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음식 에세이
내 인생 첫 알바는 서울 번화가에 위치한 고깃집이었다
다른 서빙 알바보다 시급이 몇백 원 더 많았다.
규모가 상당한 고깃집이었다.
알바를 한 번에 열명 정도 뽑았다.
모두들 알바는 처음이라고 했다.
매니저는 우리를 일렬로 세우고 말을 이어나갔다
요약하자면 이주일은 알바의 인턴기간이고 이주일이 지나고서 진짜 알바를 두 명 선별하겠다.
이 주 후의 선발되지 못한 알바의 인턴들은 진정한 알바의 제 몫을 못한 것이니 시급의 반만 임금으로 주겠다고 했다. 그마저도 알바의 인턴을 중도 포기하게 되면 일한 돈은 줄 수 없다했다.
바로 노동부에 신고를 했어야 마땅하겠지만 나를 포함한 아이들은 아무 군소리 없이
‘흠! 조금 부당한 거 같기도 하지만 그래도 다른 곳보다 시급이 센 편이니 진정한 알바가 되기 위해 이주의 수련기간을 잘 지내보자’라는 마음으로 일을 시작했던 것 같다.
서울 제일 번화가의 장사 잘 되는 고깃집은 서빙 알바 난이도로 치면 별 다섯 개 만점에 별 다섯 개가 아닐까 싶다. 일에 대한 설명 없이 투입된 신입 알바의 인턴들은 하루 열 시간 빼곡히 들어찬 테이블 사이로 불판을 갈고, 고기를 나르고, 접시를 나르고, 술을 나르고, 간혹 환풍기를 잡으며 고기를 익혔다.
일이 서툰 나는 여기저기 작게 데고 주문받은 테이블 넘버는 헷갈리고 쏟아져 나오는 할 일 들에 그야말로 멘붕이 되었다.
첫날에 어떤 여자애가 열 시간을 못 채우고 저녁 타임에 울며 나갔다.
바삐 움직이느라 통성명도 못했었다.
두 번째 날인가 세 번째 날에 나는 굼뜨다고 한소리 들었다.
진정한 알바의 몫을 싹싹하게 잘하는 내 또래의 여자아이를 보며 울컥하다가도 역시 굼뜬 내 잘못인가 했다.
아무튼 첫 알바의 인턴으로 나름 사회생활의 스타트를 끊은 우리들은 매우 힘들고 서툴렀다. 서로 대화를 나눈 기억도 없다.
저녁시간, 노년 어머니와 중년 딸로 보이는 두 사람이 들어왔다.
두 사람은 메뉴판을 한참을 보더니 나를 불러 아주 작은 목소리로 일 인분을 시켰다.
나는 다시 한번 물었다.
'일 인분이요?'
'네. 일 인분... 될까요? 먹다가 모자라면 더 시킬게요.'
중년 여자가 매우 곤란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 네. 될 거예요.'
두 번 물어본 게 미안했다.
주문을 넣자마자 주방에서는 일 인분만 시킨 거 맞냐고 재차 물어봤다. 그렇다고 했다.
앞으론 일인당 한메뉴씩 주문을 받으라고 했다.
알았다고 했다.
일 인분의 고기는 상추를 두 번 리필하고 반찬을 두어 번 리필하는 동안에도 불판 위에 조심스레 있었다.
매니저가 지나가며 몇 마디 혼잣말을 했지만 기억나진 않는다.
다시 그 모녀 손님들이 나를 불렀다.
‘죄송한데 저희가 배가 불러서 이 고기를 다 못 먹겠어요. 가져갈 수 있게 남은 고기를 싸주시면 안 될까요?’
불판에는 식은 고기가 몇 점 있었다.
알바의 인턴이었던 나는 포장용기를 찾아 헤맸다.
없다고 말하라는 매니저의 지시가 있었지만 사이드 파트 주방에서 어렵게 포장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제법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모녀는 고기를 바라보며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머쓱하고 죄송스럽다는 듯한 눈빛이 내 등 뒤에 붙어 내내 따라다녔다.
나는 그렇게 하루 열 시간씩 서울 번화가의 고깃집에서 진정한 알바가 되어 돈을 벌어보고자 꿈을 품었지만 결국 오일정도를 채우고 알바의 인턴을 중간에 그만두었다.
그만두겠다고 매니저님께 말했을 때 역시 가게에 별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너의 임금도 없다고 하였다.
그렇게 집에 들어가 고깃기름이 배인 몸을 씻고 누워있자니 억울해서 눈물이 났다. 안 되겠다. 돈을 받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다음 날 고깃집에 찾아가서 매니저에게 돈을 받기 전까지 못 나간다고 말을 했다.
뱃구레에 힘을 주고 당당히 말을 해도 모자랄 판에 쭈뼛쭈뼛 들어가서 눈도 못마주치고 어리숙하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아뿔싸! 스타트를 잘못 끊었다. 시작이 망한 것 같다.
한참을 서있으려니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느낌이 들어, 얼굴에서 열이 나는 게 안구로 느껴졌다.
내가 들인 시간과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는데 느껴야 하는 부끄러움.
이 부끄러움이 없이는 오일 동안 일했던 임금은 없는 셈이 될 것이었다.
매니저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버티고 있을 동안 그닥 연관은 없을 모녀 손님이 생각났다.
매니저는 시간을 들이다가 돈이 두둑이 들어있는 카운터 금고에서 만 원짜리 열 장을 귀찮다는 듯이 건네고 돌아섰다.
사실 십만 원은 최저시급에도 한참 미치지 못했지만 그래도 받았다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쉬며 한마디를 말을 겨우 내뱉고 나왔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