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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신 Mar 20. 2024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나에게 보내는 위로 3

-까미노의 친구들

까미노의 친구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세계 각국에서 온 순례자들에게 가장 많이 듣게 되는 말

은 “부엔까미노”이다. 부엔까미노의 뜻은 “좋은 순례길 되세요”라는 의미이다.

나라마다 말은 모두 다르지만 순례자들 사이 공식 인사말로 쓰인다. 서로 열린

마음으로 상대의 안녕과 평화를 빌어주는 것이다. 지나고 보니 ‘산티아고 길’이

라는 게 참으로 묘해서 같이 걷고 싶어도 헤어지게 되고 혼자 걷고자 해도 또 다

른동행이 생기는 그런 인연의 길이기도 했다. 일명 까미노 프렌즈! 만나는 건

좋은데 이런저런 이유로 헤어지는 것은 아쉽다. 길 위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

나고 헤어졌다.


 여행 초기에는 스페인 노부부를 레스토랑에서 우연히 만나 이틀간 시간을 함

 보내기도 했다. 덩치가 큰 연상의 아내는 자기보다 덩치가 작은 남편을 '나의

물방울'이라 부르며 유쾌하고 순수한 애정을 표현했다. 저 나이에 저렇게 티 없

이 서로를 위할 수가 있구나! 웃음이 떠날 새가 없는 연상의 여성은 ‘나는 골치

아픈 핸드폰도 없다.’ 말하며 인생을 즐겁게 여겼다. 연하의 남편은 경치가 좋은

자리에서는 차를 세우고 트렁크에서 포도주와 안주를 꺼내 즉석 타파스를 맛있

게 만들어 내고 연인과 포도주를 나눠 마셨다. 나에게도 어김없이 노상 음주를

권했다. 순수하고 유쾌한 노년들을 보자 나의 노년도 그러하길 바랐다.


 옛말에 세 사람이 걸으면 그중에 반드시 스승이 있다는 말을 실감하였다. 길

을 걷는 도중 우연히 만난 분들과 ‘산티아고 빠. 삐. 따. 클럽’을 만들기도 했다.

‘빠. 삐. 따.’는 빠(빠지지도 말고) 삐(삐지지도 말고) 따(따지지도 않는다는)의 준말이다. 오래 길을 걸어 피곤해지거나 감정이 예민해졌을 때 ‘빠. 삐. 따.’라는 주문이 아주 요긴하게 쓰였다.


 걷다 보니 여행사 패키지로 온 한국단체 순례자들과도 안면이 생겼다. 공립 알

베르게는 저렴한 대신 선착순으로 침대를 배정받는데, 한국 패키지여행사를 통

해 온 순례객들은 사설 알베르게를 전세 내어 숙박한다. 그러므로 그 순례객들은

숙박지가 늘 안전하게 정해져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서로 경쟁하듯 걸었다. 그 이

유는 같은 값에 2인실, 1층 침대 등 좀 더 쾌적한 잠자리를 배정받으려면 남들보다

일찍 도착해야 하므로 경쟁해 온 것이다. 재화가 한정적일 때 인간은 경쟁할 수박

에 없다는 사실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아픈 다리를 지팡이에 의지하며 걷는 멕시코인. 영어도 안되고, 스페인어도 안

되지만 손동작과 발동작을 통해 남미에서 온 순례객들과 혼연일체가 되어 여행

을 배워나가며 즐기던 한국 젊은이들과도 여러 날 같이 걸었다. 가끔은 한국에

서 온 20대 초반 젊은 친구들을 초대해서 삼겹살 파티를 열기도 했다. 지금 생각

해 보면 뜻 맞아 빠. 삐. 따. 클럽을 만들어 여럿이 걸었던 며칠간의 시간이 ‘산티

아고 길의 화양연화’ 시절이었던 것 같다.

 뜻이 있으면 길이 있듯이 순례 여행은 누구에게나 크고 작은 변화를 불러왔다.

평생 다니던 직장에서 은퇴하자 수첩에 빼곡한 이해관계로 만난 지인들에게 본

의 아니게 손절당하고 우울할 때 찾은 이 산티아고 길에서 새로운 관계를 만들

어 가며 다시 자신감을 얻어가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길을 걸으며 대화하

다 보면 이혼과 사별의 아픔이 있거나 가족과의 관계가 풀리지 않거나 인생에서

모든 일들이 후회투성이일 때 이 길을 선택해 걷는 분들도 있었다.

겉으로는 모두 유쾌해 보여도 모두 가슴속의 서원을 품고 길을 걸으며 ‘부엔까미노’를 하루 수십 번씩 외치고 열린 마음으로 서로 도움과 위로를 주고받았으니 그 길 자체가 어떤 큰 에너지 덩어리인 셈이었다.

풀기 어려운 문제도 있었지만, 옆에서 보면 답이 보이는 것 같은데 막상 본인은 아주 힘들어하는 경우도 간혹 있었다. 어쩌면 내 문제도 실상은 아주 가벼운

것인데 내 속에서 해답을 찾지 못하니 이렇게 물에 젖은 솜덩이같이 무거운

짐을 진 것처럼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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