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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서김 Sep 02. 2020

숏후감 (1) - 죽은 자의 흔적을 시로 남기다.

<죽은 자의 집 청소> - 김완

 책을 다 읽으니 본말이 전도된 기분이다. 청소를 하면서 느낀 감상을 글로 쓴 게 아니라 이 글을 쓰기 위해 청소하는 것이 아닌가 헷갈릴 지경이다. 어떤 시인은 세상 모든 것이 시가 된다고 하던데, 김완 작가가 바로 ‘모든 것의 시’를 쓰는 사람이다. 시를 쓰던 사람이 특수 청소를 하면 이런 문학적 글이 탄생하는구나.

 김완 작가는 특수 청소 업체 대표다. 자살, 고독사, 범죄현장 등 특수한 사정이 있는 장소를 청소하는 업체다. 시와 죽은 자의 집 청소. 두 단어는 어울릴 것 같지 않으면서도 모아 놓으니 이상하게 어울린다. 집을 청소하는 것은 고되고 육체적일 뿐 그곳에서 문학을 느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 책이 그 선입관을 깼다.

  작가가 운영하는 청소 회사는 어떨지 궁금해서 청소업체 웹사이트에 접속했다. 역시나 실망시키지 않는다. 청소업체 웹사이트인데 들어가자마자 괴테의 글귀가 제일 먼저 눈에 띈다. “자신의 생명이 존귀하다는 자각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삶에 더 큰 환희를 안겨준다.” 이 사이트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집주인 들일 것이다. 죽은 세입자가 만들어 놓은 짐들을 치우기 위해 이 웹사이트를 방문했을 것이다. 생명의 존귀를 자각하라는 글을 맨 앞에 써 붙여놓은 것은 집주인들이 보고 느끼라고 하는 말인가. 묘하다.

 최근에 에세이를 써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 다양한 에세이를 들여다보고 있다. 이 책은 근래에 본 에세이 중 가장 완성도 높고 시적이다. 작가는 시를 쓰던 습관 때문에 문장을 수백 번 고친다고 한다. 문장이 유려하고 아름답다. 피와 구더기가 들끓는 더러운 집을 청소하는 글인데 문장이 서글프게 아름답다.

 삶의 의미를 찾는 것. 거창해야 할 것 같고, 플라톤의 이데아 같은 곳에 숨어있을 것만 같다. 작가는 고된 작업 환경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글을 쓴다. 우울증으로 자살한 청년의 원룸에서 유품을 보며 죽은 자의 슬픔을 이해한다. 고양이 공장으로 쓰인 집에서 케이지에 쩍 쩍 달라붙은 고양이 사체를 보고 깊은 사색에 잠긴다. 내 집에서, 내 직장에서, 내 주변 사람들에게서 삶의 의미를 찾고, 예민하고 풍부하게 글을 쓰고 싶다. 김완 작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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