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사람의 말은, 믿고 믿지 않는다.
'나의 사랑' 엄마가 써준 엽서의 첫 문장이었다. 엄마는 나를 자신의 사랑이라고 불렀다. 여행지로 달려오는 길, 차 안에서 듣던 노랫말에 사랑이 계속 나오자 "대체 사랑이 뭔지 이 나이가 돼도 모르겠다"던 사람이 나를 사랑으로 지칭했다.
그녀는, 내가 아는 사람 중 사랑에 가장 헌신적인 어른. 내가 바쁠까 봐 안부도 묻지 못하고, 자취하는 날 위해 매주 반찬을 싸다주며 하고 싶은 일을 말할 때면 "넌 할 수 있을 거야"라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내게 사랑은 자신보다 상대를 더 위하고 걱정하는 마음이다. 사랑을 행하면서도 사랑이 무언지 모르겠다는 엄마는 인생, 사랑과 같은 개념의 정의가 뭔지 이론이나 유려한 말솜씨를 내보일 순 없지만 삶으로 살아내는 진짜 지혜로운 이다. 나는 이런 사람의 말을 믿는다.
"너랑은 말이 안 통해." 촬영 선배 A는 조소와 분노가 뒤섞인 표정으로 말했다. 자신의 질문에 내가 적확한 대답을 신속하게 내놓지 못했다는 이유였다. A를 만난 지 3분도 채 되지 않았던 때였다. 차량에서 내릴 때부터 심기가 불편해 보이던 A의 짜증은 오디오맨을 향했다가 내게 모호한 질문과 함께 닥쳤다.
우린 어른이고, 일을 하기 위해 만났는데 왜 이럴까? 입사 후 A와 유사한 상황을 겪을 때마다 떠올랐던 생각이었다. "나쁜 사람은 아니야." A와 앞으로 어떻게 계속 일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조언을 구하자 선배 B가 말했다. 그 말은 결국 (A가 가끔 감정적일 뿐 나쁜 사람은 아니란 걸) 내가 이해하고 맞춰줘야 한단 뜻이었다.
대체 어떻게 맞춰줘야 하는지 직접 물어봤다. "어떤 방식으로 제가 소통해주길 바라세요?" 그러자 A는 이런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이 활짝 웃으며 "아깐 내가 지나쳤다"며 선선히 사과했다. 그가 사과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수그렸기 때문이고, 그렇게 그의 자존심을 지켜줬단 뜻이었다.
그는 한때 나를 불러 말했었다. "내 자존감의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란 전제 후 내가 후배로서 좀 더 사근 거려 주길 바란다는 말을 빙빙 돌렸다. 그게 함께 일하는 조직에서 '서로에게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서로에게 좋으려면, 한쪽이 불쾌감과 부당함을 모두 참아야 하는 관계라는 것. 그는 불안한 자존감 위에 선 이기적인 요구를 선배의 조언으로 포장했다. 나는 이런 사람의 말을 믿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