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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Fly Mar 23. 2021

오늘의 꽃

- 네 이름을 알고 있었더라면

아침에 창문을 열어두는 것과 오후에 창문을 열어두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는 나는 바람이 덜 부는 아침에 창문을 열어두는 걸 선호한다. 창문 밖에 소나무가 있어서 더더욱 그러하다. 작년 봄에는 바람이 어찌나 많이 불던지 꽃가루를 뿜어대는 걸 목격할 정도였다. 그래서 바람이 불면 낮이라도 창문을 열기가 망설여진다. 하지만 해가 높이 떠있는데도 창문을 열어두지 않으면, 뭔가 집이라는 무성 생물에 못할 짓을 하는 것만 같다. 다른 집은 다 바람을 쐬는데 왜 이 집은 이렇게 가두고 있는가라고 떠들어대는 것만 같다. 그래서 산책을 나가는 한 시간 반 동안 창문을 살짝 열어놓고 나간다.



선글라스를 써도 하늘이 미친 듯이 푸른 걸 알 정도로 봄날이다. 어제는 바람이 많이 불어서 두터운 옷을 입고 산책을 나갔지만, 오늘은 영상 10도가 넘는 걸 확인하고는 얇은 재킷을 입고 나섰다. 사방이 꽃 아니면, 새싹이다. 얇은 나뭇가지에는 꽃망울이 터지는 게 시간문제일 정도로 보이는 통통한 여러 겹이 싹이 단단하게 붙어있다. 올망졸망 모여있는 산수유나무의 여린 잎도 마찬가지이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눈에 들어오지 않던 개나리가 아파트 단지 바깥쪽에 쌓아둔 바위 자락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어릴 때부터 보던 익숙한 꽃이어서인지 노란색 꽃만 보면 '나리 나리 개나리, 입에 따다 물고요, '라는 노랫말이 절로 나온다. 역시 암기는 어릴 때 했던 게 가장 오래 남는다.


2015년 이사 왔을 때에는 신도시라 가로수가 빼빼 말라 나뭇잎이라고는 찾을 수 없었다. 특히 여름에는 가로수가 만들어내는 그림자가 없어서 드러난 팔과 다리가 선탠 한 것처럼 변했다. 이제는 나무들이 제법 자라 있지만, 여전히 그늘을 만들기에는 좀 더 커야 한다.


산으로 연결되는 길에는 이름 모를 꽃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라 있다. 계절마다 달라지는 색과 냄새 때문에 자주 멈춰서 핸드폰으로 찍어 이름을 알고 싶게 만들 만큼 예쁘다. 그 자리에서 이름을 알아내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금방 또 까먹는다. 그래서 그렇게 계속 피는 걸지도. 인간아, 제발 좀 까먹지 말아라! 하면서.


오늘도 그런 의미에서 처음 보는 꽃을 발견했다. 어릴 때 꽃을 그려봐라 하면, 단순하게 그리는 꽃의 모양을 기억할 것이다.  너무나도 단순하다고 해야 하나. 그림에 소질이 없는 나였기에 꼭 내가 그렸던 것과 비슷했다. 만화에서도 봤던 것만 같은 모양과 색이다.


가까이 가서 보니 더 예쁘다. 어쩜 이렇게 예쁜 거니? 부모님이 계시는 공원묘원에 가는 길에 파는 가짜 꽃처럼 보이기도 한다. 꽃잎에 보이는 주름은 헝겊으로 만든 것만 같다.



도대체 너 이름이 뭐니? 하며 스마트 카메라 렌즈를 들이댔다. 전동 휠체어를 타고 지나가시던 할머니도 웃으며 말을 건네신다. "어머. 무슨 꽃이 그렇게 예뻐어어?" 나도 모르게 웃으며 "그러게요."하고 대답했다. 멈추실 줄 알았건만 쿨하게 지나가셨다. 그리고, 지나가신 게 다행이다. 촬영 완료 버튼을 눌렀더니 꽃 이름이 나왔다. 그리고 나는 눈을 부릅 떴다.

검색을 다시 해봤다. 내가 찍은 꽃과 많이 비슷하다. 정말인가? 그런데 왜 풀이지? 분명히 꽃이 피어있는 건데? 개화기가 4-6월이면 너무 빨리 핀 거 같은데 아니지 않나? 이런 생각을 하다가 하마터면 땅바닥에 주저앉아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놀랄 일이 뭐란 말인가. 이 아이는 평생 이 이름이었는데. 내가 지금 알았다고 달라지는 건 하나도 없는데 말이다. 그래도 소리 내어서 읽지는 못했다. 미안해, 개불알풀아.


따뜻한 봄날, 또 한 번 웃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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