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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신 Mar 20. 2024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나에게 보내는 위로 2

산티아고 45일의 여정

 산티아고 45일의 여정


2023년 4월 21일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 위해 홀로 인천공항을 출발해 현금 복대를 차고 패션의 도시 파리에 도착했다, 출입국 절차를 기다리는데 내 모습을 보더니 대뜸 "산티아고 순례길 가냐?"며 한 대만 여성이 말을 걸어왔다. 나중에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친구가 된 이 여성과 그 당장 왓츠앱에 친구 추가도 했다. 마음 한구석에는 산티아고 길에 대한 중압감은 있었지만, 그래도 생일을 맞

은 외국사는 둘째와 파리생활을 즐겼다. ‘패션의 도시 파리가 소문보다 볼 게 없다며 실망이다’라는 사람들도 많다던데, 내게 파리라는 도시는 기대 이상으로 더 멋진 곳이라는 느낌이었다. 괜히 파리가 아니구나!


4월 26일경 둘째가 일터로 돌아가고 나는 예정대로 4월 28일 프랑스 파리에서 산티아고길 출발 지점인 프랑스 생장 피오르드로(이하 생장)로 출발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돌발사태 발생했다. 생장 출발 이틀 전 밤, ‘비행기 승객이 초과 예약되었다’는 메시지가 왔다. 산티아고 순례자들의 첫 출발지인 프랑스 생장은 파리에서800킬로 떨어진 곳이다. 생장까지 교통편은 기차와 비행기가 있는데 나는 체력 소모를 줄이기 위해 비행기 편으로 생장 인근 비아렛츠 공항을 선택했었다. 그런데 비행기 초과예약으로 탑승 불가능하다는 메시지를 받은 것이다. 5월 1일 노동절과 겹쳐 테제베 기차도 매진된 상태였다. 코로나 봉쇄가 풀린 노동절 연휴로 많은 사람이 동시에 이동하던 날, 12시간 파리 드골 공항 체류는 앞으로 시작할 고생길의 예고편인 셈이었다.

하루를 기다린 끝에 평소 10만 원짜리 항공표를 80만 원에 구매하여 프랑스 생장에 도착했다. 생장에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시작하려는 어마어마한 인파가 이미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은 나라별로 스페인이 가장 많았고, 이웃인 프랑스, 독일, 아일랜드 등 영국, 중남미와 아시아 쪽에서는 대만과 한국인들이 다수였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방문하는 세계 톱텐 국가에 한국도 끼어있어서 확실히 한국인들도 많이 있었다.생장에 도착하여 순례자 사무실에 들러 순례자 등록을 하고 순례자 여권을 구매했다. 사무실 한 곳에 순례자의 상징인 큼직한 가비리 껍데기

를 놔두었길래 기부금을 내고 가리비를 배낭에 매달면서 출발을 준비했다.


 순례자들이 가리비를 배낭에 달고 다니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예수의 제자 중 첫 번째 순교자인 성 야고보는 예수가 사망한 뒤 멀리 이베리아반도까지 가서 선교활동을 하다가 예루살렘에서 참수당한다. 야고보의 제자들이 그의 시신을 빈 배에 태워 보냈는데 이 시신이 이베리아반도까지 당도했고, 야보고의 시신이 조개껍데기에 둘러싸여 전혀 손상되지 않고 보존되었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가리비 껍데기가 산티아고 순례길의 상징이 되었다.  산티아고 순례길 중 프랑스 길(프랑스 생장에서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첫날은 프랑스 생장에서 피레네산맥을 넘어 스페인으로 향하는 산티아고 순례길 중 가장 어렵다는 날이다. 4월 29일 아침부터 구름이 많더니 고도가

높아질수록 안개비가 내렸다. 5m 앞 지척 사람도 못 알아볼 지경이다. 나는 속

으로 폭우가 안 쏟아지는 게 정말 다행이라며 스스로 위로하며 걷고 걸었다. 안개 낀 피레네산맥을 넘어 출발점에서 27킬로 지점인 론세스 바예스 공립 알베르게에 도착.

그러나 뭐가 잘못됐는지 내 이름이 론세스 바예스 공립 알베르게 예약 명단에 없었다. 분명 카드번호도 보내고 며칠 전 최종 확인 메일까지 보냈건만 이 무슨 일인지? 불안이 엄습했고 나는 예약하지 못한 명단에 끼어 60~70여 명이 마루바닥에 침낭을 펴고 자게 되었다. 밤새 찬 바닥에 침낭 펴고 자고 일어나니 이게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었다. 다음 날 새벽 세수도 안 한 채 길을 나섰다. 이렇게 시작하여 매일 그날 밤 숙박할 곳을 구했으며 나중에 여유가 좀 생겨 며칠 치 숙소를 예약하며 다녔다.


다음 글은 산티아고를 걷던 중 어느 하루의 일기이다.


