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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리성 김작가 Mar 21. 2024

내가 이 세상에 온 이유

‘Why’에 집중하여 본질을 파악하고 그 의미를 실천하는, 이유

장래 희망을 무던히도 챙겼던 시절이 있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도 기억나지 않는, 학교에서 작성하라고 준 종이에는 항상 이 칸이 있었다. 매우 중요한 질문인 줄 알고 나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작성한 기억이 있다. 그러고 보면, 참 많이도 바뀌었다. 소위 꽂히는 게 있으면, 바로 바꿨다. 이유는 다양했다. 멋있어 보이기도 했고 좋아 보이기도 했다. 그냥 끌리는 것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뚜렷하게 기억나는 게 몇 개 있는데, 순서가 좀 헷갈리기도 한다. 장래 희망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행동(?)했던 시절은, 초등학교 4학년~6학년으로 기억된다. 가장 기억나는 두 가지는, 과학자와 야구선수였다.      


저학년 때부터 야구와 축구를 즐겨 했다.

학교 마치면 가방을 한쪽에 집어 던지고, 해가 질 때까지 했다. 둘 다 너무 좋아했지만, 야구선수의 꿈을 품었던 건 학교에 야구부가 있었기 때문이다. 운동장 한쪽에서 야구든 축구를 하면서, 야구부 연습하는 장면을 봤다. 형들이 하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올라올 때쯤, 기회가 왔다. 학교에 야구부가 있어서인지, 매년 반 대항 야구대회를 개최했다. 4학년부터 시작했다. 4학년이 되고 처음 참가하게 되었다.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던 곳에서, 헬멧을 쓰고 배트를 휘두를 기회를 맞이한 거다. 타석에 섰을 때, 얼마나 떨리던지 그때의 느낌이 생각하는 지금도 조금 느껴진다.     


반 대항 대회를 하는 이유가 있다.

야구부원을 선발하기 위함이다. 애초에 야구부에 들어가는 사람도 있지만, 이런 대회를 통해 선수를 발굴하기도 했다. 반 대항에 참여한 사람 중 실력이 좀 된다 싶으면, 2주 정도 야구부 체험의 기회를 줬다. 한번 경험해 보고, 결정하라는 의도였다. 5학년 때로 기억된다. 합숙하는 데 너무 하고 싶었다. 부모님께 말했지만, 반대하셨다. 지금까지 돌이켜 봤을 때, 하고 싶은 것은 반대하신 건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지 않았나 싶다. 아들을 야구부에 입단시켰던 동네 아주머니들이 반대하셨다고 한다. 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는 말까지 들었다고 하셨다. 너무 하고 싶은 마음에, 새벽에 편지를 써서 올려놓고 조용히 집을 나가기도 했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결정해달라고 말이다. 결국, 반대에 부딪혀 포기하게 되었다. 포기할 때는, 희한하게 하고 싶은 마음도 사라졌다.      


과학자의 꿈도 꿨다.

이유는 모르겠다. 왜 과학자의 꿈을 꿨는지 말이다. 하지만 명확하게 기억나는 건 있다. 집 옥상에 실험실을 차렸다는 사실이다. 용돈을 받는 족족, 비커와 삼발이 알코올램프 등 과학실험에 필요한 물품을 샀다. 국기함으로 만든 나무 상자에 모래를 채워 알코올램프를 그 위에 올리고 불을 켰다. 왜 실험하는지, 목적은 없었다. 그냥 학교에서 했던 실험이나 어디서 본 걸 그냥 흉내 냈다. 한번은 암모니아가 담긴 병에 코를 댔다가 기절할 뻔하기도 했다. 머릿속까지 찌르고 올라오는 냄새 때문이었다. 방학이 되면 시골에 가서 곤충 채집을 하고, 박제한다고 알코올을 주입했던 기억도 난다. 그렇게 한창 열을 올리던 과학자의 꿈도, 어느새 거품처럼 사라졌다.     


중학생 때는, 몰두했던 꿈에 대한 기억이 없다.

