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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호 Nov 29. 2018

악틱 몽키스는 지금 달에 있다.

Arctic Monkeys, [TBH&C] (2018)

 우주 시대를 품은 공상. 악틱 몽키스(Arctic Monkeys)는 아폴로 11호가 착륙했던 고요의 기지(Tranquility Base) 자리에 가상의 호텔을 세우고서는 사람들을 초대해 달 개척지에서의 단상을 넌지시 들려주기로 한다. 이에 적합한 사운드트랙을 만들고자 우주 경쟁 시기의 사운드를 대거 끌어들였다. 라운지 팝과 재즈, 조금의 엑소티카, 사이키델릭 팝, 글램 록, 소울 등 당대에 유행하던 음악들이 작품의 주된 장르를 형성한다. 변화의 흔적들은 사운드 표면에부터 다분하다. 해당 스타일들을 적극 사용하기 위해 리버브 톤을 뒤집어씌워 널찍한 사운드스케이프와 긴 잔향을 유도함은 물론, 느릿한 템포와 다소 가라앉는 분위기를 앨범 전반에 깔아 둔 데다, 자신들의 개러지 록을 주도했던 기타를 뒤편으로 물리고서는 피아노와 오르간, 신시사이저, 오케스트론과 같은 건반 악기들을 대거 활용했다.


 이런 연유로 음반은 악틱 몽키스의 작품으로는 기이하고 의심스럽다. [Humbug]에서 출발해 전작 [AM]에 이르기까지 사이키델리아와 스토너 록, 하드 록을 체득해 음악 경계를 무너뜨려오면서도, 밴드는 출사와 함께 집어들었던, 그리고 그 자신을 장르의 적자로 올라서게 했던 기타 록을 한시도 내려놓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앨범은 어떠한가. 몽환이 느슨하게 흐르는 이 작품에 과연 기존의 전범이 끼어들 수 있을지.

 
 예의 악틱 몽키스는 이 호텔에서 쉽사리 만나볼 수 없다. 앞서 언급했듯 리드미컬한 기타 리프는 일찌감치 종적을 감췄다. 은유와 중의로 뒤덮인 알렉스 터너(Alex Turner)의 일장연설은 캐치한 훅을 교묘하게 은닉하거나 아예 배제해버리며, 여백 많은 편곡과 긴 호흡의 전개는 완력을 증발시킨다. 많은 변이의 인자들이 우리가 오랜 기간 알고 있던 밴드를 생소하게 만든 덕분에 앨범은 상당한 위험 부담을 품는다. 그러나 뒤집어 생각해보면 익숙하지 않다는 성질은 새로운 영역으로의 진입이라는 성과를 동반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봤을 때,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낯선 [Tranquility Base Hotel & Casino]는 그 생경함만큼이나 대담한 경계의 확장을 이루어냈다고 할 수 있다.


 새로이 사용한 어휘들의 종류가 얼마나 다양한가. 상기한 각종 건반 악기들 외에도, 음악 거개에 녹아있는 스페이스 팝의 몽롱하면서도 뿌연 음향 질감, 한없이 차분한 무드, 'Tranquility Base Hotel & Casino' 등 주요 트랙을 장식하는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 식의 아트 팝과 'The ultracheese'에 담아낸 1950년대의 트래디셔널 팝, 'The world's first ever monster truck front flip'의 미니멀한 챔버 팝과 같은 변곡점에 놓인 요소들은 이전의 악틱 몽키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던 성분이다. 작품에 적용된 갖은 시도들만으로도 [Tranquility Base Hotel & Casino]는 변혁을 꾀했다는 큰 의미를 거둔다.
 
 [Tranquility Base Hotel & Casino]에서 빛나는 특장은 상상력과 연출력에 존재한다. 알렉스 터너와 밴드는 우주 시대의 상징과 현대의 쟁점을 뒤섞어 오늘날에 어울리는 공상을 그려냈다. 배경에는 [블레이드 러너], [고스트버스터즈], [죽음의 영혼]을 비롯한 당시의 영화와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1984]를 포함한 도서, [월드 온 어 와이어], [올드 그레이 휘슬 테스트]등의 TV 프로그램으로부터 복제한 20세기 중반의 이미지들이 있다. 그리고 이야기 내부에는 소비주의와 젠트리피케이션, 엔터테인먼트, 소셜 네트워크, 가짜 뉴스, 트럼프 미 대통령을 위시로 한 근래의 여러 사안들과 약간의 자전(自傳)이 있다. 서로 다른 시기의 표징들을 한 데 모아, 현실과 실재와 허구로 구성된 재미있는 무대를 만든 셈이다.


