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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Fly Apr 30. 2020

5. 수화 통역사에 대한 기억

코로나 19로 몇 달간 매일 방역당국의 정례브리핑을 보고 있자니 옆에 서있는 수화통역사가 나 같아 보일 때가 있다. 


직전에 자료를 보았더라도 생방송이니 카메라와 기자들 앞에서 여유가 쉽게 생기지 않는다. 게다가 그 많은 사람들 속에서 입모양을 봐야 하는 청각 장애인들 때문에 마스크를 쓸 수도 없어. 브리핑이야 잠깐이겠지만 장시간의 통역은 어떨까? 


연사가 빨리 말하는 사람이 걸린 통역사는 손짓과 표정이 너무너무 빨라지는데 내면의 짜증스러움이 절로 느껴진다. 일 자체 때문에 그런 게 아니라 통역사로서 연사가 하는 말을 다 옮길 수 없는 물리적 한계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런가 하면 차분히 말하는 연사의 옆에 있는 수화통역사는 얼굴도 손동작도 얼마나 여유로운지 모른다. 


그 수화통역사들을 보면서 10년도 훨씬 전의 일이 떠올랐다.  



장애인 관련 국제회의가 한국에서 개최되었는데, 분야별로 분과회의가 진행되었다. 그중, 나는 한 개의 분과회의에서 동시통역으로 들어갔다. 연사들과 참석자 모두 장애우와 비 장애우 (정상인이라는 용어를 지양하려고 썼다)가 섞여 있었다. 그러니 두 종류의 통역사가 필요하다. 


그때 처음으로 수화 통역사의 존재감을 느꼈다.  연사와 참석자들 중에 있는 청각 장애인들을 위해 당연히 필요한 거였다. 하지만, 일반 통역사로서는 꽤 긴장된 시간이었다. 


수화통역사는 리시버를 통해 외국인 연사가 하는 말을 통역하는 나와 같은 일반 통역사가 전해주는 말을 그대로 수화로 통역한다. 여기서 '그대로'라 함은 문자 그대로 한다는 게 아니라 나름의 규칙을 가지고 한다는 것이다. 이들의 통역에는 표정까지 같이 들어가 있어 감정이 느껴진다. 왜 긴장이 되었냐고 묻는다면? 


통역도 항상 잘 풀리는 날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연사의 말을 잘못 알아듣고 잘못 통역한다고 해보자. 그리고 나도 알고 있다. 내가 정확하게 핵심을 짚지 못하고 애매하게 말했다는 걸. 그런데, 내 눈 앞에서, 연단에서 수화통역사가 내 말을 그대로 전달하고 있는 모습을 보는 심정이란! 게다가 숙련된 수화 통역사라면 더 눈치를 빨리 챘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일이 내게도 생겼다. 



앞서 말했지만 동시통역 시에는 부스에 꼭 두 명이 들어가게 되어있다 (짧은 시간이면 한 명이 커버를 하기도 하지만 그 피로감은 엄청나다). 그 말은 둘 중에 한 명이라도 실수를 많이 하면 청중이나 클라이언트는 누구라고 얘기하지 않고, 그냥 '통역사가 되게 못했다'라고 한다. 남녀가 들어가거나 목소리 톤이 다르면 차이는 더 날 것이다. 그래도 청자에게는 그냥 통역이 별로인 것이다. 이 경우, 가끔 자기가 실수한 게 아니라고 클라이언트에게 강조하는 통역사도 있다. 억울함에서 나오는 행동이니 비난할 것도 못 되는데, 가끔 자기가 더 못해놓고 그런 사람도 있다. 맞다. 어느 바닥이나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그럴 경우를 대비해 에이전시는 경력 있는 통역사와 신인 통역사를 파트너로 넣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도 장애와 관련된 통역을 많이  했기에 선배 통역사로서 그해에 졸업한 통역사와 배정되었다. 그 통역사도 나와 마찬가지로 늦은 나이에 통역대학원을 들어간 케이스였다. 게다가 회의 전에 먼저 연락을 해와 신경 쓰는 게 느껴졌기에 나도 내가 가지고 있는 용어 파일을 공유했고, 연사의 원고도 어려운 부분은 일부러 내가 맡았다. 


회의 당일 만난 통역사는 무척 예의가 발랐으며 통역한 지 얼마 안 됐다면서 잘 부탁한다고 몇 번이나 얘기했다. 그때에는 그 통역사가 겸손한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뿔싸. 


겸손한 게 아니라 사실이었다. 물론, 내가 완벽했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핵심 내용을 전달함에 있어서는 어떤 내용에 힘을 줘야 하는지 알아야 하고, 최대한 오역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파트너 통역사가 실수하는 게 눈으로 드러나니 더 힘들었다.  바로 수화 통역사의 반응이다. 내가 통역할 때에는 의미를 이해하면서 통역하는 모습이 보였는데, 순서가 바뀌니 연단에 서 있는 수화통역사가 자꾸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자꾸 같은 내용을 반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너무 부끄럽고 죄송해서 수화 통역사를 바라볼 수 없어 통역하지 않는 시간동안 내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잘 아는 통역사와 일을 하면, 문맥이 잘 안 잡힐 때 서로 메모를 해주거나 바로 이어받아서 통역하면 된다. 하지만, 오늘 처음 본 통역사에게 그런다는 것이 쉽지는 않다. 자존심 상해하는 사람도 있고, 예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통역 자체에 정신이 없는 데 적어준다고 보이겠는가. 


어찌어찌하여 회의가 겨우 끝났다. 나는 너무나 부끄러워 빨리 부스를 빠져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화가 나기도 했고, 오늘 통역은 나 때문에 망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결과적으로 망했다는 소리를 듣겠다는 예감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파트너 통역사가 하는 말. "선배님 아니었으면 저 오늘 힘들었을 거예요. 다음에 또 봬요." 


자신이 잘했다고 생각하는 걸까? 웬만해서는 가지기 쉽지 않은 자신감인데. 흠. 하지만 그때의 나는 한 5년 차쯤 되는 통역사였기에 아직 표독스러움이 덜 빠져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그럴 일은 없을 거예요. 안녕히 가세요." 그러고 나왔다. 하아. 얼마나 못되게 말했는지! 그 통역사가 내 말을 들었을지, 이해했을지도 의문이었지만, 난 최대한 나의 심정을 표현하고 싶었다. 다행이 컴플레인은 듣지 않았지만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붉어진다.


그 후로, 파트너 통역사가 누구인지 꼭 물어보는 버릇이 생겼다. 사람은 안 좋은 경험을 더 오래 기억하는 게 맞다. 그 통역사는 이후로 본 일이 없지만 계속 일은 하고 있을 것이다. 그동안 경험도 생기면서 더 잘하면 잘했지 못할 일은 없으니까. 하지만, 조금 더 개선했으면 하는 점을 얘기해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가 생기기도 한다. 




코로나 19 관련 정례브리핑 중에 외롭게 서 있는 수화 통역사를 볼 때마다 안쓰럽다. 저 들판에 홀로 서서 어떻게든 이야기를 꾸려나가야 하는 그 고통을 드러내지 않고 해내야 하는 일. 나 같은 통역사는 부스에 숨어 있기라도 하지.  


계속해서 애써주시기 바랍니다, 전국에서 일하고 계시는 모든 수화 통역사님. 그리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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