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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요나 Sep 17. 2019

펑크 나지 않는 삶을 원했었지

이방인으로 살면서 느낀 것들.

누구나 자신만의 약점은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한계가 무엇인지 잘 모르고 살아간다.

특히 어릴 때는 경험도 많지 않고, 다른 사람과 부딪힐 일 또한 많지 않기 때문에 제한된 경험 속 가치관으로 살아간다. 커가면서 점점 우리는 사람과, 사회에 부딪히면서 자신의 한계점을 깨닫게 되고, 좌절하기도 성장하기도 한다.

그 약점을 고쳐나가면서 잘 극복해 나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약점이 무엇인지 알지만 그걸 고치려고 그다지 노력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 자신의 약점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하지도 않고 알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중간 정도의 사람이다. 내 약점에 대해 잘 알지만, 게으르고 나태해서, 별로 고치려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


그렇다, 나는 지극히 소심하고 남의 시선을 매우 의식하고, 창피한 것을 두려워한다.

어설픈 완벽주의라서 잘했다는 소리는 듣고 싶어 하고 칭찬에 약한데,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 해야 하는 노력의 정도가 과하거나 나에게 마땅치 않다고 생각이 들면 자포자기도 빠르다.

학창 시절, 공부가 나에게 쉬운 편이라 나름 열심히 했고, 공부만큼 하는 대로, 어쩌면 내가 하는 것 이상으로  성과가 잘 나는 것은 당시에는 없었다. 나를 과대평가했고, 그러면서 미끄러지는 경험을 두어 번 결국, 하게 되었지만

그런 경험을 통해 나는 나아가는 것보다는 포기를 택했다.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해.


사람은 변하지 않는 걸까. 회사를 다니면서도 나의 이런 성향은 아주 잘 발휘되었다.

사람에 대해서도 그랬고, 일에 대해서도 그랬다. 언제나, 적당히 사람과 일에 거리를 두었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크게 주지도, 일에 너무 몰입하지도 않았다. 나의 삶의 철학은  펑크만 나지 않으면 괜찮다. 였다.

그 얘기인즉슨, 남에게 욕을 듣지 않으면 괜찮다는 의미이다. 남에게 칭찬을 들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너무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이었다. 욕을 듣지 않을 정도로 모든 관계를 설정했다.

일, 가족, 친구, 직장동료. 상대방이 아주 만족할 만큼 최선을 다하는 것은 없었고 그렇게 사는 삶에 큰 무리는 없었다. 그렇다고 나 자신에 대해 그리 만족스러웠다는 것은 아니다. 그저 그렇게 돌아가는 삶이 편했고 그래서 반복되었다.


어느 순간, 열심히 노력하지 않아도 과거의 노력으로 그저 살아갈 수 있음에 이런 삶의 태도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마음을 갉아먹고, 마음이 몸을 갉아먹고 있는 이유는 모른 채, 이렇게 사는 것이 편하다는 자기 주문을 외웠다.




그. 런. 데. 사는 곳이 편하지 않은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

소통의 불편함은 삶의 불편함을 초래했고, 편했던 내 삶은 자의와 상관없이 여기저기 펑크가 나기 시작했다.


아주 기본적인 의사소통 조차 고군분투해야 하는 어려움. 타국에 살아보지 않으면 와 닿지 않는 불편함.

불편함은 결국 ‘삶의 구멍’이기 때문에 메꾸어야 한다.

물건을 환불하고, 보험을 가입하고, 아이 학교에서 온 전화통화에서 쩔쩔매야 하는 어려움.

예방주사를 맞고, 서류를 내고, 운전면허를 받아야 하는 일상의 작은 조각이 모두 도전이다.

'도전은 개나 줘버려’라는 태도로 살던 사람에게 아주 사소한 문제조차 도전이 되어 버리는 삶.


럼에도 나는 그 불편함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지 않았다. 불편함의 최소화를 추구했지만 정면으로 부딪히지 않았고, 그렇기에 더욱 영어는 더디게 늘 수밖에 없었다. 문제가 생기지 않으면 된다 라는 태도로 살아오던 삶의 태도 또한,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년 봄이면 이곳에 온 지 3년이 된다. 3년 정도면 영어 실력이 네이티브 스피커 못지않을 것이라는 허황된 꿈은 멀어진 지 오래다. 여전히 영어는 소통의 불편함을 초래하지만 느는 건 눈치요, 일상에 펑크 나지 않을 정도의 영어로 살아가고 있다.


일상에는 구멍이 없지만, 마음의 구멍은 커져간다.


그냥 나는 배움이 좀 느린 사람인 거야, 조금씩 나아지고 있으니 잘될 거야. 런 자기 위안이 자기변명일지도 모른다. 구멍이 나지 않는 삶을 살고자 했던 내 삶의 태도의 문제. 편함을 추구했던 내 삶의 태도의 문제.


혹자는 우는 소리는 그만해.라고 이야기할지도 모르겠다. 주어진 기회라고 다 같은 기회가 아니다. 그것을 적극 활용하느냐, 아니면 피하고 숨어 버리느냐. 기회와 환경을 탓하는 것은 여전히 펑크 나지 않은 삶을 살고자 하는 태도의 연장선상이다.

원래 없던 자신감은 환경이 바뀐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감은, 남보다 잘할 수 있다는 데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다.




펑크 나지 않는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나와 같은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이다. 불편하고, 두렵고, 외롭고, 고민해야  알 수 있는 마음의 실체를 먼저 느껴 보라는 것.

상처 받지 않고. 두렵지 않고 싶어서 회피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일상과 삶에 펑크가 없을지언정, 마음은 펑크 날 정도로 얇아져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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