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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서김 Dec 31. 2020

하늘 위의 해피 뉴 이어

 비행기 조종석에 앉은   인생에서 달력  특별한 날들이 전부 사라졌다. 새해, 설날, 추석, 크리스마스 . 조종사에게 빨간 날은, 쉬는 날이 아닌 바쁜 날이다. 어김없이 비행 스케줄이 있다. 의미 있는 날에 의미 없이 일해야 하는 상황을 맞닥뜨리면, 특별한 날이 서글프게 소중하다.  가진 것에 대한 아쉬움이다. 조종사뿐 아니라 관제사, 객실 승무원 그리고   위의 스케줄 근무하는 사람들 대부분 같은 아쉬움을 마음에 품고 있지 않을까.

 그래서일까. 특별한 날이 되면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사람들 사이의 유대는  단단해진다. 평소 조종사와 관제사 관제를 주고받을  무뚝뚝하다. 하지만 특별한 날이 되면 서로 따뜻한 말을 전한다. 모두가 사용하는 무선 통신이라 짧은 표현밖에  전하지만  짧은 말속에 ‘이런  일하느라 힘들죠? 우리 같이 힘내요.’라는 속마음을 주고받고 서로를 다독인다. 말의 힘은 대단하다. 지상의 관제사가 전하는 따뜻한 말은 해발 10 km 상공에서 날고 있는 비행기  조종사가 있는 곳까지 온기를 전달한다.

 2020 1 1일은 유독 따뜻했다.

 2020년의  태양은 집이 아닌 비행기에서 보았다. 그때 스케줄은 2019 12 29일에서 2020 1 1일까지, 2 3 여정이었다. 29 오후에 출근해 데드헤드* 김해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김해 시내의  호텔에서 하루 묵고, 다음날인 30 밤에 김해공항을 떠나 베트남 하노이 공항에 도착했다. 연말인데 이틀 연속 홀로 타지에서 잤다. 김해에서 하루, 하노이에서 하루. 신입 부기장이기에 아직 익숙지 않은 타지의 쓸쓸함이었다. 슬프지 않으려면 빨리 몸에 새겨야 하는 감정이다.

 12 31  11 30, 하노이에서 인천공항을 향해 이륙했다. 언제 1 1일로 바뀌었는지는  모르겠다. 베트남이 우리나라보다 2시간 빠르니 우리가 이륙했을  이미 한국은 타종을 끝냈을 것이다. 기장님과 나를 비롯해 우리 비행기에 탑승한 승객, 객실 승무원들은 함께 새해의 떠오르는 아침을 향해 비행했다.

 대한민국 공역에 들어선  한국시간으로 1 1 7시쯤이었다. 우리 비행기가 일본 공역에서 한국 공역으로 넘어가면서 일본 관제사는 우리를 한국 관제사에게 이양했다. (베트남에서 한국에 오려면 베트남공역 - 중국 공역 - 홍콩 공역 - 대만 공역 - 일본 공역을 거쳐 한국 공역으로 온다.) 나는 반가운 마음으로 한국 관제사를 불렀다.

“Happy New Year, Incheon Control, xx Air, maintain FL340”
(해피  이어, 인천 컨트롤, xx 항공사 비행기입니다. 현재 3 4 피트로 비행하고 있습니다.”)

  특별한 날이 아니더라도 피곤한 외국 비행에서 돌아와 한국인 관제사와 통신하면 집에   같이 기쁘다. 같은 영어라도 한국인 영어가  잘 들릴 뿐 아니라 비행하다 무슨 일이 일어나면 한국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에 안전하게 느껴진다. 고된 일을 마치고 집에 도착했을 때 느끼는 편안함과 안전함이다.

곧바로 답이 왔다.

“XX Air, Incheon Control, maintain FL340, 새해  많이 받으세요~.”
(Xx항공, 인천 컨트롤입니다. 3 4 피트를 유지하세요. 새해  많이 받으세요.~)
 
 헤드셋 너머로 한국말이 들렸다. ‘새해  많이 받으세요’. 보통의 경우에 새해 첫인사는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과  것이다. 나에게 새해  복을 가져다준 이는 인천공항 어딘가에서 밤샘 업무로 쏟아지는 졸음을 쫓으며 레이더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을 익명의 관제사였다.

 1 1 처음 듣는 한국말로 이보다 값진 말이 있을까. 다른 비행기가 관제하는  듣고 있다 보니  관제구역을 담당하는 관제사는 자신을 부르는 모든 비행기에게 복을 주었다. 떠돌아다니는 탕아들에게 아낌없이 사랑을 주는 부모님 같았다. 조종사들도  보답으로 관제사에게 ‘새해  많이 받으십시오혹은 ‘해피  이어라고 기분 좋은 마음을 전달했다. 어떤 사람들은 너무 좋았는지 앞에 해피 뉴 이어를 붙이고 뒤에 새해  많이 받으세요라고  번이나 관제사에게 덕담을 보냈다.

  공간에 있는 사람들 전부 새해 아침을 타지에서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서로를 위로하고 다독였다. 따뜻한   기장님과 나는 정신을 차리고 기운을  아침 8시쯤 인천공항에 무사히 내렸다. 같이  승객들은 아무 문제없이 비행기에서  쉬고 그들의 보금자리로 돌아갔다. 나 역시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잠에서   비몽사몽인 사랑하는 이에게 다가가 내가 받은 온기를 그대로 전했다.

새해  많이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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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드헤드 : 승무원이 본인의 근무지역으로 이동하기 위해 객실에 앉아 가는 비행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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