체육 교사를 잠시 생각했던 적은 있었다. 그 꿈을 고등학교에 올라가서 구체적으로 꾸기 시작했다. 그때는 뭐에 꽂혔었는지 경찰을 꿈꾸기도 했다. 경찰대를 가고 싶었지만, 넘지 못할 산이었다. 그보다 낮은 산을 찾기 위해, 관련된 과를 찾아보니 몇 개가 보였다. 하지만 그때는 공부와 친분이 있지 않던 시절이라, 그마저도 가망이 없어 보였다. 고3이 돼서 입시 체육 준비를 했는데, 혹시 몰라 용인에 있는 대학, 합기도 학과에 원서를 하나 넣었다. 이곳을 졸업하면 경찰로 빠질 수도 있다고 했다. 체육 교사와 경찰이라는 두 마리 토기 중 하나는 잡을 수 있도록 준비한 거다.      


체육 교육학과와 합기도 학과 둘 다 붙었다.

운이 좋았다. 지금 생각해도 체육 교육학과는 정말 운이 좋게 붙었다. 전자의 대학이 여러모로 조건이 좋았던 관계로 선택해서 진학했다. 처음에는 학교생활에 적응이 어려웠다. 캠퍼스의 환상은커녕 고등학생 때보다 더 힘든 생활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3수 끝에 들어온 한 동기는, 몇 달 못가 자퇴를 했을 정도였다. 1학년 2학기는 거의 학교에 가지 않아, 최악의 학점을 맞고 바로 휴학했다. 1년을 쉬고 군대에 갔다. 군대 가서 진로를 결정하기 위해서였다. 학교를 열심히 잘 다니기로 다짐하고 제대했다.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열심히 공부하고 운동했다.      


졸업할 즈음, 다시 진로 선택의 고민에 들어갔다.

임용 준비를 할지, 복학하고 시작한 유아 체육을 계속할지를 말이다. 임용 시험이 쉬운 건 아니라, 고민이 됐다. 지금 하던 일을 계속하면 취업이 그냥 되니, 고민이 될 만도 했다. ‘그래! 학교 교사나 유아 체육 교사나 다 같은 교사인데 뭐!’라며 후자를 선택했다. 하지만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동경이 올라온 걸까? 3년 정도 하고 나니, 임용고시에 대한 아쉬움이 강하게 밀려왔다. 그렇게 일을 그만두고 임용고시에 응시했지만, 아쉽게(?) 떨어지고 말았다. 보통은 2~3번 도전해야 성공 가능성이 있지만, 결혼도 했고 아이 출산이 임박해서 더는 도전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그렇게 이런저런 일을 하다, 지금 하는 일을 만나 17년 넘게 하고 있다. 다행히 적성에 맞아 재미있게 했고, 3년 전부터는 새로운 분야에 진입해서 새로운 영역의 일을 배우며 경험하고 있다.      


직장 생활 이외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많은 책을 읽으면서 책을 출간하고 싶다는 꿈이 생긴 거였다. 드문드문 썼던 글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건, 2019년 말부터였다. 신부님 강론을 듣고 성서를 깊이 있게 묵상하는 방법으로 선택했다. 그렇게 글을 쓰기 시작해서, 지난 금요일 1,900일을 맞이했었다. 쓴 글로 3권의 책을 출간했고, 4, 5번째 책 초안도 완성했다. 22년 초 코칭을 만나 코칭을 배웠고 그와 관련된 글도 썼다. 아마도 4번째 책이 되지 않을까 싶다. 작년 말에는, 코치를 코칭하는 코치가 되겠다는 결심으로, 기초 과정을 교육할 수 있는 자격을 취득했다. 그리고 어제와 오늘 첫 과정을 개설해서 진행했다. 책을 출간하고 강연을 진행했고, 앞으로도 진행 예정이다. 코칭 관련 특강을 비롯한 강연도 몇 번 진행했고, 앞으로도 진행 예정이다.     


글과 코칭 그리고 강연을 중심으로, 퍼스날 브랜드를 구축하고 있다.

이 세 가지는 아마도 평생 진행하지 않을까 싶다. 세 가지는 다른 영역인 듯하지만 서로 연결돼서, 유기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하면 할수록, 더 하고 싶고 잘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온다. 나의 에너지가 올라오고 함께 하는 사람들의 에너지도 같이 올라감을 느낀다. 서로의 좋은 에너지를 주고받는다는 게 참 좋다. 좋은 달란트를 주심에 감사하며, 그 달란트를 유용하게 잘 사용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어쩌면 그것이 내가 이 세상에 온 이유가 아닐지 생각한다. 잘 쓰일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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