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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민희 May 01. 2022

➂ 생방은 언제나 떨리네

손은 달달, 땀은 줄줄.

"조 기자, 준비됐어? 한번 해볼까?"

"리허설이에요?"

"아니."


네? 지금 리허설도 없이, 3분짜리 생방송을 한다고? 창사 최초 해외 생방송이었다. 선배들은 혹시나 기술적인 문제로 현지와 부산이 연결되지 않거나 도중에 끊길까 봐 각종 장비와 통신 예행연습을 다 마쳤다. 문제는 나였다. 시차와 시시각각 바뀌는 상황 탓에 2시간 전에 출고된 3분짜리 원고를, 프롬프터 없이 읽어내야 하는 6개월 차 신입 기자.

 

3분 내내 화면 반쪽엔 내가 계속 비칠 터였고, 출고된 기사엔 초고엔 없었던 수치와 표현이 더해있었다. '1차 접종률 98%로 세계 1위, 접종 완료율도 87%...'같은. 정보 값이 더해진 거지만 경험과 여유 따위 없던 내겐 그저 발음하기 어려운 'ㄹ'과 'ㅇ' 그리고 숫자의 습격이었다.  


있는 건 패기뿐. "일단 해보자!" 읽기 시작했다. "네, 저는 지금 두바이 엑스포 한국관 앞에 나와있는데요."

 

생방을 시작한 지 1분이 지났을 때, 다음 문장이 생각이 안 났다. 갑자기 머리가 하얬다. 30도에 육박하는 두바이의 햇볕은 내 머리 위로 그대로 들이 받혔다. 얼굴은 한껏 달아올라 땀이 줄줄 흘렀다. 급하게 휴대폰 화면을 보려는데, 햇빛에 반사된 화면이 잘 안 보였다. 손이 정말 달달 떨렸다. 내가 어디까지 읽었는지 찾을 수 없었다.


그때 생각했다. "망했다, 어떡하지?"


생방이 긴장되는 건, 되돌릴 수도 다시 할 수도 없단 점이 클 것이다. 그러므로 내게 남은 선택지는 정신줄 붙잡고 다음 문장에 집중하는 것. 그렇게 떨림을 감추려 배에 힘을 주고, 침착한 척 읽는 속도를 일부러 늦춰가며 끝냈다. "지금까지 두바이 현지에서..."


그렇게 짧은 시간, 정말 정신없이 생방을 끝내고 나면 공허하다. 내가 서있는 자리도, 곁에 선 이들도 똑같은데 생방만 끝났다. 그럼 생각한다. "아, 별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긴장했지?" 나는 이제 입사 1년이 됐고 이후 수차례 생방을 했다. 아직도 떨린다. 내 첫 해외 생방이었던 그날의 영상은 차마 다시 보지 못 했다. 


그래도 그날의 기억이 이렇게나 선명해서 경험치가 쌓인 건 분명하다. 일단 배웠다고 생각하면 실패나 실수는 아무리 민망해도 견딜만하다. 혹여나 방송 뉴스를 보다 기자가 실수하거나 긴장한 게 티가 나면 너그러이 이해해주시길. 나도 기자 준비할 땐 세상 엄격했다. 사실 오만했던 나만 이해 못 했을 수도 있겠지만.   




: 짧은 글 


[지난 글에 이어]


그래서 내가 시작한 일은, 여자축구클럽에 가입한 것이다. "7시 30분까지 오세요." 지난주 화요일은 첫 수업 날이었다. 내가 주차장에 도착한 건 7시 10분. 설렜고, 긴장됐다. 혼잣말했다. "해보지, 뭐." 새로운 경험을 내게 선물하는 날이라고 생각했다.  


훈련장에 들어갔다. 전학생처럼 눈치를 봤다. 팀 스포츠는 처음이었다. 어떤 이들과 함께 하게 될지, 무엇부터 어떻게 배우는지 전혀 몰랐다. 간단한 테스트를 봤다. 바로 초급반으로 배정됐다. 그 후 3시간은 어떻게 간 지 모르겠다. 


벽에다 공을 차보고, 공을 드리블해보고, 공이 땅에 닿이지 않게 계속 튕겨봤고, 골대에 넣어봤다. 그러다 같은 팀이 된 이들과 손을 잡고 수비를 했고, 누군가가 골을 넣으면 박수를 쳐줬으며 게임을 시작하기 전 파이팅을 외쳤다. 


땀이 났고, 웃음이 났다. 땀이 나 개운했고, 웃음이 새 나올 만큼 이 상황이 신기하면서도 즐거웠다. 오랜만이었다. 이렇게 같이, 같은 목표를 위해 땀을 흘리며 뛰어본 일이. 그래서 등록했다. 이 기분을 또 느끼고 싶어서 나는, 다시 오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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