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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요나 Oct 07. 2019

홈메이드 호떡, 그리고 만들어 내는 삶.

자급자족 라이프를 살아갑니다.

호떡이 너무 먹고 싶었다. 주르륵 뜨겁게 흘러내리는 설탕물과 기름으로 범벅된 밀가루의 조합, 맛이 없으면 이상한 조합이다. 한국에 있을 때 특히 어른이 되어서는 거의 사 먹지도 않았던 그 간식이, 여기 타국에 살다 보니 어릴 적 엄마와 길을 걷다 먹던 포장마차 호떡추억을 불러낸다.


처음 호떡을 떠올리게 된 계기는 사실, 지인의 집에 갔다가 맛보게 '호떡' 덕분이다. 외국에 살다 보면 글루텐 느낌이 가득한 끈적한 떡 종류를 먹을 기회가 많지 않다. 어쩌다 인절미와 찹쌀떡이 간절하게 생각날 때는 요리에 꽝인 나도 홈 베이커가 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지만, 이상하게도 호떡만큼은 그다지 생각나지 않았던 디저트라 한 번도 만들어 보려 시도한 적이 없었다.


지인의 집에서 먹었던 찰호떡 믹스가 이렇게까지 간절하게 호떡을 원하게 될 줄이야.

다음 날부터 ‘한국의 어릴 적 그 맛’이 계속 생각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바로 이것이 말로만 듣던 '음식 향수병'가 보다.


그래서 이번엔 호떡 만들기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그런데, 호떡 믹스를 사서 만들면 똑같은 맛을 즐길 수 있고 간단할 일을, 무슨 객기인지 셀프 반죽으로 만들어 보고 싶었다. 레시피들을 찾아보니 찹쌀가루와 밀가루, 소금, 설탕, 이스트면 간단하게 만들 수 있었다. 렇게 두 번의 도전 끝에 한국의 길거리에서 파는 호떡이나 찰호떡 믹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꽤 먹을 만한, 음식 향수병은 날려버릴 만한 호떡이 만들어졌다.

(아쉽게도 사진은ㅜㅜ 먹느라 정신이 안드로메다에..)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것. 이것은 사실 매우 변화한 나의 모습이다. 한국에 있을 때는 외식과 배달음식 그리고 저렴하게 제공되는 여러 가지 편리한 서비스들에 익숙해져 있어서인지 내 손으로 해야 되는 것들이 별로 없었다. 굳이 그것에 대해 알 필요도 없고, 알려고 들지도 않았다. 아쉬울 것없는 삶이었다. 필요하면 돈을 내면 되었고, 내가 돈만 벌면 주변의 모든 것이 다 해결되었다.

음식을 사 먹고, 세탁을 맡기고, 의식주에 필요한 각종 서비스는 돈만 있으면 다 되었다.


"돈만 있으면 한국이 최고로 살기 좋지."

귀에 박히도록 들어본 말이다.


그런데, 여기 와서 보니 이곳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은 우리네랑 달랐다. 간단하게 차를 고치는 일이라던지, 핸드폰컴퓨터 수리와 같은 것들까지 유튜브를 찾아서 해내는 사람들이다.

물론 여기라고 그런 서비스가 없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그런 서비스가 한국보다 더 비싸기도 하거니와 스스로  문제 해결하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좀 더 있는 것 같다. 여기 와서 느끼는 문화적 차이 중 하나다. 금 나는 한국에서 살던 라이프스타일과 확연히 다르게 살고 있고 환경까지 바뀌어서인지, 그 차이가 더 극명하게 느껴다.


이 마흔에 할 자랑은 아니지만 곰손이었던 내가 이제 대부분의 것들을 내 손으로 곧잘 해낸다. 요리베이킹뿐만이 아니다. 앞머리 정도는 혼자 잘 자르고, 긴 머리 레이어드 컷도 스스로 한다. 염색은 당연히 남에게 맡길 수 없다. 2-3달에 한 번씩은 펌과 염색을 하던 나에게는 아주 큰 비용의 절약이다. 물론 미용실표가 예쁘긴 하겠지 셀프 컷도 럭저럭 봐줄 만하다. 아니 솜씨 좋다는 칭찬도 가끔 듣는다. 


처음 시작은 그저 생존이었다.
살기 위해 요리하고,
살기 위해 제 머리를 깎았다.


그런데 이렇게 살다 보니 외식비로 한 달에 백만 원은 너끈히 들고, 한 번에 30만 원의 파마 비용을 지불하던 예전 나의 삶에 비해 지금의 삶의 질이 많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파리바*트'가 없고 '맛있는 감자탕 맛집' 이 없고 '머리 잘하는 브랜드 미용실'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시작한 '내손으로 스스로 하기'가 절약이라는 습관 그리고 손으로 해내는 것에 대한 듯함까지 선사했다.


만약 다시 경제활동을 시작한다면 편리와 효율을 중시하던 나의 예전 모습으로  돌아가야 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살더라도 나 선택권이 있다. 호떡을 만들 줄 알고, 셀프 커트로 어떻게 내 모습을 단장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아주 작은 것이라도 무언가를 시도해 본 삶과 그런 것을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생각조차 안 해본 삶은 완전히 다르다.



호떡을 만들어 본 이후로 찹쌀 꽈배기를 도전해 보았는데 이건 호떡보다 더 쉽다. 다음엔 단팥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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