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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요나 Oct 06. 2019

글쓰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지극히 사적인 '글쓰기'에 대한 소고- 기승전 브런치 예찬


마지막 글을 발행한 지 거의 2주가 되어간다. 일주일에 1번씩은 꾸준히 써봐야겠다 고 다짐했는데 기본기가 없는 나에겐 쉽지 않은 일이다. 벌써 밑천이 바닥난 건가. '작가의 서랍'에 있는 엉망진창인 습작들을 읽어 보다가 어설프게 시작한 나의 성급함을 자책 중이다.


이것은 아마도 내가 이제는 '글쓰기에 대한 욕심'이 생겨서일 것이다. 원래 뭣도 모르고 아무 생각 없을 때가 더 잘는 법이다. 처음 골프를 배울 때처럼, 골프채를 잡고 처음 공이 딱 맞을 때는, 내가 천재인가 싶어 자뻑에 빠지는데 이때부터 컨트롤을 잘해야 한다. 잘하려고 제대로 시작을 하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실수가 잦아지는 딱 그 “ 쌩초보자 “ 단계. 그 단계를 못 넘어서 아직 필드에 못 나가는 나이다.


나는 말 잘하는 사람, 글 잘 쓰는 사람이 좋다. 부럽다. 존경한다. 한마디로, ‘워너비’이다.


그런데 참으로!! 아쉽게도...

나는 말 잘하는 재주는 없다. 진작에 포기한 분야이다. 전 직장에서 강의를 할 일이 많았었는데, 할 때마다 나 자신이 그렇게 싫을 수 없었다. 강의 도중에 문득문득 '내가 지금 무슨 말을 지껄이고 있는 거지?'라고 생각했다. 참 하기가 싫었는데 참 많이도 했다. 내 앞에서 한 시간씩 듣느라 고생했을 고객분들과 직원분들께 죄송하다. 나는 왜 말하는 것에 소질이 없을까? 좌절하고 고민했던 시간들이 스쳐 지나간다. 말을 맛깔나게, 이해하기 쉽게 잘하지 못한다는 건 머릿속의 지식들을 ‘잘 엮어내는 재주’가 없다는 의미이거나, 아니면 머릿속에 전달할 지식이 별로 없는 것이 아닐까. 아주 객관적으로 자기비판적 시각으로 생각해보면 나는 후자에 가까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식뿐만이 아니다. 말 잘하려면 순발력, 논리력 그리고 배짱 두둑한 성격은 필수이다. 주변에 보면 재치 있고 임기응변에 강한 사람이 말도 잘하지 않나?  머릿속에 있는 지식과 생각이 방대하고 다양해야 하는 것은 물론, 그것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논리력도 어야 한다. 한마디로, 머리가 좋아야 하는 거다. 또한, 소심하고 수줍음 많은 성격도 한몫한다. 소수의 무리에서는 곧잘 말을 잘하는 사람도, 다수의 앞에서는 말더듬이가 되는 경우를 우린 자주 목격한다. 새가슴이어서 두려운 감정을 잘 컨트롤하지 못한다. 배짱과 여유가 있는(감정을 잘 컨트롤하는) 성격일수록, 설사 논리가 부족해도 말을 잘하는 것처럼 포장할 수 있다. 나는 이런 성격과는 거리가 있는 사람이다. 포커페이스로 살아보는 것이 평생 바람이었지만, 아마도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안 되겠지;)


반면, 글은 순발력을 요하지 않는다. 상대방을 내 생각의 속도대로 따라게 만든다. 그래서 글은 화자의 이야기 방식에 독자가 일방적으로 맞춰야 하는, 쌍방이 아닌 일방 커뮤니케이션이다. 각자 다른 생각의 속도가 글쓴이의 생각의 속도에 맞춰진다. 내 얘기를 글로 보는 사람은, 내 생각의 흐름대로, 나와 같은 속도로, 나와 함께 있는 셈이다. 또한, 글은 말하는 이의 생각의 흐름을 따라가기가 한결 수월하다. 약 글이 이해가 안 되면 다시 한번 읽어볼 수 있다. 정보전달성 글이 아니라면 그 사람이 글에 숨겨놓은 의도, 그리고 상황을 상상하면서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말은 상대방이 내 생각의 흐름을 정확하게 이해하며 따라가기가 꽤 어렵다. 듣는 사람이 잠시 딴생각을 하면 뱉어진 말은 허공으로 흩어져 버린다. 또, 내 얘기를 말로 듣는 사람은,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앞으로 하려는 이야기의 선입견을 가질 수 있다. 때로는 그 생각들이 쌍방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말실수를 하거나, 말의 방향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서 결국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다 전달하지도 못하고 끝나기도 한다.


