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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리성 김작가 Dec 17. 2024

주변 상황이나 사람이, 내가 받는 결과를 결정할까요?

역사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역사를 모르면 미래가 없다는 말도 하는데요.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역사는 인간이 그리는 무늬이기 때문입니다. 최진석 교수님의 책, <인간이 그리는 무늬>에서 언급합니다. 인간이 그려온 무늬를 해석할 줄 알아야, 인간이 그려나갈 무늬를 예상할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공감됩니다. 패턴이라고도 하지요. 오랜 시간 반복된 생활에는 패턴이 존재합니다. 그 패턴을 잘 읽고 다음을 대비하는 사람을 사회에서는, 경력자 혹은 전문가라고 말합니다. 실수를 똑같이 반복하고 성과에서 배움 없이, 언제나 처음처럼 일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 조직은 더는 성장하기 어렵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도태될 가능성이 큽니다.     


인문(人文)이라는, 한자의 풀이도 그렇습니다.

사람 ‘인’에 무늬 ‘문’입니다. 인문학이 두각을 나타낸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기억으로는, 스티브 잡스의 영향에 의해 소용돌이치기 시작했습니다. 매킨토시의 글씨체를 고안하는데, 자퇴하고 들었던 ‘서체 수업’이 큰 영향을 주었다고 말합니다. 소크라테스와 점심을 먹을 수 있다면, 애플의 모든 기술을 넘겨주어도 아깝지 않다고 한 말은 매우 유명합니다. 세기의 철학자와의 대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나타내는 말입니다. 이외에도 스티브 잡스는 인문학에 매우 심취한 것으로 유명한데요. IT 기술과 인문학은 이과와 문과처럼 정반대에 위치합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의 말에 따르면, IT 기술을 인문학이 감싸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인문학을 토대로 한, IT야말로 진정한 기술이라는 것이지요. 사람을 위한 것이니까요. 그래서인지 IT 분야에서도 인문학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더 찾는 것으로 보입니다. 강연을 보면 그렇습니다.     


역사도 인문학의 그늘에 포함되었습니다.

최근에는 사회적 이슈로 역사에 관한 관심이 더 집중되고 있습니다. 과거를 돌이켜보면서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서입니다. 먼 과거가 아니라 근현대사가 주목되고 있다는 점이, 기존과는 좀 다른 느낌을 줍니다. 오래 지나지 않은 잘못이 자행됐기 때문인데요. 참 안타깝습니다. 오죽했으면 중고등학생들까지 거리로 나오게 됐을까요? 왜 어른들이 잘못 선택해서 생긴 일을 자신들은 그저 받기만 해야 하냐며, 자기들한테도 선거권을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항변하는 한 학생의 말에 어떻게 답변해야 할까요?    

 

잘못된 역사를 들추는 건 더는 반복하지 말자는 의미입니다.

과거의 잘못을 들쑤시고 현재의 잘못이 얼마나 더 나쁘고, 잘못됐는지 시시비비를 가리자는 게 아닙니다. 따라서 초점을 잘 맞춰야 합니다. 누구의 잘잘못인지 따지는 것에 초점을 맞춰서는 안 됩니다. 더 안 좋은 상황으로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야 합니다.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 선택해야 합니다. 다시는 이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기 위해 어떤 조처를 해야 할지 마련해야 합니다. 이것이 역사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선물을 잘 활용하는 것이라 여겨집니다.     


퇴비를 아스팔트에 뿌리면 뭐가 될까요?

오염물이 됩니다. 쓰레기가 되어 사람들의 미간을 찌푸리게 만듭니다. 피하게 만들고 쳐다보기도 싫게 만듭니다. 하지만 퇴비를 밭에 뿌리면 어떻게 될까요? 밭에 심어진 채소들이 잘 자라도록 거름이 됩니다. 같은 퇴비라도 어디에 뿌리느냐에 따라 극명하게 갈립니다.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염물이라 쳐다보지도 않을 것인지, 미래의 거름으로 사용할 것인지 선택할 수 있습니다.      


잘못했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질책하기도 하고 포용하기도 할 사람 앞에 다가설 때, 전자의 생각과 후자의 생각인 사람의 모습이 달라집니다. 전자의 사람은 안절부절못합니다. 질책이 두려워 나가서기도 어렵습니다. 최대한 변명거리를 찾아, 솔직하게 말하기보다 포장하기에 급급합니다. 하지만 후자의 사람은 어떨까요? 자비를 베풀어 줄 것이라 믿기에 앞으로 나아갑니다. 솔직히 자기 잘못을 이야기하고 반성합니다.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을 다짐합니다. 대체로, 자기가 생각한 대로 상황은 벌어집니다. 왜 그럴까요?     


질책하는 사람이라 그럴까요?

자비한 사람이라 그럴까요? 그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더 큰 이유가 숨어있습니다. 전자의 사람과 후자의 사람 행동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어떤가요? 그럴만한 행동을 하지 않나요? 변명하면서 어떻게든 빠져나가려는 사람과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면서 반성하고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 이 두 사람이 앞에 있다면 어떤 조처를 내리고 싶은가요? 사람의 생각은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판단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도 중요하겠지만, 그 앞에 선 사람의 태도가 더 중요합니다. 어떤 선택과 행동을 하든, 결국 자신의 선택과 행동으로 결과가 달라질 수 있음을 잘 기억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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