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 전 첫 손자가 태어났고 코로나로 해산하느라 고생한 며느리 대면조차 못하자 이 글을 통해 아쉬움을 달랜다.
30년이면 강산이 세 번 변하는 시간, 그동안 출산문화역시 크게 달라졌다.
나는 요즘의 산후조리원에 대해 호감이 없는 편이다. 산후조리원들이 출산문화를 상업화시키며왜곡시키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워낙 한국 젊은 산모들, 조부모들이 필수코스로 인정하여적극 호응을 얻고 있으니 '내가 세태에 맞추어야지'라고 생각하고 있다.
예전엔 출산은 생로병사, 관혼상제 등 인생의 변곡점이자 온 집안의 주요한 경사라 온 집안이 떠들썩했다. 산모와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삼칠일 동안 대문에 금줄을 달아 외부인 출입을 금했지만 지금은 도리어 가족이 소외되고 전문가라는 이름으로 외부인들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조부모의 육아 경험보다는 전문가의 말이 더 신뢰를 받고 있다. 그래서 할머니 입장에서는 조금 섭섭하기도 하다.
며느리도 궁금해하지 않는 나의 출산기, 그래서 나는 열심히 이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36년 전 서울에서만 살던 나는 객지에서 첫애를 출산했다.
36년 전 초짜 산모의 기억
그때만 해도 뱃속 태아의 성별을 몰랐다. 배 모양만 보고 ' 태아가 딸이네, 태아가 아들이네...'라며 어림짐작을 할 따름이었다. 해산한 산모들은 태어난 아기가 손발 5개씩 인 것을 확인하고 삼신할머니께 감사를 드렸다. 그런데 요즘은 임신 중기부터 태어나기 전부터 초음파 태아 사진을 볼 수 있다. 임신 막달에는 3D태아 사진을 보여주는데 태어난 직후 실물과 거의 비슷해서 기술발전에또한 번 놀랄 따름이다. 큰아이의 최초 사진은 생후 2개월 사진이었다.
첫아이 첫사진 (생후 2개월), 빨래줄에는 소창을 끊어 만든 기저귀 가 걸려있다.
시간을 거슬러 그날, 내가 첫아기를 낳던 날 정오. 출산 가진통이 시작되었다. 당시 지방에 근무 중이던 내 남편 즉 애 아버지는 서울 본사 회의에 참석해야 했다. 그는 산모인 내게 " 진통이 심하면 서울 출장을 포기하겠다"라고 했지만 결국 남편을 잡아두지는 못했다. 요즘 같으면 남편이 출산휴가를 내면 될 일이었는데...
옛날 남편들은 가정보다 직장일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제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 "좋은 아버지 노릇은 못했으나 좋은 할아버지가 되고자 했는데 애들이 손주를 안 낳아준다"며 한탄이다.너나없이 비슷하다.
그러니 누구를 탓하랴? 세월을 탓해야지!
그가 출장을 떠난 몇 시간 후 본격적으로 통증이 시작되고 , 해산을 돕기 위해 우리 집에 와계신 친정어머니의 손을 잡고 병원에 도착했다. 그 후 몇 시간 진통 끝에 그날 밤 첫아이가 태어났다.그날 나는 분만실에 들어가려고 벗어놓은 내신발을 보며 "저 신발을 내가 다시 신을 수 있을까?"애 낳다가 죽는 산모도 있던 때여서 신파적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는 왜자연분만을 택했을까?
