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전 한국 사회에서 일반여성이 결혼과 동시에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내고 전업주부로 살아간다는 것은 곧 사회와 단절하고, 가족이라는 아주 좁은 인간관계로 들어섬을 뜻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리 좁은 인간관계라도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해야 하는 등 인간관계의 본질은 같은 건데 신혼 때 나는 ‘가족관계란 부부간의 파워게임’으로만 이해했다. 남편은 결혼과 입사를 동시에 했는데 나는 결혼과 퇴사를 동시에 해서 뭔가 피해의식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남편이 전근 간 객지에서 두 아이를 키우느라 만성피로에 절어 있으면서도 마음은 늘 허전했다. 객지에서 나 홀로 육아하느라 몸은 고되었지만 빨래를 해도 나의 일이 아닌 것 같아 허전했고 무채를 썰면서도 마음 한 곳은 늘 허전해했었다. 지나 놓고 보니 사실 아이와의 관계도 하루하루 치열한 노력과 성실함의 결과인데 아이와는 일방적으로 주는 관계라고 믿었다.
"이곳은 내가 있을 곳이 아니야! “
내 마음은 밖을 향해 있었지만 내게 집, 친정, 시댁 말고 밖으로 나갈 방법은 없었다.
결혼 후 경력단절 7년 차 주부로서 가족만이 전부인 내 삶에 틈새를 내고 사회적
관계를 새롭게 만들고자 했을 때 나는 원점에서 아니 마이너스에서 시작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당시 나는 돈 버는 일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꾸고 아이들
교육문제의 심각성에 진저리를 치며 교육시민단체에서 자원봉사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일을 하며 과거 당당하던 나는 어디로 갔는지 푸딩처럼 쉽게 상처받는 나를 보았다.
30대 주부의 빛과 그림자, 사회와의 단절에서 오는 소외감은 그만큼 짙고 강했다.
그런데 그때 나는 상처를 받으면서도 사회로의 재진출을 왜 멈추지 않았던 것일까?
그 무렵 나는 마음속으로 ”내가 평생 이렇게 집, 시댁, 친정 셋집사이에서 외딴섬처럼 살게 되면 어쩌나? “그런 고민이 컸었던 것 같다. 육아와 사회 재진출, 두 선택 사이에서 어쩔 줄 모르던 30대, 40대... 그리고 이제 결혼 41년 차.
만약 내가 30대 때의 나를 만난다면 ‘그동안 수고 많았다’고 진심으로 위로하고 싶다. 그리고 나는 그 당시 많은 것에 무지했던 나를 용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