나는 서울에서 감기를 달고 왔다. 처음 2주는 감기가 심해 목소리가 나오지


아 한 까미노 프랜드는 내가 성대 수술받고 온 줄 알았다고 한다. 2~3주가 지나

서야 목소리가 되찾아졌다. 처음엔 숙소 문제로 큰 고통을 받았고 아직도 신발

문제로 고통도 받고 있으니 집 신발장에 빼곡한 등산화들이 그립다. 그래도 이

젠 그런대로 걷기에 탄력이 붙어간다. 아직 발의 물집 상태도 완전하지는 않아도 26~27 킬로미터 정도는 한두 번 쉬면 걷는 정도로 발전했다. 어제 묵은 알베르게도 널찍한 4인실인데 2명이 쾌적하게 잤다. 며칠간 빈 침대가 남은 걸 보니 숙소 문제도 어느덧 풀려가는 듯하다. 처음 열흘간 매일 밤 숙소를 고민하면서 서울에 살면서 말끝마다 “의식주 중에 주 생활을 해결하지 못했다.” 하고 평생 더 넓고 깨끗하고 아름답고 멋진 집을 동경했으나 이젠 앞의 두 가지만으로도 만족해야 함을 절실히 깨달았다. 나는 이 길을 걸으며 얻고 싶은 것, 버리고 싶은 것이 있었다. 처음엔 생각 없이 기대 없이 결혼 40년 만에 첫 혼자 여행으로 출발한 길이었지만 그런데도 누군가 이 길을 왜 왔냐고 묻는다면 마음 깊은 곳에 소원이 있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먼저 이 길을 걸으며 30여 년 교육 운동 판에서 애쓰고 살아온 나를 위로하여고 싶었다. 큰아이 초등학교 입학하며 학부모로서 깨닫게 된 한국 교육 문제, 개인의 결단으로 해결되지 않는 구조적 문제들-설거지하다가 고무장갑을 내던지고 나가 시민운동을 시작한 한 평범한 주부가 영문 모르고 겪어야 했던 그 많은 일들, 부대끼고 살아온 그날들을, 그 애씀과 그 노고를 이제 다독이며 위로하고 싶었다. 돈도 되지 않는 이 판에서도 능력의 한계에 따른 일도 힘겨웠지만, 한국 사회 고질병인 학연, 지연, 혈연 등이 영향을 주는 인간관계의 복잡함도 없지 아 나로서는 최선이라 생각했으나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했던 수많은 관계 앞에서 힘들어했었다. 늘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내가 나를 들볶던 날들. ‘그만하면 애썼다’ 하며 나를 위로하고 싶었다. 손절! 더 빨리 알았다면 더 맘 편히, 더 지혜롭게 살았을 텐데 때로는 우유부단하고 우둔하게 다 안고 가려던 것도 하나의 욕심임을 알겠다. 이 순례길을 통해 기존 사고방식과 낯익은 행동에서 벗어나 다른 각도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 이 길을 통해 방황을 멈추고 문제가 풀리고 새로운 길들이 열리는 것도 새삼 보았다. 희망 없는 일에 방황하며 더 이상 허우적대지 않기.

뜻이 있으면 길이 있으니!

 그리고 문제는 더 속 깊은 욕심- "잘 비우면 잘 채울 수 있다”는데 교육 문제 해결을 통해 사회 불평등 해소에 기여하고 싶다던 내 깊은 욕망에서 이제 놓여나고 싶었다. 능력과 욕망이 같이 간다고 믿었지만 어쩌면 능력보다 앞서던 욕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소망이라 말하면 남들이 욕망이라 말할까 두려웠고 내가 욕망이라 말하면 남들이 소망이라 말하던 것들!

과연 그 욕망과 소망을 내려놓을 수 있을지, 놓여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바뀔 준비가 이미 되어 이 길을 찾은 순례자들이 이 길을 통해 얻는 새로운 깨달음들이, 그런 보편적이고 날카로운 깨달음이 과연 내게 와줄지 남은 여정이 기대되었다. 이제 다시 길 떠날 새벽이다.


걸으면서 위기의 순간이 닥칠 때마다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은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란 속담이었다. 앞에서 쓴 것처럼 프랑스 파리에서 초과 예약 메시지를 받은 직후부터 하루 종일 드골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며 당

황하지 않고 생장까지 담담히 치러냈다. 순례길 초기 숙소 난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해결책을 찾아냈다. 어리광이 나간 자리에 용기가 들어온 건가? 더 노력하면 앞으로도 혼자 여행할 수 있을 것 같다. 여기에서 좀 더 노력해야 한다는 뜻은 내가 좀 더 많이 고생해야 한다는 것을 뜻했다. 순례길 막바지 완주 1주일 전에 걷다가 발이 삐끗했다. 다친 부위가 가라앉지 않고 매일 벌겋게 부어올랐지만 그만한 일로 길을 중단 수는 없었다. 주변에서 빈대에게 물려 고생하는 이들도 생겨나고, 결국 길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도 했다. 그 모든 과정을 겪어내고 완주를 해낸 내가 조금은 대견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완주하고 성당에 도착하던 날, 막바지에 이르자 이제는 걷기에

이력이 붙어 오전에만도 20킬로를 걸을 만한 힘이 붙어 있었다. 산티아고 광장에 도착하니 광장은 완전히 잔칫집 분위기였다. 인산인해를 이루는 산티아고 광장과 성당. 성당은 인파로 초만원이라 들어가 보지도 못했다. 완주하던 날 큰 감흥은 없었지만

‘해냈다’하는 자신감과 함께 산티아고 순례길 완주증명서 받으니 기분이 좋았다. 완주하던 날 하늘도 완주를 축하하려는지 밤에는 모두가 기다리던 비-메말랐던 대지에 세찬 비를 뿌려주었다. 티브이에서 보던 그 유명한 향로미사는 거액의 후원금을 내는 사람이 있어야만 가능했다. 2022년 가을, 순례길 경험을 쌓고자 막바지 구간 걷고 미사에 참여했을 때는 주일 미사 두 번을 와도 향로미사를 못 보았는데 순례객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2023 봄 점심/저녁 모두 하루에 두 번이나 향로미사를 치렀다고 한다.


상업화된 순례길의 또 다른 모습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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