솔직히 아직도 그 답을 못 얻었지만 그런 소소한 일은 첫아기 기저귀 빨며 다 잊었다. 여자들이 첫아이 기저귀 빨며 첫사랑을 다 잊는다더니 내가 그런 꼴이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산후 간은 친정어머니 몫
첫 아이를 낳고 2박 3일 만에 산부인과에서 퇴원했다. 남편 대신 친정어머니가 계셔서 다행이었지만 처음에는 모든 게 낯설었고 초저녁이 되면 우울해졌다. 새벽부터 밤까지 하루 5번의 미역국 식사, 아기 목욕과 각종 뒤치다꺼리 등 모든 것이 서울에서 산후 간을 돕기 위해 딸 집에 오신 친정어머니 몫이었다. 그땐 거의 한 달간 미역국만 먹어야 했는데 친정어머니 역시 별다른 육아지식이 없거나 거의 다 잊으신지라 크게 도움은 못 받았다. 그러니 초짜 엄마로서 답답한 부분도 많아 그 당시 유행하던 <스포크 박사의 육아 전서>란 책을 고3 공부하듯 읽고 또 익히며 아이를키웠다.물론 크고 작은 시행착오도 없진 않아서나는 행복한 엄마가 되진 못했다. 초저녁이면 시름없이 앉아있는 내게 산후 간 하시던 친정어머니는 "너는 아들 잘 낳고 왜그렇게 기운이 없냐? " 걱정 어린 말씀을 하셨었다.
그땐 산후우울증 게 있는지도 몰랐다.
이렇게 딸들산후 간은 친정어머니 몫이라는 오랜 전통 때문에 요즘도 산후조리원 비용은 대부분 친정에서 부담하고 있다.
출산과 육아에 동참하는 요즘 아빠들
요즘 산후조리원은 식단, 체중관리, 육아지식과 정보 등을 얻을 수 있어서 인기지만 장점이 있다면 아빠의 신생아 다루기 교육도 체계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출산 초기, 반나절 소위 '캥거루 육아법'이라는 교육을 통해 아기아빠에게 아이에게 우유병을 물려 트림을 시키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잠을 재우은 서너 시간 육아 경험을 쌓게 한다는 점이다.이런 육아 경험을 통해 젊은 아빠들도 하루하루 변해가며 성장하는 내 아이를 지켜봄으로써 육아지식과 경험 , 아이에 대한 애착, 관심과 애정을 터득하게 되니 앞으로 여자들의 독박 육아는 어느 정도는 해소될 것 같기도 하다.
요즘 산후 조리원내부
요즘 출산 문화는 문화적, 과학적, 모자 복지적으로 많이 개화되어 산모와 아기 동실 시간이 많아 산모와 아기 간 애착관계에도 신경 써주는 것 같다.
그런 출산문화의 발달은 젊은 아빠 세대에도 영향을 미쳐 드라마 <산후조리원>에서 보듯이 육아 휴직도 여러 날있고 또 개인 휴가를 더 앞뒤로 연결하면 휴가를 길게 내서 막달 산모가 무거운 몸일 때 가사도 돕고, 출산 준비함께 하고 있다. 아내의 출산 과정을 초조히 지켜보며 갓 태어난 아이와 인증 사진도남기고부부간 경험을 공유, 정서적 유대를 굳히는 계기가 되는듯하다.
우리 때는 출산 후 밤에 아기가 울면 남편이 회사 출근해 일하는데 지장이 있을까 봐 각방을 쓰는 경우도 꽤 많았다. 지인의 경우 그때 각방 쓰기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평생 이어졌다고 한다.
며느리 해산을 앞두고 날을 잡아 아들 부부에게 당부했다. "치사랑(윗세대에 대한 사랑)은 없고 내리사랑( 아랫세대에 대한 사랑)만 있다. 태어날 아이에게 쏟는 정성의 1/100만 양가 부모님과나누고, 뭐니 뭐니 해도 아이보다 남편, 부부가 가정의 중심이니 이 점을 잊지 말아라"
30년 동안의 출산문화의 변화는 조부모에서 부모로 이어지는 가족중심 문화에서 전문적인 서비스를 돈으로 구매하는 상업적인 출산문화로 변하여 아쉬움도 있지만 어느 한편으로는 산후 서비스를 돈 주고 구매하는 대신 보다 독립적인 부부 중심 육아로 변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