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명신 Feb 13. 2023

어머니의 세 가지 소원

-노년과 죽음의 공포 속에서

어머니의 세 가지 소원     


90세가 넘은 어머니께는 돌아가시기 전 세 가지 소원이 있었다.     

첫째, 나는 병원이 무엇보다 무서워 아파도 병원을 안 가고 싶다.

둘째, 나는 1944년 결혼 후 평생 살던 집에서 죽고 싶다.

셋째, 나는 죽어서 화장은 너무 뜨거운 불에 육체가 오그라질 것 같아 싫다.

어머니가 을 바란 것도 아니고 영생을 바란 것도 아니었지만 어머니의 세 가지 소원 중 하나도 이루어진 것은 없었다.      

특히나 평생 병원을 무서워하신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마지막 두 달 동안 병원에서 겪은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어느 여름날 밤 쓰러져 갑자기 응급실에 입원하셨는데 알고 보니  90년을 넘게 쓴 어머니의 몸은 여기저기 낡고 삭아  있었다. 의사들이 이 증세를 고치려고 이 약을 처방하면 그 부작용으로 저기가 망가져 갔다.  결국 어머니께 연명치료를 안 하는 걸로 다섯 형제가 모여 의사 앞에서 서약서를 썼다. 그러나 새벽 1~2시가 되면 몇 번씩 병원 중환자실에서 전화가 왔다.

“지금 어머니한테 연명치료인 기관지 삽관을 하지 않으면 숨 막혀 돌아가신다. 빨리 결정해 달라”

나의 대답은 늘 “형제들이  서약한 대로 연명치료는 절대 안 된다” 였지만 순간순간 “이게 가장 최선일까?” 내 맘 속에 갈등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의사들은 퇴원하라는 말을 미룬 채 ‘상태를 지켜보자'며 '환자가 나아지고 있다’고 했다. 입원 40여 일이 지나자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며칠 후 퇴원하라'라고 하여 집과 요양원 중 의견을 모으는 중이었는데  바로 다음날 그 병원에서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입원 후 곧바로 매단 보조산소호흡기를 떼지 못한 채 자식들에게 단 한마디 말도 못 하시고 돌아가셨다. 그 비통하고 황당함이란....


이렇게 말기 암등 소생 가망성이 없는 질병과 노환과 현대의학이 합치면 금전적 고통은 차치하더라도 환자의 삶의 질, 죽음의 질이 너무 떨어진다는 것을  어머니를 통해 절감했다. 만 93세,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응급실에 가시지 않았어도 집에서 편히 한두 달 가까이 있는 살 수 있지 않으셨을까?  그때 나는 병원행을 반대했지만 나의 형제들은 그래도 한가닥 희망 혹은 그런 고통을 알면서도 현대의학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의 두 번째 소원- 평생 살던 집은 돌아가신 후 어머니의 세 가지 소원을 아는 내가 우겨서 영구차를 타고 오셨다. 평생 사시던 한옥의 안방, 부엌, 마당을 한 바퀴를 도는 것으로 그 집에서 산 70여 년 세월이 간단히 마무리되었다.


어머니의 세 번째 소원도 어긋나 매장 대신 화장 후 가족 납골당에 모셨다. 어머니의 세 가지 소원을 들어 드리지 못한 죄송함이 내게는 늘 남아있다.


나의 아버지는 67세에 집에서 죽음을 맞으셨다. 집에서 두 달 정도 앓으셨는데 그 뒷바라지를 온 가족이 정성껏 했다. 35년 전 일이다. 집에서 초상을 치렀다. 골목 어귀에 초상집을 알리는 장의사등이 달리고 온 동네가 떠들썩했다. 어머니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저승길을 밝혀드리기 위해 정성껏 진오귀 굿을 벌였다.

그러나 어머니가 살아생전 시어머님, 남편등 망자를 위해 거금을 들여 정성스럽게 마련했던 진오귀굿이 정작 본인상에서는 생략되었다. 굿을 관장할 사람이 없었다. 시대가 변한 것이다.   


나의 시어머님의 경우 93세 기력이 다하셨을 때 욕실에서 미끄러져 고관절 골절을 당해 수술을 받으셨다. 고관절 골절의 경우 고통이 너무 심해 수술을 안 할 수가 없다. 그러나 치매를 앓으시느라 본인은 영문도 모른 채 수술받고 욕창 등 그 남은 고통과 싸우는 모습은 무척 애처로웠다. 시어머님이 평생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하던 아들들도 끝내 알아보지 못하고 세 달 만에 가셨다. 모두들 “호상”이라고 했다.


부모님들의 죽음을 모시면서 나는 2022년 여름,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연명치료거부)를 썼다. 사전연명의료 의향서란 "나중에 아파서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됐을 때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뜻을 미리 밝혀두는 서류이다.


우리보다 초고령사회를 먼저 경험한 일본 사회학자 우에노시즈코의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하다’와 그밖에 제목도 생각나지 않는 수많은 책들을 읽었지만 나는 아직도 해답을 얻지는 못했다.   


어머니의 세 가지 소원은 내게도 해당된다.

나는  집에서 소박한 죽음을 맞이하고 싶디. 아파도 병원에 가지 않고 자연사할 수 있으면 더욱 좋겠다.

평소에 보고 싶은 사람들 만나 고맙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 미안하다는 말, 신세를 진 것들을 미리미리 갚고 싶다.  

나는 화장도 상관없다.

그래도 답답한 도자기 유골함 속 말고 가벼운 한지에 쌓여 자연으로 속히 돌아가고 싶다.


 삶의 마지막 하루를 살듯 최선을 다해  매일이 충만하다면 더없이 좋으련만 그렇게 깨달음을 얻기엔 아직 먼 것 같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