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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신 Mar 20. 2024

산티아고 길에서 나에게 보내는 위로 1

나는 나를 위로하고 싶다

나는 나를 위로하고 싶다.



나는 평생 자유롭길 원했다. 어느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바람처럼 자유로운

삶. 바람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었지만 현실 속 나는 자주 철망에 걸려 허우적거

렸다. 그래도 내 인생 마지막엔 완성된 "인간"이고 싶었다. 일을 하고 결혼과 육

아를 하면서 그 두 가지 목표는 늘 내 마음속에 반짝이는 등대가 되었다. 오랫동

안 현실에 따라 흐려지는 나를 찾기 위해 불안해하면서도 수없이 용기를 냈고

도전했었다. 40년 전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결혼과 동시에 다니던 직장에 사표

를 내고 전업주부로 살아간다는 것은 곧 사회와 단절하고, 가족이라는 아주 좁

은 인간관계로 들어섬을 뜻했다.

40년 전 한국 사회에서 일반여성이 결혼과 동시에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내고 전업주부로 살아간다는 것은 곧 사회와 단절하고, 가족이라는 아주 좁은 인간관계로 들어섬을 뜻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리 좁은 인간관계라도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해야 하는 등 인간관계의 본질은 같은 건데 신혼 때 나는 ‘가족관계란 부부간의 파워게임’으로만 이해했다. 남편은 결혼과 입사를 동시에 했는데 나는 결혼과 퇴사를 동시에 해서 뭔가 피해의식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남편이 전근 간 객지에서 두 아이를 키우느라 만성피로에 절어 있으면서도 마음은 늘 허전했다. 객지에서 나 홀로 육아하느라 몸은 고되었지만 빨래를 해도 나의 일이 아닌 것 같아 허전했고 무채를 썰면서도  마음 한 곳은 늘 허전해했었다. 지나 놓고 보니 사실 아이와의 관계도 하루하루 치열한 노력과 성실함의 결과인데 아이와는 일방적으로 주는 관계라고 믿었다.

"이곳은 내가 있을 곳이 아니야! “

내 마음은 밖을 향해 있었지만 내게 집, 친정, 시댁 말고 밖으로 나갈 방법은 없었다.

 결혼 후 경력단절 7년 차 주부로서 가족만이 전부인 내 삶에 틈새를 내고 사회적

관계를 새롭게 만들고자 했을 때 나는 원점에서 아니 마이너스에서 시작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당시 나는 돈 버는 일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꾸고 아이들

교육문제의 심각성에 진저리를 치며 교육시민단체에서 자원봉사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일을 하며 과거 당당하던 나는 어디로 갔는지 푸딩처럼 쉽게 상처받는 나를 보았다.

 30대 주부의 빛과 그림자, 사회와의 단절에서 오는 소외감은 그만큼 짙고 강했다.

그런데 그때 나는 상처를 받으면서도 사회로의 재진출을 왜 멈추지 않았던 것일까?

그 무렵 나는 마음속으로 ”내가 평생 이렇게 집, 시댁, 친정 셋집사이에서 외딴섬처럼 살게 되면 어쩌나? “그런 고민이 컸었던 것 같다. 육아와 사회 재진출, 두 선택 사이에서 어쩔 줄 모르던 30대, 40대...  그리고 이제 결혼 41년 차.

 만약 내가 30대 때의 나를 만난다면 ‘그동안 수고 많았다’고 진심으로 위로하고 싶다. 그리고 나는 그 당시 많은 것에 무지했던 나를 용서하고 싶다.



여행의 즐거움은 불안과 함께


 결혼 41년 만에 처음으로 혼자 여행에 나서며 불안해하는 내게 지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행의 즐거움은 불안과 함께 간다”

내게 외국 여행은 일상과의 단절을 뜻했다. 특히 일반적인 관광도 아니고 산티아고

순례길 800km를 걷는 고행길은 내게 흥미와 도전정신을 불러왔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20여 킬로를 걷는 여정,

자신의 육체적 정신적 한계와 직면하는 일이다. 그 과정에서 나의

모습이 궁금했다.



‘나는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니 나에게는 버릴 것이 많았다. 내게는 한국 교육을 개혁하여 행복

한 사회를 만들고 싶은 30년 묵은 욕망이 있다. 그러나 그 욕망은 너무 큰 나머

지 ‘산 넘어 산’ 개혁은 느렸고 도저히 채울 수가 없었다. 불가능한 욕망, 내가

이 길을 통해 욕망을 제대로 비울 수만 있다면 큰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마음

을 비우는 동시에 일상도 단순하게 비우고 싶었다.

 결혼 전 중학교 국어 교사의 경험은 결혼에 따른 경력 단절과 함께 교육 운동

이라는 새로운 장으로 옮겨왔다. 처음 관심 대상이던 내 담임 반 학생에게서

 온 나라 학생들에게로, 교육 변혁을 촉진시키는 운동가의 삶으로 확

장하였으니 경력 단절에 대한 큰 후회는 없었다. 아니 후회를 안 하려고

무진 노력했다

 그러나 내 속에 뭔가 해결되지 못한 나에 대한 엉클어진 부채가 있는 것 같았다.

 “그래! 더 늦기 전에 나에 대한 빚이 무엇인지 순례길을 걸으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자. 그리고 해결의 단초를 찾아보자.”

  나는 종교는 없지만 여성이 걷기에 가장 안전하다는 산티아고 순례길이 끌렸다.

내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겠다니 지인들 대부분 부러워하거나 걱정을 해주었다.

그 길은 대부분 종교적 이유 거나 인생의 전환점을 맞아 생각을 정리할 생각으로

걷기 때문이었다.  

나는 산티아고 가는 사람들의 모임에 참석하기도 하고 관련 서적을

읽어보았다. 순례길 관련해 많은 정보가 도움이 됐지만 그래도 혼자 걷는 순례

길의 불안은 여전했다.

“여행의 즐거움은 불안과 함께 오는 것이다. ” 지인이 말했다.

막연한 불안감은 홀로 여행이 주는 또 다른 의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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