결국  산티아고 순례길 완주에 성공했다. 속으로 수백 번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어 산티아고 순례길 출발점인 피레네 산맥 앞에 이르렀다. 그 후 한 달 이상을 매일같이 걷고 걷고 또 걷고 또 걸어 종착점인 산티아고 대성당에 도달했다.  나는 순례길을 걷는 과정을 통해 나의 지난날을 곱씹어 돌아보고 열정과 체력과 의지든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신뢰를 갖게 되었다.  나는 교육운동뿐 아니라 매사에 열정이 있었던 셈이다. 지금도 남아있는 열정을 부끄러워하긴 하지만 한편으로 이 나이가 되고 보니 열정적이란 말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겠다. 열정이 없어서 문제이지 열정이 있어서 문제가 아니란 것도 뒤늦게 깨달았다. 노년을 초라하지 않고 우아하게 보내는 비결은 열정이라는데 남아있는 내 열정의 제 물길을 찾아 주는 것도 나의 의무이다. 다시 한번 겸손하고 순수하게 내 인생의 열정들을 생각해  본다.  아직 내 인생의 마침표는 찍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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