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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서김 Apr 22. 2021

비행 그거 비행기가 알아서 하는 거 아니야?

 아내가 대학생 시절 친구인 K와 점심을 먹고 왔다. 둘이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내가 궁금해할까 봐, 아내는 침대에서 쉬고 있는 내 옆에 다가와 둘이 한 이야기를 복기했다. K와 만남이 대체적으로 재밌었지만 내 이야기를 하면서 기분이 한 번 안 좋았다고 했다. 아내와 K는 내 이야기를 했는데, K가 내 직업을 이야기하면서 ‘비행 그거 비행기가 알아서 하는 거 아니야? 조종사가 하는 게 있어?’ 이런 식으로 아내에게 물었다고 한다. 그래서 아내는 ‘적어도 이착륙에서 자동비행은 아직 위험해. 조종사가 해~’라고 말했다고 했다. (장하다 내 아내!) 그러자 K가 ‘그럼 그거 빼고 나머지는 비행기가 알아서 하는 거 맞네’라고 퉁명스럽게 말했다고 했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영화에서 전업주부인 정유미는 가사생활을 하다 손목이 아파 병원에 갔다. 의사에게 손목이 아프다고 하니 할아버지였던 의사가 ‘빨래는 세탁기가 다 하고, 청소는 청소기가 다 하는데 뭐가 그렇게 힘든지..’라는 식으로 말했다. 카메라는 곧바로 그 말을 들은 정유미의 표정을 클로즈업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충 이런 장면이었다.


 궁금하다. 결혼 후 직장을 관두고 가사와 육아를 하는 K에게 영화 속 의사처럼 말하면 어떤 기분이 들까?


*


 2016년 7월 비행훈련을 시작했으니 비행을 시작한 지도 벌써 5년이 되었다. 아내는 그런 질문을 처음 듣는 거라 기분이 나빴던 것 같다. 나는 지난 5년 동안 종종 받았던 질문이라 좀 언짢긴 하지만 이제는 한 귀로 흘린다. 누군가 내게 그런 질문을 하면, ‘응, 맞아. 비행기가 알아서 다 해서 편하게 살아’라고 짧게 대꾸하고 끝낸다.


 왜 이런 질문을 받으면 기분이 안 좋을까. 아마 그런 질문을 받으면 그 사람의 의도가 어떻든, 듣는 입장에서 ‘넌 하는 것도 없이 돈 버네?’라는 듯이 들리기 때문이다. 폄하가 내재하는 질문이다. 그래서 기분이 묘하게 안 좋아진다. ‘비행 그거 비행기가 알아서 하는 거 아니야?’라는 질문은 조종사라는 직업을 폄하하고 무시하는 질문이다. 조종사가 하는 일이 진정으로 궁금했다면 그런 식으로 물어보지는 않았을 거다. 상대방을 생각하지 않고 하는 질문이다. 이런 질문을 하는 마음에는 뭐가 있을까? ‘나는 진짜 열심히 일하고 그에 적절한 대우를 받고 있는데, 너는 좀 편하게 사는 것 같다?’ 뭐 이런 게 들어있는 건 아닐까. 앞서 말한 <82년생 김지영>의 한 장면에서도 분명 의사는 자신이 하는 일에 비해 가정 주부가 하는 일을 하찮게 여겼을 것이다. 자기 앞에 있는 사람을 존중했다면 그런 식으로는 안 말하지 않았을까..


*


 사실 K의 말이 틀린 건 아니다. 비행의 대부분을 자동비행장치가 한다. 그렇지만 누군가 이렇게 말한다고 해보자.


 ‘직장인들이 직장생활 힘들다고 하는 거 이해가 안 돼. 일은 컴퓨터가 하는데 왜 사람들이 힘들다고 생색내지?’


 이 문장에 납득할 수 있다면 당신은 나쁜 직장 상사이거나 일을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일 것이다. 비행을 자동비행장치가 하기 때문에 조종사가 하는 일이 없다고 말하는 건 저 말이랑 똑같다.


 누군가에게 조종사는 하는 것 없이 한량으로 사는 놈팽이로 보이겠지만 변명을 하자면, 사실 안전하고 편안한 운항을 위해 하는 일이 꽤나 많다. 스트레스받을 일도 생각보다 꽤 있다. 날씨, 항공편 지연, 밤낮이 바뀌는 것 등. 혹시나 ‘너네는 모르겠지만, 조종사 하는 일 많거든?’ 같은 일부심(?) 부리는 거라고 오해하지 않으시기를 바란다. 오히려 일 별로 안 하고, 월급은 많이 받는 한량으로 보이는 게 더 좋다. 조종사가 되기 전 잠깐 다른 직장에 다녔는데, 그때 사수는 자기가 이 사무실에서 일 제일 많이 한다고 자랑 아닌 자랑을 자주 했다. 아마 열심히 산다는 걸 다른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하는 것 같았다. 난 그런 자부심 전혀 없다.


 내가 생각하기에 조종사의 역할 중 가장 힘든 점은 승객의 안전을 책임지는 일이다. 내가 타는 비행기인 보잉 B737은 186명의 승객을 수송할 수 있다. 186명의 승객을 하늘에 띄워 올려 목적 장소로 안전하게 모시는 게 우리 조종사의 일이다. 조종사는 6개월에 한 번씩 시뮬레이터 평가를 치른다. 시뮬레이터 평가에서 별의별 상황을 맞닥뜨리는데 그런 힘든 상황에서도 조종사가 무사히 착륙할 수 있는지 기량을 점검한다. (엔진이 하나 갑자기 떨어진다거나, 기내 기압조절장치가 망가진다거나, 전기가 갑자기 끊긴다거나) 그 평가에 통과하지 못하면 바로 짐 싸고 회사를 나가야 한다. 그래서 우리 조종사들은 6개월마다 생명연장을 불안정한 인생이라고 자조한다. 실제 비행을 하다 보면 우리들과 승객의 생명을 위협하는 문제가 도처에 산재한다. 비행기가 문제가 일 때도 있고, 날씨가 문제일 수도 있고, 관제가 문제일 수도 있다.


 비행하는 동안 기내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승객들의 생명을 책임지는 건 기장이다. 기장이 부재하면 부기장인 내가 책임진다. 200명 가까운 사람의 생명을 책임지는 건 생각보다 막중하고, 긴장된다. 자동차 운전만 해도 그렇지 않은가. 나 혼자 운전할 때는 ‘사고 나도 나만 책임지면 되지’라고 생각하지만, 사람들 태우고 운전하면 괜스레 사고 날까 더 긴장되고, 더 책임이 막중해지고 그러지 않는가.


 .. 이렇게 글을 쓰다 보니  직장인들이 조종사에게 그런 질문을 던지는지 이해가   같다. 대체로 직장의 책임자에 있는 사람들은 직책만 책임자고 실제로는 일도  하면서 책임은 부하직원들에게 떠넘기려고 갖은 노력을 한다고 들었다. 직장인 입장에서 보면 책임자가 갖고 있는 책임의 무게가  느껴지기 때문에  무게를  모를  같다. 그래서 조종사들이 그런 질문을 자주 받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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