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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민희 Apr 24. 2022

➁추억이 사람을 살게 하려면

+1 짧은 글 

사람은 추억으로 살아간다고 한다. 좋았던 시절을, 순간을 떠올리며 계속 살아갈 힘을 얻는다고 한다. 그런데, 그때에 대한 그리움이 오늘의 외로움으로 바뀌어 자꾸 덮쳐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밤이 되기 직전 검푸른 하늘의 저녁, 홀로 방 안에 앉아 그리운 순간들을 되새길 때 나는 너무나 외로워서 두려워진다. 다시 잘 살아낼 수 있을까. 


그리운 추억의 대부분엔 누군가와 함께 있었다. 같이 웃고, 떠들었고 때론 울었다. 그렇게 함께인 뒤엔 괜히 용기가 났다. 자주 혼자겠지만, 이렇게 가끔이나마 돌아올 안식처가 있다면 하기 싫은 일이든, 거슬리는 말이든, 형체도 없어 더 무서운 무력감이든 툭툭 털고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홀로인 시간이 길어지고 추억만 그리는 순간이 잦아지자 겁이 많아졌다. 내내 혼자이다 아침이면 사람들이 가득한 세상에 잠깐 들어갔다 오는 느낌. 새로운 추억은 쌓이지 않았다. 그러다 물었다. 추억이 소중해 잊지 않았는데, 그래서 잃어버리지 않았는데 지금 나는 어디에 있나. 나를 잃어버린 건 아닐까? 


아주 그리운 추억은, 또 강렬한 바람은 그 어느 것도 현재엔 없어서 꿈이 된다. 영화 <남매의 여름밤>에서 아빠는 어렸을 때, 무뚝뚝한 자신의 아버지가 자신에게 걸었던 장난을 추억하다 그 기억이 이젠 "꿈같다"라고 말한다. 고모는 매일 보고 싶지만, 더 이상 볼 수 없는 엄마를 '꿈'에서 만나고 옥주는 만나곤 싶지만 애써 외면해온 엄마와 '꿈'에서 즐거운 식사를 한다. 


너무 좋았던 기억은 지나고 보면 꿈같고, 너무 원하는 건 꿈에까지 나온다. 그 무엇이든 눈 뜨고 있는 지금 여기엔 없다. 그걸 깨닫는 순간은 상투적 이게도 공허하다.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땐 "나도, 우리 가족도 저런 때가 있었지"하고 봤다. 가족들과 수박을 나눠먹던 여름밤, 오빠와 맨날 다투며 동네를 뛰어다닌 일, 선풍기와 이불이 공존하던 낮잠, 그럴 때면 거실로 들어오던 긴 해. 


어린 시절의 추억을 그리며 따뜻한 마음을 안고 영화를 봤는데, 다시 보니 이젠 꿈같았고, 아예 꿈이 된 때에 대한 아릿한 허무가 더 다가온다. 추억조차 혼자 하고 있기 때문일까. 혼자서도 충분히 괜찮다고 자부해온 나였지만, 나란 인간이 나 혼자 만들어온 건 절대 아니란 걸 온몸으로 깨닫는 요즘, 나는 이 글의 가장 첫 문장, 그 명제에 나만의 답을 내놓는다.


추억으로 살아가려면, 그 추억이 박제되지 않게 또 다른 추억이 필요하단 것. 그러려면 노트북을 열든 문 밖으로 나가든 뭐라도 해야 한다.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늙은 주인공은 묻는다. "내 삶은 어디에 있죠?" 지나간 꿈이나 간절히 바라는 꿈에나 삶은 없다. 삶은, 아침 내내 커튼을 치고 앉고 눕기를 반복하다 써낸 이 글에 있다. 안도의 숨을 내쉰다.       




: 짧은 글

몸이 경고한다. 변화가 필요한 때라고 신호를 보낸다. 언제나 그랬듯이 배가, 잔뜩 부어 서있는 것조차 불편한 채로. 재작년이었다. 계절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매일, 자주 화장실에 들어가 티셔츠를 훌쩍 들어올린 뒤 배가 얼마나 나왔는지 확인했다. 그리곤 통통 배를 치면서 뱃속에 가득찬 음식물처럼 가슴이 꽉 막혔다. 어떻게 이걸 없앨까 하면서. 그렇게 내가 몸에 집착할수록, 취업은 안 되고 권태에 빠져 몰입할 거라곤 나밖에 없던 그때에 나는 더 자주, 많이 먹고 싶어졌고 악순환은 반복됐다. 먹고, 체하고, 몸이 붓고, 확인한 뒤 강박에 시달리다 다시 먹었다. 약과 밥 사이를 오가다 결심했다. "더이상 이렇게 살 순 없어." 


그렇게 복싱 회원권을 끊었다. 샌드백을 치고, 스텝을 밟다 땀이 한껏 난 뒤엔 헬스장에 가 또 뛰었고,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집에 돌아와 씻고 바나나를 먹고 공부하다 배고파하면서 잠에 들었다. 고통은 컸지만 지나고 나니 고통보단 몸이 가벼워서, 그게 안팎으로 느껴져서 몸도 마음도 가뿐했던 기억이 크다. 몸이 나아지자 마음도 훨씬 괜찮아졌다. 우울할 땐 몸이 반응해 자주 체했고, 또 몸을 함부로 하고 싶어져 폭식까지 해댔는데 몸을 챙기자 마음도 따라 아껴졌다. 그때의 결심이 바꾸었던 날 생각하다 지금이 그때라고 다시 결심한다. 다음에 쓰는 글은 '그래서 내가 시작한 일은' 이라는 문장으로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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