 사운드에 담긴 우수한 연출들도 보자. 장르 차원만이 아니라, 옛된 글램 록 트랙 'Star treatment'가 가진 정갈한 편곡과 뿌연 잔향, 'Tranquility Base Hotel & Casino'가 자랑하는 1970년대 초중반의 데이비드 보위 식 사운드와 각양의 건반 악기들, 'Science fiction'의 후경에서 횡행하는 테레민 풍 신시사이저 음향, 'Four out of five'의 코러스 구간에 들어선 층 높은 건반 악기 더미와 같은 세부적 차원의 사운드 디자이닝에도 20세기 중후반을 연상하게 하는 탁월한 묘사가 들어있다. 앨범과 개별 곡들이 가진 테마를 매혹적으로 부각하는 장치들이다.
 
 결정적으로, 이 앨범을 충분하게 긍정할 수 있는 지점은 악틱 몽키스의 작법이 실험에 완전히 매몰되지 않았다는 결과에 있다. 개러지 록은 사라진 지 오래이나, 접근성 높은 멜로디를 뽑아내는 알렉스 터너와 밴드의 송라이팅은 이번 앨범에서도 유효하다. 매개가 기타에서 피아노로 변경됐을 뿐 리프들에는 여전히 선율감이 가득한 데다, 소울 음악으로부터 뽑아낸 나른한 그루브에는 흡인력이 깃들어있다. 'Star treatment'와 'One point perspective'의 리드미컬한 읊조림에서부터, 'Tranquility Base Hotel & Casino', 'Four out of five'의 캐치한 훅에 이르는 보컬 라인에서의 다양한 선율 또한 훌륭한 작곡 역량에서 비롯된 결과물들이다. 그런 점에 있어 [Tranquility Base Hotel & Casino]는 새로운 컬러를 대폭 이식한 실험작으로서의 의미를 획득함과 함께, '다소 느슨한 면이 있으나' 역시나 매력적으로 들리는 또 다른 악틱 몽키스의 작품이라는 의미도 가져온다.
 
 매력적인 순간들은 위의 독특한 접근들과 멜랑콜리한 선율들이 상응하는 위치에서 다수 발생한다. 분위기를 점차 고조시키는 알렉스 터너의 보컬 퍼포먼스에 맞춰 사운드 규모를 확장하는 'Star treatment', 피아노와 드럼의 미니멀한 편성 위로 다른 악기들을 점층적으로 쌓아낸 'One point perspective', 너른 음장 곳곳으로 보컬과 갖은 악기의 음향을 아득하게 퍼뜨리는 'Tranquility Base Hotel & Casino', 우주여행을 차분한 스탠더드 팝 사운드로 잔잔하게 마무리한 'The ultracheese' 등을 주목해야 할 지점으로 꼽아야겠다. 하나 같이 빼어난 트랙들이다. 그리고 말할 것도 없이, 건조하고 절제된 드럼과 풍성한 건반 편곡, 알렉스 터너의 극적인 보컬 연기, 아웃트로 구간에서의 코러스 코드 진행에 변화를 주는 전개에서의 변칙까지, 여러 특징을 투하한 'Four out of five'는 물론 작품 최고의 곡에 해당한다.
 
 그렇기에 [Tranquility Base Hotel & Casino]는 대단한 앨범이다. 악틱 몽키스의 행보 가운데서는 가장 이질적인 작품이기에 호오의 구별이 뚜렷하게 발생하겠으나 그 소산과 의의로는 밴드의 지난 수작들과 동등한 지위를 확보할 테다. 음반을 구축하는 개개의 곡들을 다시 보자. 구성 성분들은 풍성함과 동시에 짜임새는 견고하면서, 글램 로커로 분한 알렉스 터너가 내뱉는 멜로디는 유려하다. 시야를 넓혀 트랙리스트 전체 단위를 살펴도 앨범에는 이렇다 할 모자람이 없다. 41분이 조금 못 되는 이 여정에는 가맣게 막을 여는 오프닝으로 시작해 완급을 오가는 중반부를 거쳐 평온한 클로징으로 작품을 끝내는 명확한 흐름이 있고, 앨범 전체를 아우르는 큼지막한 콘셉트가 존재하며, 개별 트랙들에는 저마다의 정체성이 내재해있다. [Tranquility Base Hotel & Casino]는 좋은 곡들을 가진 아트 록 앨범으로도, 뚜렷한 배경을 가진 콘셉트 앨범으로도 위치할 수 있다.


 외피를 다만 달리 한 것이지, 악틱 몽키스의 창작력은 다시 한번 멋진 앨범을 내놓는 데 성공한다. 왕성한 창작, 유연한 이탈, 흥미로운 상상, 다채로운 연출이 앨범에 가득하다. 그 과감한 움직임들로 악틱 몽키스 또한 예상 불가능함만을 예상할 수 있는 창작자의 대열에 완전하게 합류한다. 근사한 실증으로 중요한 모멘텀을 만든 4인조다.

 
 -수록곡-
 1. Star treatment
 2. One point perspective
 3. American Sports
 4. Tranquility Base Hotel & Casino
 5. Golden trunks
 6. Four out of five
 7. The world's first ever monster truck front flip
 8. Science fiction
 9. She looks like fun
 10. Batphone
 11. The ultrachee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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