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비들이 난립하는 아비규환
전, 현, 예비, 예비의 애비까지 애비만 넷 나오는 이 영화, 제목 참 잘 지었다. 일단 왜 애비가 넷인가하면 주인공 '토일'(정수정)의 엄마가 재혼해서 전, 현 애비가 한 명씩 있고, 사고 쳐서 임신 6개월차인 자기 애의 애비에 시아버지까지가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클라이막스는 '토일'(정수정)이 찾은 전 애비가 현 애비와 함께, 갑자기 사라진 예비 애비를 찾아내고 이 자리에 시애비까지 오는 장면, 그야말로 아비규환. 아니, 애비들로 넘쳐나는 '애비규환'이다.
<애비규환>은 아주 발랄하다. 정상 가족과 가부장제를 흔드는 주제 의식은 무겁지만 비장하지 않다. "이제 5개월차라서 못 지워요!" 이렇게 당돌히 임신을 선언하는 대학생이 일단 주인공. 그러나 주조연 캐릭터 하나하나, 가끔 음악방송 뺨치는 카메라 무빙까지 통통 튄다. 영화도 덜 비장한데, 메시지도 그렇다. "망해도 괜찮다"고 말하니까. "결혼? 망하면 이혼! 불행하면 헤어지는 거지, 뭐. 그래도 살아."
토일의 엄마가 삶으로 알려줬기에 토일은 엄마 손을 잡고 결혼식장에 들어선다. 자신도 그리 살테니. 덜 비장한 영화가 들려주는 이 덜 결연한 이야기가 "군인했으면 잘 했겠다"는 말을 들을 만큼 항상 온몸에 힘이 들어가있는, 뭐든 잘 해내고 싶다는 결연한 의지로 가득 찬 나에겐 쉼이 됐다. 결혼, 임신에 비할 바는 못 돼도 직장 안팎에서 매일 내가 하는 선택들, 결국 실수로 판명난 그것들로 인해 망해도 다 살아질 거니까. 괜히 힘을 풀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