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다 때가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릴 적 목욕탕에서 본 기억이 나는데요. 직접적인 표현이기는 하지만, 이 안에 담기 깊은 의미도 있습니다. ‘때’라는 것은 몸에서 나오는 분비물이기도 하지만, 시기를 의미할 때도 있습니다. 목욕탕에서도 단순히 때를 밀라는 의도에서만 걸어놓진 않을 듯합니다. 언어유희를 통해 메시지를 던지면서, 부담 없이 자기 몸을 맡기기를 원하는 마음이 담겨있지 않나 싶습니다. 어디서부터 시작된 문장인지는 모르지만, 한동안 이 문장을 이용해서 적절한 시기가 있다는 메시지를 내는 사람이 더러 있었습니다.
어른들이 주로 메시지를 낼 때는, 공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공부도 다 때가 있으니 할 수 있을 때 열심히 하라는 말씀인 거죠. 하지만 그게 귀에 잘 들어오나요? 머리로는 이해되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습니다. 공부보다 더 중요한 게 눈에 들어옵니다. 지금 관심이 가는 것들입니다. 살아보니 중고등학생 때 하는 공부도 물론 중요하지만, 진짜 공부는 대학에 들어가서 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 기본적으로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공부는 해야겠지만 말이죠.
귀에는 들어오지만, 가슴까지 내려가지 않습니다.
귀로 듣고 머리로는 ‘아! 그렇구나!’ 합니다. 하지만 가슴까지 내려가진 않습니다. 가슴까지 내려가야, 행동으로 이어지는데 말이죠.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아직 때가 되지 않아서라고 생각합니다. 받아들일 때가 아닌 거죠. 간절함이나 절대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겁니다. 돌아보면 그런 경우가 종종 떠오릅니다. 어른들이 책을 읽으라고 그렇게 이야기해도 듣지 않았는데요. 어느새 찾아서 책을 읽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람은 다 때가 있습니다.
중요한 건, 때가 그냥 오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귀를 열고 마음을 열지 않으면 때를 만나지 못합니다. 항상 지나가던 길이었는데,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때가 있죠? 새로 생긴 것일 수도 있지만, 대체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 흘려 봤던 것일 가능성이 큽니다. 시 중에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내려올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꽃” 정확한 문장인지는 모르겠지만, 의미는 같습니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꽃을 내려갈 때 봤다고요.
올라갈 때는 정상만 향해서 올라가느라 주변에 핀 꽃이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정상을 찍고 천천히 내려올 때라야 경치가 보입니다. 마음의 여유가 생기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보지 못한 꽃이 눈에 들어오는 겁니다. 산과 꽃으로 표현되긴 했지만, 삶에 주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오르고자 하는 정상에만 마음이 꽂혀서 내달리지 말고, 마음에 여유를 갖고 주변도 둘러보라는 거죠. 그래야 좋은 메시지를 얻을 수 있습니다.
최근 한 달 사이, 좋은 메시지를 발견합니다.
처음 들은 메시지는 아닙니다. 오랫동안 들어온 메시지인데요. 이제야 마음에 담고 실천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가족 기도입니다. 33일 봉헌기도를 하면서 가족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때는, 출근하기 전 가족 모두가 모여 기도했는데요. 아이들이 크면서 흐지부지됐었습니다. 해야지 했는데 잘 안된 거죠. 때마침 33일 봉헌기도를 알게 됐고 아이들에게 제안했는데요. 흔쾌히 받아들였습니다. 33일 기도가 끝났지만, 지금도 매일 저녁에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건강에 관한 습관도 들이고 있습니다.
좋은 것을 먹고 좋은 활동을 하게 된 거죠. 알고는 있었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거리 두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자주 외식하면서 반주를 즐겨 마시곤 했죠. 올해 건강검진을 통해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아내의 건강도 급격하게 안 좋아져서 건강하기 위한 습관을 들이고 있습니다. 아직 확연한 결과가 나오진 않았지만 조금씩 좋아지고 있음을 느끼고 있습니다. 중요한 건, 악습과 거리 두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원하는 때가 있나요? 귀를 열고 마음을 열어 받아들이고 노력해야 합니다. 때는 그냥 오지 않습니다. 깨어 들으려 하는 사람에게 보이고 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