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서 의미를 찾는 방법 하나.
얼마 전, 전 직장의 친한 동기 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회사를 그만둔 지 2년이 지났는데도 꼬박꼬박 연락을 해주는 고마운 언니이다. 몇 달간 연락이 뜸했던 언니였던 터라, 그동안 잘 지냈냐고 하니 업무와 관련한 책을 썼다고 이야기한다. 이제 교정 단계에 있어서 시간 여유가 생겼단다. 그리고 항상 미국 생활을 동경하던 그 언니는 나에게 본인의 토플 공부와 대학원 준비에 대해 거듭 묻는다. 그래서인지 나의 안부를 물을 때마다 빠짐없이 등장하는 주제는 내가 전에 하던 업무와 관련한 대학원을 갈 준비를 하고 있는지, 앞으로 갈 생각이 있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요즘은 그와 관련한 준비를 전혀 하고 있지 않은 나에게는 참 곤란한 질문이다. 아마도 언니는 내가 예전에 하던 일을 연장하는 것에 여전히 관심 있다고 생각해서 물어보는 것일 것이다. 정보를 얻고자 하는 차원과 공감대를 형성하고자 하는 두 가지 목적에서.
언니와 10년을 같이 회사를 다녔지만 그 시절 우리의 관심사는 오로지, 회사를 언제 그만두느냐였다. 상사를 욕하고 회사를 흉보고 우리의 처지를 비관하며 지냈던 시간이 대부분이다. 어쩌면 그런 주제가 없었더라면 우리가 그렇게 절친하게 지내지 못했을 터다.
서로의 안된 처지를 공유하면서, 누가 언제 회사를 먼저 그만두나 는 이야기를 나누던 그 언니는 아직도 회사를 잘 다니고 있다. 진작에 회사는 돈을 버는 수단이고, 회사를 이용해, 그리고 자기 계발을 통해 나의 가치를 높이는 것에 주력하자는 것이 우리의 공통된 의견이었지만 나는 이쪽 분야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방황을 하는 쪽이었고, 언니는 회사를 다닐 때 야간 대학원을 추가로 다녔다. 당연히 직무와 관련된 일이었다. 언니에게 회사는 싫었을지언정 직무 자체는 잘 맞는 편이었던 것 같다. 언니는 나에게 같은 대학원을 다니자고 제안했었지만 나는 이 일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에 언니에게 이 일이 재미있느냐 물었다.
'뭐, 나야 너처럼 특별히 더 좋아하는 일이 없으니까.'라고 대답했다. 아마도 음악을 많이 좋아하는 나에게 건네주는 위로였겠지. 나는 '나라고 특별히 더 좋아하는 일이 있는 것은 아니야. 음악은 취미일 뿐인걸'이라고 생각했지만 언니는 '너처럼 하고 싶은 일이 있는 사람이 부럽다' 고 이야기했다.
그런 언니가, 이제는 책을 쓰고, 할 수만 있다면 미국으로 유학을 오겠다고 한다. 아마도 언니는 이뤄낼 것이다.
나는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과 잘할 수 있는 일을 일치시키고 싶어서 그리고 그것이 진정 무엇인지 찾아보고자 회사를 그만두었고, 언니는 회사 내에서 하고 싶은 일을 발전시켜나갔다. 나는 이상을 추구했지만 조급했고, 언니는 현실을 추구했지만 여유가 있었다.
사람은 자기 일이 잘 안 풀릴 때 상황이나 남 탓을 하고 싶어 한다. 그렇게 하면 내 맘이 편해지기 때문이다. 나는 미국 생활 중에서 슬럼프가 찾아오거나 우울한 생각이 들 때마다, 남편을 탓하고 싶어 진다. 박사 과정 논문과 페이퍼 준비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남편을 볼 때마다 청소와 빨래를 하고 있는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진다. 그럴 때는 남편 탓에 내가 이러고 있다는 불만을 쏟아 낸다. 내재적 원인이 나에게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면서도 그냥 남을 탓하는 것이다.
아마도 이번 슬럼프가 찾아온 것은 언니의 연락이 계기일 것이다. 언니는 전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내 마음속 한편에 숨겨놓고 열기를 외면하는 문이 두드려진 것이다. 그럴 때마다 마음속 고요가 요동친다.
너 지금 잘 살고 있니?라는 질문을 나에게 던지는 기회가 된다. 분명 내가 잘 사는지 모르겠어, 라는 정체성 불분명에 허우적 대니까 그런 동요가 오는 것이다.
그래서 내 슬럼프를 직시했다.
겉으로 드러나는 성공, 결과만을 중시하는 가치관을 좀 내려놓고, 상황을 여유롭게 바라보려 했다.
남과 비교해서 너 지금 잘 살고 있나?라는 질문이 아닌
과거의 나와 비교해서 너 지금 잘 살고 있니?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보았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냐고 누군가 물어본다면 아무런 망설임 없이 '돌아가지 않겠다'라고 대답할 나이다.
같은 처지에 있던 언니가 한걸음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에 조급함과 부러움을 느낄 것이 아니라
현재 내가 어떤 형태의 노력을 하고 있는지를 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결과만 놓고 이야기하자면 남에게 인정받지 못할, 내놓을 수 없는 결과이지만
과정에서 내가 이룬 것들, 가치관의 변화, 새로운 취미, 생활의 안정감 등이 나에게 주어졌으니까
스스로에게는 만족이다.
인생을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 사는 것은 아니니까,
내 인생은 내가 인정하면 된다.
다만, 결과를 이루어 내는 과정에서 방법이 잘못된 것이 있다면 수정해 나가야 할 것이다.
생각의 구체성을 강화하고 시간을 좀 더 효과적으로 쓸 수 있는 쪽에 집중해 나가는 것이 맞다.
나의 쓸데없는 잡생각들이 더 이상 쓸데없지 만은 않은 텍스트로 변신하는,
'글 쓰기'가 나의 일상 중 하나가 된 것도 새로운 삶에서 추가된 행복이다.
과거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 지금 현재가 그보다는 행복해.
결과만 보고 판단하는 다른 이들은 나를 인정하지 않더라도 나는 나 자신을 인정해 주자.
나에게 주어진 이 시간과 여유가 얼마나 큰 축복인지 잘 아니까.
2019. 5월
방황하고 있는 내가 나에게 보내는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