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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요나 Sep 25. 2019

반딧불이의 묘, 그리고 나의 일본인 친구

그녀의 생각을 알고 싶다. 하지만..

나는 미국에 와서 사귄 일본인 친구가 한 명 있다.

그녀는 일본에서 파병 군인이었던 미국인 남편과 결혼하였고 남편이 퇴직을 하자 미국에 정착하였다.

그녀와 나는 같은 동네에 살고 또 아이들끼리 워낙 친하다 보니 우리는 아이를 픽업하고 드롭하며 거의 매일 이야기를 나눈다.

비슷한 시기에 아시아 고국에서 먼 땅 미국으로 건너온 우리는, 언어가 장벽인 이방인의 처지를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서로 잘 이해하는 사이이다.

또한, 그녀는 한국에 대해 호의적인 사람이다. 서울로 몇 번 여행도 왔었고 한류가 유행하던 시절에 드라마를 정말 많이 보았다고 이야기했다.

나 또한 일본이 과거 우리에게 했던 악행과는 별개로, 일본의 음식을 좋아하고 지브리 애니메이션, 그리고 몇몇 일본 문화에 대해서 호감이어서 우리는 금세 친해질 수 있었다.


그런데, 최근 한일 관계가 악화되면서 왠지 모르게 내 맘이 불편해졌다.

한일 관계가 하루 이틀 문제도 아닌데, 그녀가 가지고 있는 한일 관계에 관한 생각은 어떤지 궁금하기도,

그리고 조금은 그녀의 생각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아마, 그녀는 전혀 짐작하지 못할, 나 혼자 가지고 있는 편견일 수도 있겠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그녀의 역사관에 대한 생각을 조금은 엿볼 수 있었던...




나의 학창 시절은, 일본 음악과 일본 영화를 어둠의 경로?를 통해서만 접할 수 있었던 세대이다.

그때는 법적으로 일본의 문화수입을 금지하던 시절이기 때문에, X-japan, Smap, Amuro namie와 같은 유명 일본 가수들의

음반을 정식 음반가게에서 살 수 없었다.  

지브리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이나 이와이 슌지 감독의 러브레터와 같은 영화조차도 국내 상영이 금지되었었다.

그녀에게 한국이 예전에 일본 음악과 영화의 수입을 국가에서 금지했었다고 이야기하니 그랬었냐며, 잘 몰랐다고 했다.


내가 대학생 때였나, 일본 문화에 대한 금지령이 풀리면서 지브리 영화를 제한 없이 볼 수 있게 되었고, 나는 미야자키 하야오와 영화음악 감독 히사이시 조의 팬이 되었다.

그런데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녀도 지브리 영화를 대부분 DVD로 소장할 만큼 팬이었고 (일본인 모두가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일본인의 추천을 받아 지브리 영화를 보면 참 좋겠다 싶어서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는 토토로와 키키를 좋아한다고 이야기하며 나에게 ‘반딧불의 묘’라는 영화를 보았냐 물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는 아니지만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만든, 본인의 최애 영화 중 하나라고 했다. 스토리는 2차 세계 대전 때 고아가 된 두 남매에 대한 이야기인데 너무 슬퍼서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다며, 아마 나도 좋아할 것이라고 했다.


당연히 나는 그 영화를 찾아서 보았다. 보신 분들도 아마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할지 짐작하실지 모르겠다. 그녀의 말대로 이 영화는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웰메이드 영화였다. 만화영화지만 매우 현실적인 묘사와 전반적인 무거운 분위기. 러닝타임 내내 눈을  수 없었고, 첫 화면에서 제시한 비극적인 결말은 예상하고 있었는데도 다시 한번 먹먹해졌다.

그러나, 이것을 일본인의 역사 왜곡으로 봐야 할지, 그저 한국인인 우리와 다른 시각이라고 봐야 할지, 불편하고 찝찝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이 영화를 통해 일본의 일반인들의 역사관과 우리가 배운 역사관의 괴리가 크다는 사실이 새삼 와닿았달까.

이 영화를 본 한국사람이라면 누구나 들었을 생각일지도 모른다.그래서인지 항상 논란의 중심이 된 영화이고 2014년이 되서야 국내 개봉이 되었다지.


80년대에 만들어진 영화 ‘ 반딧불의 묘’. 그녀의 말에 의하면, TV에서도 그 영화가 방영된 적도 많았다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그런 영화를 계속 보면서 자랐다면

자신들의 나라가 일으킨 전쟁이 다른 나라에 준 상처보다

일반 국민들의 시각에서 자신들이 전쟁으로 인해 어떤 희생을 치렀는지에 대해 더 세뇌되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한국인인 나에게도 정말 순수하게 (어쩌면 아무 생각 없이)

‘영화’ 그 자체로서 나에게 소개한 것이다.

내가 일본 문화에 대해 거부감이 없고 그 친구를 좋아할지라도 일본이 우리에게 했던 악행은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을 그녀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기에, 그 영화를 추천했으리라 생각한다.


그 이후로 난 그녀에게, 한국과 일본의 미묘한 관계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는다.


반일, 반한 감정이 고조된 현재는 그녀에게 더 이상 ’ 유니클로‘ 옷에 대한 칭찬을 하지 않고 일본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뉴스에서 봤던 많은 기사들 중 민감할 수 있는 사안들은 모두 제외하고 이야기한다.

그녀에게 ‘반딧불의 묘’의 이면과 실상을 알려주고 우리 영화 ‘봉오동 전투’를 한번 봐 보라고 말해주고 싶고

일본의 방사능 폐수 방출에 대한 그녀의 생각을 듣고 싶기도 하지만  서로 마음이 불편할 만한 이야기를 더 이상은 화제로 꺼내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저, 그렇게 교육받으며, 세뇌되며 자랐고

자신들의 나라가 과거 다른 나라에 무엇을 잘못했는지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순진한 일반 국민일 뿐인 걸까.

작금의 이 상황들이, 갈등의 고조를 보고 있자니 착잡하다.

그들은 교육을 잘못 받은 희생양들일까. 아니면, 본인들이 충분히 벌을 받았다고 잘못을 합리화하는 것일까.


아니면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Common sense 적 역사 의식이란 없는 걸까.

어쩌면 우리 모두가, 어릴 때부터 형성된 ‘편견 섞인 가치관’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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