글은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좀 더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전달할 수 있다.

글은 생각을 다듬고 조직화할 시간적 여유가 많고 촉각을 다툴 일도 없다. 처음 글이 만약 맘에 들지 않는다면 다듬을 뿐 아니라, 심지어 그런 절차를 통해 생각 자체가 수정되기도 한다. 글을 쓰면서 자기 성찰을 하고 돌아볼 계기를 가지면서 생각의 깊이는 더욱 깊어진다. 면, 말을 할 때는 머릿속, 마음속에서 그런 프로세스가 잘 작동되지 않다.  





이렇게 구구절절한 사유로 나는 말 잘하는 워너비보다는 '글쓰기'를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미숙한 나에게 작가라는 이름을 수여해 주신 '브런치 느님' 좋다. 기승전 브런치 찬양이다.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나의 진짜 모습에 좀 더 솔직하게 다가갔다. 페이스북을 하고는 있지만 심하게 가공된 ‘잘 나온 나의 모습들’이 찍힌 사진이나 나의 가벼운 관심사 위주로만 포스팅을 한다. 행복한 순간을 예쁘게 포장해서 사람들에게 알렸다.  페이스북을 전체 공개가 아닌 친구 공개로 운영하는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공간에 내 생각들을 올리는 것이 가끔 부담되었다. 내 생각을 온전히 표현한 글들을 나를 알고 있는 주변인들이 알게 되는 것이 두렵기도 했다. 평소에 나에 대해 원래 가지고 있던 각자의 편견을 갖고 나의 글을 바라볼 것 같아서다.


그런데, 남들이 내 생각을 읽는 것을 꺼려하는, 프라이버시를 꽤 중시한다고 생각했던(그래서 아닌가 싶기도 한)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쓴다.

브런치는 작가나 독자의 입장에서는 매우 공공성이 강한, 진입장벽이 전혀 없는 플랫폼이다. 페이스북은 내 글을 보는 사람을 친구로 설정할 수 있지만 브런치 작가가 된 이상 내가 발행한 글은 누구나 볼 수 있다.

이런 공공성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글을 쓰는 사람 입장에서는 '나를 고백하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드는 플랫폼이다. 일기처럼 써내려 가다가 발행이라는 클릭 버튼 하나로 나의 글이 만천하에 공개되는데, 익명성 전혀 없는 이 흰색 화면에 글씨를 수놓고 있다 보면 복잡한 마음이 정리되고 솔직한 글일수록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내리라는 믿음이 생긴다.

브런치 글을 읽다 보면 글쓰기를 통해서 자기 자신을 힐링하고 다른 이들을 힐링하는 많은 이들을 발견한다. 보여주기 위한 글은 금방 싫증 나고 독자들도 바로 안다. 자신을 포장하고 멋있게 보이기 위해 포장한, 솔직하지 못한 글은 남들에게 읽히지 않기 마련이다. 그래서인지 브런치 글을 쓸 때는 나 자신의 밑바닥에 있는 진정한 모습이 무엇인지 한번 더 끌어내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주옥같은 표현들로 써지지는 않지만 내 인생을 돌아보게 되고 앞으로의 인생을 생각해 보게 었으니 참으로 감사할 일이다.


그래서 나는 브런치에 글을 쓴다.
지금 이 순간에도


P.S : 그래도 말 잘하는 작가가 되는 건, 모든 작가들의 워너비이지 않을까? 유시민, 김영하 작가님,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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