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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맛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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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숙 Jan 30. 2019

울고 싶은 자,  오른손에 불닭발 왼손엔 술잔

일러스트 음식 에세이


혼술을 해본 적이 있는가?

있다면 처음 혼술의 기억은 무엇인가?


나는 현재 [술 1기]를 지나 [술 2기]의 시대에 있다.

[술 1기]는 연령으로 나누자면 대학에 입학해서부터 20대의 끝자락까지였다.

30대의 한가운데를 기어가고 있는 지금은, 한껏 무르익은 [술 2기]의 시대이다. 말 그대로 [술 2기]의 황금시대이다.


[술 1기]는 술자리는 언제나 바깥에서, 가성비가 좋거나 분위기가 좋은 술집을 목적별로 카테고리 화해서, 항상 사람들과 마시던 시기였다.

술이 좋아서가 아니라 술자리가 좋아서 마신다는 아무도 안 믿을 거짓말을 그렇게나 해댔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눈이 오나,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술과 함께 백년해로할 기세로 마셔댔다. 핑계가 없으면 핑계가 없는 심심한 인생들을 위로하고자 마셨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신기하게도 그 많은 술을 사람들과 함께 마셨다.

바꿔 말하면 이십 대의 나는 희로애락을 거의 항상 사람들과 같이 보냈다는 말이 된다.

20대의 나도 지금의 나와 같이 대부분 외로워하고 인간관계에 힘들어했지만 언제나 사람들 속에 있었다.

그것을 느낄 새도 없이 자연스럽게.


나이가 더 들어 지금은 [술 2기]의 시대를 지내고 있다.

[술 2기]의 특징은 좀 더 간결한 술자리를 지향한다는 점이다.


밖에 나가서 마시는 일도 종종 있지만 그것은 특별한 일이나 기분전환의 확실한 목적이 있다.

밖에서 마시는 것보단 집에서 쌩얼로, 세상 편한 홈웨어를 입고 세상 편한 사람들과 다음날 무리가 안 되는 선에서 술자리를 갖는다. 그리고 가끔은 나만을 위한 술상을 마련해 더더욱 세상 편한 술자리를 이어가고 있다.


 나만의 안주 컬렉션도 몇 개 있다.

괜찮은 와인이 있을 때는 브리치즈를 살짝 녹여 견과류와 메이플 시럽을 뿌린 다음에 전자레인지에 살짝 돌려 간단하면서도 멋스러운 치즈 안주를 만든다.

마음과 몸이 으슬으슬할 때는 저렴한 레드와인에 온갖 과일과 시나몬을 넣고 직접 끓인 따뜻한 뱅쇼에 몸과 마음을 기댄다. 그냥 홀짝여도 좋지만 짭짤하고 심플한 맛의 과자와 같이 즐겨먹는다.


소주 대신 주로 청하를 마시는데 여기에 어울리는 안주는 그때그때 마음이 동하는 야식을 만들거나 배달시켜서 술상을 마련한다. 자신 있는 메뉴는 닭볶음탕, 골뱅이 소면 무침, 버섯 어묵 전골 등등 술상 마련에는 제법 내공이 있다고 자부하는 바이다.


그리고 글을 쓰는 요사이에는 선물로 들어온 유자술이 제법 별미라 한잔씩 식사의 리프레쉬로 홀짝이고 있다. 데워 마셔도 차게 마셔도 제법 유자의 시트러스 한 향이 살아있어 줄어드는 걸 아쉬워하며 아껴마시고 있다.


나름(이제 간은 한물간 것 같지만) 애주가라고 자부하는 나의 홈술&혼술 리스트에서 가장 추천하는 조합이 있다.

나의 첫 혼술 메뉴이기도 했다.  


[울고 싶은 자 오른손에 불닭발 왼손엔 술잔을 들라]이다.

단 처절하게 울고 싶을수록 혼자 마셔야 한다.
 

지독하게 실연을 당하고 나서 혼술을 시작했다.


그 당시의 나는 상대방의 잠수로 육 년의 연애가 끝난 시점이었다.

감정의 끝은 애저녁에 보았지만 관계의 끝은 쉽사리 놓지 못했던 연애였다.

앞의 문장에 감정과 관계를 뒤바꾸어 놓아도 말이 되는 그런 생명력 없는 연애의 후반부였다.

어이없게 흘러간 20대의 6년이 불쌍해서 누워도 서도 울컥울컥 하는 게 좀체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돌이킬 수 없는 참담함의 맛에 무너질 수는 없었지만 무너져도 괜찮을 작은 무대는 필요했다.

한 껏 쏟아낸 후 그 무대의 막을 내려버리면 그만이니까.

육 년의 시간을 돌이킬 수도 잊어버릴 수도 없지만 흘려보낼 시간이 필요했다.


작은 무대를 나만의 술상으로 마련했다.

평일 정오부터 시작한 비장한 동네 산책을 마친 후에 내가 아는 한 가장 매운 닭발을 배달을 시키고 청하도 사고 집에 들어왔다.

내 눈물샘은 매운 음식 앞에서만 약했다. 그 당시에도 울면 시원하겠다 싶었지만 눈물샘은 당최 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래서 먹으면 바로 울만한 매운 닭발에 청하를 주문했다.

매워서 눈물을 빼다 보면 슬픔에도 흘려줄 만큼의 눈물도 생기겠지 하면서.


 짐짓 비장하게 시작한 일련의 과정들을 거친 닭발과 청하의 혼술은 어김없이 닭발의 매운맛에 취해 눈물 콧물 빼주었다. 겨우 살린 눈물의 불씨가 죽지 않게 청하를 입에 털어 넣으면서 불닭발로 연신 혀와 위를 지지듯이 휴지기 없이 먹었다.


 불씨 살린 눈물은 어느새 크게 번져 훌쩍거림에서 억울함과 분노가 뒤섞인 대성통곡이 되어버렸다. 콧물은 질질 나오고 눈물도 콸콸 나오는 와중에 매워서 물은 연거푸 마시고 그 마신 물은 다시 콧물과 눈물이 되어 끝이 없이 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한참을 울다가, 아무도 듣지 않는 떼를 쓰다 조용해지는 아이처럼 머쓱하게 울음을 멈추고 꿋꿋하게 양치질을 하고(이 부분이 중요하다. 어느 때에도 양치질은 하고 잘 것) 잠자리에 들었다.


그렇게 내가 나한테 부끄러울 만큼 우악스럽게 울고 나서 남겨진 감정을 흘려보낼 수 있었다.

사람들 속에서 받는 위로도 분명 대체 불가능한 힘이 있지만 혼술과 닭발의 콤비는 남에게 보여줄 수 없는 모습을 끌어내어 그 순간 누구도 줄 수 없는 힐링을 주었다.   


가끔은 혼자만의 감정의 격정을 삼키는 시간이 필요하다.

인생의 쓴맛은 점점 더 내밀해져 남과 나누기에는 거북스러운 경우가 있다.

하루를 끝낼 즈음 가끔의 혼술은 나의 일상 리듬을 흔들지 않으면서 술이 주는 일종의 위로만 받을 수 있다.


최악의 실연을 견뎌낸 건 혼술과 닭발.

적재적소의 혼술을 강추한다.

울고 싶은 자 오른손에 불닭발 왼손엔 술잔을 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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