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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요나 Feb 13. 2020

꿈에서 깨다

마지막 글을 쓴 이후 꽤 오랜만의 브런치이다. 그동안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가끔 들긴 했지만 섣불리 나의 생각들을 텍스트로 옮길 용기가 나지 않았다. 너무 오랜만의 글에 궁금해하실 지인들을 위해 이야기하자면 그동안, 개인적으로 바빠졌다거나 크게 달라진 점은 없다.

다만, 우리 가족에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것은 당분간 미국에 더 오래 살게 될 확률이 커졌다는 것이다. 내달이면 미국에 온 지 만 3년이 되고 남편의 박사 학위 취득이 현실화되었다는 점에서 분명 축하할 일이지만 그것이 결정된 이후 지난 몇 달간 나는 마음의 혼란을 겪었다. 글을 쓰는 것을 즐기고 영어와 미국 생활에 적응하는 이 삶이 마치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재미있었던 나이었다면, 이젠 무언가. 온전한 나의 이야기로 돌아와야 하는 시기가 된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달콤한 꿈에서 이제는 깨야 하는 시기. 갑자기, 아니 갑자기라 말이 무안한 드디어 다가온 현실. 그 현실이 훅 들어오는 바람에 글을 쓰는 일조차 사치같이 느껴지는 날들이었달까.


특별하지도, 원대하지도 않은, 목표 없이 하루하루 작은 일들을 성취하며 살아왔던 지난 몇년의 시간들에 대한 정체성 혼란, 그리고 앞으로의 삶의 그레이존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에 대한 나에 대한 질문,  돌아오는 공허한 ‘메아리’. 그저 그것들을 외면하고 싶은 마음 하루하루를 바쁘게, 빠르게 스쳐 보냈다. 남편은 그레이존에서 화이트존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나는 그레이존에서 블랙존으로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준비도 능력도 없는 사람이, 대책 없이 사는 것에 대한 말로와 같은 자기 패배적 생각들이 가끔 나를 잠식하기도 했다. 미국 생활 중 처음으로 겪는 슬럼프는 아니지만, 현실의 나를 아주 날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이다. 한국에 돌아가면 그래도, 아직 할 것이 남아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미국에서의 삶을 ‘그저 즐기자’라는 낙관적(?) 삶의 태도에서, 이제 한국에 돌아가지 않는다면 나는 여기서 생존해야 한다는 매서운 현실이, 새벽의 날카로운 서리 같은 찬기운 마음속에 휘몰아쳤다.


여전히 나에게 무언가를 선언하지도, 무언가를 결정하지도 못한 불확실함 속에서 살아간다. 이런 삶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래도 자신감을 잃지 않는 것이다. 자아비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래도 자신감이 있는 사람이다. 그렇게 나를 비관하지만 나는 극복할 수 있다, 변화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자아비판조차 상처가 되는 상태에 이르게 되면 아무에게도 나의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게 된다.

그래서, 스토리텔러들은 마음이 건강한 사람들이다. 스토리를 남에게 들려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설사 트라우마와 상처가 가득한 마음일지언정, 언젠가는 그 상처가 극복될 것이라는 희망과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하다는 진리를 시리게 느낀다.

이제, 다음 글이 어떤 글이 될지 모르겠다. 글을 계속 쓰는 것이 나에게 좋은 선택인지도 잘 모르겠다. 내 삶의 그레이 존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도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이 시기 또한 지나갈 것'이라는 것이다.



Image by Gustav Deje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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